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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Jun 24. 2018

글에 대하여

-내가 읽고 쓰는 글-

- 내가 좋아하는 글.

 내가 글을 좋아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릴 적, 책을 좋아한다는 친구들의 말은 쉽사리 믿기지 않았고, 나에게 책이란 완독부터가 대단한 일이었다. 가끔 열리던 독서 대회를 위해 억지로 마주했던 것이 책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조금 다르게 봤다. 내가 궁금한 주제, 내 고민의 해결점을 알려주는 책들을 만나며 읽음의 의미를 맛봤다. 그리고 가끔 했던 상상. 언젠가 어떤 약속과 일정도 없어 비어있는 하루가 생긴다면, ‘서점과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글자를 탐독하고 싶다.’ - 그 당시에는 입시에 치여 여유를 찾기 어려웠으니깐.


 스무 살이 되고, 대학교 여름방학 때 이걸 실천했다. 대학교의 방학은 무려 2개월이 넘는다. 심지어 어떤 과제도 숙제도 없는 온전한 내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대학교 방학을 사랑한다.) 서점을 가고, 도서관에 가고. 내가 좋아하는 제목과 저자들의 책을 찾아서 서울을 나들이하고, 동네를 나들이하고. 그렇게 책에 점점 물들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감각적인 글. 단어가 머리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감각을 건드리는 글. 보고 만지는 듯 육감적으로 풀어헤쳐 지는 글.

 글을 쓰다 보면 언어로 형용하기 힘든 어떤 모호한 감정이 있다. 이런 감정은 하나의 단어로 집약되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로 압축시키는 순간 잘려가는 것들이 생긴다. 그래서 다각도에서 인지되어야 하고, 한 시선에서 머물러서 안 된다. 바로 이 복합성을 풀어내려는 글. 세상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보다 손으로 천천히 더듬으면서 그려내는 글에 빠져든다.


 둘째, 인간과 사회의 민낯을 그려내는 글. ‘선’과 ‘악’으로 포장하지 않는 글. 삶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간직하는 글.

 인간의 결점과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풀어놓는다. 독자인 나의 치부를 건드리고, 위선을 직면하게 만든다. 책을 읽고 나면, 지식의 포만감이 찾아오지 않는다. 며칠 동안 책 안에 갇히고, 생각에 체한다. 나의 무지에 부끄럽고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삶에 가벼워질 수 있는 원동력을 배우는데, 나의 존재를 무겁게 하던 포장지들을 -인간의 거만함과 위선- 하나씩 벗겨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과 자신의 모순을 마주하는 시간은 무겁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삶에 한없이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는 나만의 무게를 갖춘다.


 나의 어설픈 기억력은 책의 핵심만 기억할 뿐, 그 외의 것은 머리에 담지 못하기에, 책을 읽고 남는 것은 ‘앎(지식)’이 아닌 ‘사유(고민)’다. 그렇게 어떤 책은 나를 며칠 동안 잡아먹는다.




-글의 무게.

 나에게 독서란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거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가는 행위 그 자체. 글에서 글자가 아닌 사람을 만난다. 나는 질문을 하고, 저자는 거기에 한 권의 책으로 답해준다.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의 시간이다.


 내가 추구하는 관계가 그렇다. 사람마다 고유의 세계를 지니고 있어, 내게 펼쳐지는 세상과 타인에게 펼쳐지는 세상은 다르다. 바로 그 ‘다름’을 알아가는 관계. 글을 쓴다는 건, 나의 생각과 느낌을 언어화시키는 거고, 거기서 타인의 세계가 표면 위로 드러난다. 그래서 글을 통해 나는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영향받고, 위로받는다.

 한편, 독서는 능동성을 띤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와 단어의 연결고리를 독자가 만든다. 이때, 글은 저자의 의도대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저자의 깊은 내면에서 글은 무겁게 만들어지지만, 정작 글은 독자에게로 날아가는 거다. - 글이 결국 독자의 맥락에 맞춰 해석된다는 걸 고려한다면 -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직진해버린다. 하지만 다시 독자의 깊은 내면에 정착해 자리 잡으면서, 글은 무거워지고 본래의 가벼움을 잃는다. (이 이야기는 세상을 단순명쾌하게 설명하는 글보다 주제가 모호하게 드러나는 글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과 맞물린다. 독자가 글의 주제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내어주는 글. 그 안에서 글의 가벼움이 느껴졌다.) 


 어찌하던 모든 독서가 내 경험에 맞춰 자의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돌이켜보면, 글은 한없이 가볍다. 저자가 늘여놓은 단어들의 배열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꼴이니깐. 세상의 진지함을 담은척 하고 있을 뿐, 글의 의미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오로지 독자의 것이라,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제멋대로 뻗어버릴 수 있다.


 글이 지닌 가벼움과 무거움. 그렇게 나에게 글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조심스럽고, 나의 밑바닥을 볼지라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에게만 보여주는 내 자신이면서도, 자의식의 과잉이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모순 덩어리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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