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20kg 이상 살을 빼서 고도 비만에서 보통 몸무게가 되었다. 그러나 살을 빼는데 들인 1년간의 의지가 어느 날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있으면 먹는 것에 대해서 말릴 사람도 그리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항상 폭식하게 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사과와 포도가 있었다. 그래서 사과 2개와 포도 한 송이를 먹었다. 과일로는 배가 부르지 않아 탁자 위에 놓인 아몬드 한 봉지를 집었는데, 가득 차 있던 아몬드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여기까지는 많이 먹긴 했지만, 과일과 견과류를 한 끼로 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로 치킨 먹방을 보았다. 머릿속에 치킨 생각으로 가득 차 30분 거리를 걸어가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사 와서 먹었다. 치킨을 다 먹으니 갑자기 분식이 먹고 싶어 졌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눈앞에서 분식이 아른거려서 다시 10분 거리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을 사 와서 먹었다. 중간에 살이 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자 화장실 변기에 씹던 분식을 모조리 뱉어내기 시작했고 남은 분식은 비닐봉지째 버렸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또다시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평소에 먹고 싶었던 과자 3 봉지와 아이스크림 5개를 사고, 집에 가서 쉴 틈도 없이 이 간식들을 배 속에 채워 넣기 시작한다. 허겁지겁 먹고 난 후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평소보다 몸무게가 불어 있어서 30분가량 울었다. 이성의 끈을 놓고 이 모든 음식들을 먹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자책했다.
앞서 말한 이야기를 읽은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저렇게 많이 먹는 게 가능하냐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가능하다. 식이장애를 겪었던 내가 하루도 아닌 아침 9시부터 낮 4시까지 먹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폭식했으며, 폭식을 한 후에는 씹고 있는 음식을 뱉거나 먹었던 음식을 게워냈다. 폭식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동안은 절식하지만, 절식은 음식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 다시 폭식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자살 충동까지 느낀 나는 누구에게라도 조언을 얻어서 이 지긋지긋한 식이장애를 극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의 식이장애를 고백했다. 고백을 들은 친구는 나와 같이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 여자를 다룬 영국 드라마인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이 드라마는 극심한 폭식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살아온 ‘레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난 후에 어떻게 그 식이장애를 극복하는지를 다루고 있었다. 매화마다 나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 그리고 주인공 자체에 공감이 가 눈물을 흘렸다. 특히 내가 목 놓아 울었던 장면이자 식이장애를 극복하게 도와준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기는 했지만, 극심한 식이장애를 고치지 못한 주인공은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 상담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10살이었던 주인공을 상상해보라고 하며, 그 어린 주인공에게 온갖 모진 말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렸을 때의 자신에게 “뚱뚱해, 못생겼어, 골칫거리야, 가치가 없어, 쓸모가 없어”라는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주인공이 매 순간 그 말들을 자신에게 하고 있다며 너 자신을 달래고, 너 자신에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머리가 띵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나는 끊임없는 자기혐오를 하고 있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살을 뺀 지금도 뚱뚱하고 못생겼기 때문에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자존감을 낮추고 타인과 만남을 꺼리게 만들어 내 존재의 의미를 상실케 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의 나에게 자기혐오를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는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오히려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의 나에게 살을 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먹는 것이 즐겁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한 그 시절을 떠나보내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동안 타인과의 비교를 일삼았던 매일매일을 떠올려보았다. 타인에게는 ‘날씬하다,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라며 칭찬을 해줬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자존감을 깎아내리며 칭찬을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왜 나는 타인에게는 관대한 태도로 칭찬을 해주면서 나 자신에게는 사소한 칭찬조차 허락하지 않는, 각박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드라마를 통해 나는 나 자신에게 욕이 아닌 칭찬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은 하루를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만들어주었다. 노력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변화는 내 인생까지 가치 있고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식이장애를 겪었던 내 경우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를 통해 여성에게 날씬한 몸매에 대한 선망을 부추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식이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여성들에게 나는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드라마를 추천해주고 싶다. 이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극심한 다이어트로써 해결하려는 태도를 고치기를 바란다. 자기혐오가 극에 달았던 시절에 나는 인간관계 문제, 동아리 면접 탈락, 애인과 잦은 다툼 등과 같은 보편적 삶의 문제들이 내가 뚱뚱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날씬한 몸매에 더 집착했다. 하지만 타인과 만남을 꺼려서 친구들과 멀어졌고, 낮은 자존감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주눅 든 모습을 보여서 동아리 면접에서 탈락했고, 성격이 안 맞아서 애인과 자주 다퉜던 것이지 내 몸매와는 전혀 상관이 없던 것이다. 날씬한 몸매는 우리가 겪어야 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지 않는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식이장애라는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식이장애를 극복하게 된다면, 당신도 나와 같이 예전보다 자존감이 높아지게 되면서 삶이 행복해질 것이다. 내가 추천해준 드라마가 당신이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데 좋은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