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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May 26. 2018

훈련병 고무신이 지나온 일상

 요즘 친구들이 하나둘씩 군 복무를 마치고 있습니다. 남자분들이 가장 많이 입대하는 시기가 20살에서 21살인데, 어느덧 저희가 23살이 되었네요. 길게만 느껴졌던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 후, 사회로 돌아와 얼떨떨해하는 친구들을 보니 무척 반갑습니다. 곧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 친구들도 이제 세 명뿐이네요. 물론 제 남자친구만 빼고요.

처음 걸려온 전화.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온통 필자의 울음소리뿐이었다.

 23살 동갑이지만 16학번, 17학번 선후배 관계였습니다. 소위 요즘 말로 과CC입니다. 얼마 전 연에 남자친구는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연락 한 통 쉽게 할 수 없는 훈련병 기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학과 개강 총회와 개강 파티가 있던 날, 학과 사람들이 너도 고무신 신었냐며 우스갯소리로 놀리자 옴팡지게 술을 먹고는 본의 아니게 펑펑 울어버려 또 하나의 흑역사를 적립했습니다. 울면서 남자친구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빈둥빈둥 방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주말, 처음으로 걸려온 포상 전화에 아까운 10분을 펑펑 울어버렸고, 학과 MT날 레크레이션 중 걸려온 전화에 또 10분을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남자친구가 입대한 전날부터 시작해서 수료하기 전까지 제 일상은 늘 눈물범벅이었습니다.

필자가 보낸 손편지. 익일특급 등기는 다음날 도착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단, 빨리 도착해도 분류기간이 있어 바로 전달되지는 않는다.등기를 받지 않는 연대도있으니 잘 알아보자.)

 물론 울고만 지내지는 않았어요. 하루에 적게는 두 세 통씩, 많게는 열 통이 넘게 인터넷 편지를 보내주곤 했습니다. 편지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다른 분들의 편지 제목을 보니 몇백몇십번째 편지를 쓰신 분도 계셨어요. 괜히 마음에 의지가 불타올라 한 날은 열일곱 통을 보내고 한동안 할 얘기가 없어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오는 사진들은 고이 모아 저장해뒀고, 바쁜 학교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 손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 편지지 묶음과 3색 볼펜들, 미리 인화해둔 사진들을 함께 넣어 보내줬습니다. 어떠한 소식이라도 접할 수 있을까 하여 유명한 고무신카페에 가입해 같은 연대 고무신분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고, 남자친구 SNS에 글을 올려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넷 편지도 부탁했습니다. 하루의 일상이 늘 남자친구로 끝났습니다.

필자의 남자친구가 훈련병 기간 동안 보내온 편지.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총 11통, 32장의 편지가 들어있다. (필자도 칼럼을 위해 처음 세보았다!)
도착한 편지 중 일부분. 관물대를 아주 자세하게 그려서 보냈다. 대단하다.

 남자친구도 바쁜 시간을 내어 꼬박꼬박 손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우표를 7장밖에 가져가지 못하는 바람에 우표가 많이 부족했을 텐데도 군사우편을 통해 편지를 보내줬었고, 제가 손편지를 보내던 날 같이 보낸 편지지 묶음을 동기들과 물물교환하여 얻은 우표로 일주일에 두세 통씩 꾸준히 편지가 보내줬습니다. 편지가 도착하는 매주 수, 목, 금요일은 종일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가득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우편함을 확인해보곤 했습니다.


 시간이 어느덧 흘러 남자친구의 수료식 날, 남자친구의 동생 번호로 영상통화가 걸려왔을 때 빵빵해진 볼살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었네요. 수료식 행사 연습으로 인해 쉬어버린 목소리도 마음 한편을 아리게 했습니다. 그래도 겨울 방학 내내 한 손 가득 꼬집히던 옆구리 살도 쏙 빠지고 날렵해진 남자친구의 모습이 장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복귀한다는 연락을 받은 후에 결국 눈물을 찔끔 흘렸었네요.

제대일을 알려주는 고무신 어플. 아직 제대가 멀었다. 아무튼 그렇다.

 훈련소 기간을 1년 9개월의 군 복무 기간에 비교한다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웠던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실제로 제대한 제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로는 그 힘들다는 혹한기 훈련보다 더 힘든 게 훈련병 시절이라고 합니다. 6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군인으로서의 기본기를 모두 익혀야 하다 보니 훈련 일정이 매우 고되고 바빴으며, 그 무엇보다도 지인들과 연락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입 모아 말합니다. 


 그런 시기에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 편지였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전해오는 손편지들, 점호시간에 도착한 인터넷 편지를 받을 때 가장 설레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오늘은 누가 썼을지, 얼마나 받았을지 신나기도 하고, 괜히 주위 동기들과 누가 더 많이 받나 작은 내기도 하고. 21세기 다채로운 문명 아래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 많은 방법 중 편지가 그들에게 가장 힘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요?

인터넷 편지를 쓰기 위해 새벽에 써둔 편지들. (참고로 인터넷편지는 시간제한으로 인해 팅기는 경우가 있다. 미리 적어두었다가 복붙한다면 더 정확하고 빠르게 보낼 수 있다.)

 조교로 선출되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일찍 휴가를 받게 된 남자친구가 제일 먼저 군복 가슴팍에서 꺼내 보여주었던 것도 편지였습니다.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제가 보낸 인터넷 편지들이었어요. 피곤해도 새벽 두 세시까지 핸드폰 메모장에 미리 적어놓았다가 다음 날 아침 잊지 않고 보내주던 편지들.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꼬깃꼬깃 편지지 주변이 구겨져 있고, 코딱지인 것인지 눈물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얼룩들이 묻어있었지만, 꺼내 보이는 남자친구의 손끝에 한가득 고마움이 묻어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와 이용중인 영상통화, 짧은 문자 등이 가능한 통화 어플. (부대별 설치 업체가 다르니 먼저 알아보자)(필자와 남자친구는 새로운 문명에 빠져 아날로그 감성을 잊기 시작했다)

 시간 지나니 바빠진 서로의 일상 탓에 편지를 주고 받기보다 전화 한 통이 다시 편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의 기억들을 되새겨보니 편지 하나의 중요성이 와닿습니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혹시나 주변에 군 복무 중인 지인이 있다면 편지로 연락 한 통 어떠신가요?


( 논산육군훈련소 : http://www.katc.mil.kr/ : 소속연대, 입대일, 생일, 이름 필요 )

( 육군전자우편서비스 : http://www.army.mil.kr/iletter/ : 소속사단, 이름 필요 )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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