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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16. 2018

대학들은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대학 진학 후 많은 부분 상실하는 과학고등학교의 의미

 인재를 유치하여 함께 학술적 대화를 나누며 연구하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교수자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학들은 과학고등학교 출신 학생(이하 과고생)들을 정말 좋아한다. 과고생들이 정원의 대다수인 학교도 존재하고, 모 사립대는 과고생들에게만 4년 전액 장학금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여 인재들을 유치하려 노력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대학들에 묻고 싶다. 대학들은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국가 차원에서 충분히 상위 단계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고 R&E(Research and Education) 프로그램 등의 연구 관련 경험을 시키는 것 정말 좋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사학 재단보다 더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고등 교육까지라는 것이다. 대학 시스템은 과학고등학교 제도를 뒷받침 못 해주고 있어, 연계하여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고생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현재 시스템대로라면 많은 학생에게 있어 과학고등학교 제도는 그저 연구 맛 좀 보고 대학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과정 정도밖에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하와 같다.




강제되는 무의미한 복습


 가장 큰 문제는 대학 1, 2학년 동안 이미 고등학교에서 학습한 내용을 다시 학습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제되는 이 무의미한 복습은 과고생들의 학업에 대한 흥미와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희석시킨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중고생들이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많은 과고생들의 대학 1, 2학년 생활도 그렇다. 오히려 대학에서 더 쉬운 내용을 배운다. 지옥 같았던 과학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해방감에 이미 다 배운 것을 또 배워야 하는 지루함까지 더해져, 많은 학생이 공부를 손에서 놓는다. 학생이 학업에 있어 도전할만한 것들이 없으니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도 싶다. 저학년 커리큘럼의 모든 과목이 고등학생 때 배운 내용인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수가 그랬다. 필자의 경우, 2학년을 마치고 돌아보니 새로 배운 것보다 잊어버린 양이 더 많아 오히려 고등학생 때보다 지식의 양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3, 4학년 과목들을 배우는 지금은, 몇 과목들은 1, 2학년 때 들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KAIST에는 해당 과목 인증 시험을 통과하면 그 과목을 수료 처리해주는 제도가 있고, 필자가 재학 중인 대학에는 영어 실력이 우수한 학생에 한해 1학년 필수 수강 영어 과목을 한 학기만 수강해도 되도록 허락하고 있다. 비단 과고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고의 유능한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시간 낭비를 줄여주기 위해 이러한 제도의 확대는 꼭 필요하다. 많은 과학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대학 미적분학 과목 AP 프로그램을 지금처럼 대학에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면(현재는 영재학교에서의 수료만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제도라도 도입해서 재수강이 불필요한 학생들이 상위 학문에 도전하며 계속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보통 고등학교 생활 중에 본인의 주력 과목들의 교과 및 연구 프로그램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 그러므로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취약 과목을 보충하고 주력 과목의 상위 커리큘럼 과목을 일찍 배움으로써 건설적인 학기 설계가 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졸업을 위한 수료 학점은 정해져 있으므로 이미 다 배운 기초과목을 수강할 시간에 다른 학과의 전공과목들이나 다양한 교양 과목들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학문적 시야가 확장되어 전공 분야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접목하여 응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융합’이라는 제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 걸맞게 국가가 과고생들에게 기대하는 연구원으로서의 자질 또한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필자가 재학중인 대학의 1학년 영어 과목 제도. 왜 영어 과목에만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수학, 과학처럼 성적을 수치화할 수 있는 과목들에 대해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연구 지원 제도 부족


 연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대학원 연구실과 접촉하여 교수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 대학 차원에서 기업들을 유치하여 기업연계 과제들에 대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연구실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고 자유 주제가 아니라 기업이 지정한 주제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또한, 많은 대학이 학부 연구생이나 연구실 인턴과 같은 제도들을 운용하고 있지만, 연구보다는 맛보기에 가깝고 대다수가 고학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정원이 많지는 않다. 따라서 이미 해당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갈 것이 확정된 학생들의 입학 전 프로그램 느낌이 강하다.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생겨 능동적으로 연구실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연구하는데 참여 학생을 도구로 활용하는 셈이다. 이렇듯 과학고등학교에서 연구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지원해주는 것과는 달리, 대학에는 학생들의 연구 역량 강화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학부생들의 연구실 사용 문턱을 낮추고(물론 안전 교육과 부주의로 인한 책임 부여는 필수로) 학생들이 좀 더 능동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과학고등학교에서는 R&E 프로그램 같은 다양한 연구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연구직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 다양한 연구활동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몇몇 대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2014년 당시 포스텍 총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입학생 질은 좋은데 졸업할 때 학생 포텐셜이나 경쟁력은 세계 유수대학에 비해 떨어진다”고 언급한 바 있다. (포스텍의 과고생 비율은 약 20~25%로 다수는 아니다. 하지만 타 대학에 비해 높은 편이므로 인용하였다. 2014년 당시 카이스트와 포스텍 총장의 인터뷰는 두 대학의 교육, 연구 등에 대해 좋은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읽어봄 직하므로 링크를 남긴다. http://www.etnews.com/201312260107?obj=Tzo4OiJzdGRDbGFzcyI6Mjp7czo3OiJyZWZlcmVyIjtOO3M6NzoiZm9yd2FyZCI7czoxMzoid2ViIHRvIG1vYmlsZSI7fQ%253D%253D#_enliple현실 인식과 제도 개선이 다수의 대학으로 퍼져 나가, 좋은 인재들을 놀리지 말고 그들이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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