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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Jul 26. 2017

립스틱 짙게 바르고, 교복 입기

지난 6월 말의 일이다. 고등학교 후배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갔다. ‘후배들’이라고 하면 재학 당시 후배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후배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친구와 필자 사이 세월의 차이는 7년. 지금 생각해보면 숫기도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왜 끼어들었나 싶지만 당시 내 생각은 한 마디로 “뭐 어때”였다. 후배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또 어디 있겠나 싶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짚고 보자면 이십대와 십대의 체력 차는 내 생각보다 커서, 운동 부족의 스물넷은 마피아 게임이 한창일 새벽 2시 무렵 뻗고 말았다.



후배들과의 여행담을 서두로 꺼내는 이유는 그 다음 날 아침, 내가 본 풍경에 있다.


정신없이 잠을 자다 누군가가 대화 나누는 소리에 눈을 떴다. 후배 몇몇이 내 발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단장을 하고 있었다. 거울이 놓인 탁자와 바닥에는 통통한 파우치와 화장품이 가득이었다. 팩트,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립스틱, 섀도, 치크, 피니시 파우더…. 


나는 여행길에 챙겨온 나의 홀쭉한 파우치와, 눈곱만 겨우 떼고 등교하면서도 늘 지각 신세를 면치 못했던 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며 “참 부지런하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친구들은 새벽까지 노느라 잠을 조금도 못 잤다고 했다. 일찍이 잠에 들었어도 몽롱할 시간에 꽃단장이라니, 정말 부지런하지 않은가. 길거리에서 문득 문득 보이는, 곱게 화장한 고등학생들을 봐도 마찬가지 감상이 든다. 그들은 남들보다 몇십 분은 일찍 부지런을 떨었을 것이다. 



청소년은 ‘꾸미기’도 맘대로 못하나요?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초등학생의 12%, 중학생의 52.1%, 고등학생의 68.9%가 색조 화장 경험이 있다고 답하는 2017년의 지금도 화장을 포함한 ‘꾸미기’는 학생의 영역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왜 학생의 ‘꾸미기’를 제약하는가 물으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들먹이기 일쑤다. (청소년의 입을 틀어막는 마법의 주문이다. 공부!)


이렇게 대답하는 꼰대들이여, 좀 더 솔직하면 좋을 것을.

사실 이 모든 작당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믿도록 만들기 쉽’기 때문이,

공부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서울시, 경기도 등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고 적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실현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자기표현을 한다는 의미다. 자기표현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나는 뭐든 자연스럽고 편한 것을 좋아한다. 화장을 할 때도 너무 눈에 띄는 색조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따금 기분에 따라 탈색도 하고 싶고, 흔하지 않은 색깔의 립스틱도 바르고 싶다.



이 모든 외견적 작업은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동시에
나만의 취향을 빚을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로서 구성된 ‘나’를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괄목적인 기능을 한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자기표현을 과도하게 억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등교하며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 똑같은 시간에 하교하고 똑같은 학원에 다니고, 똑같은 방식으로 놀고(코인노래방, PC방, 오버워치, LOL, 갓챠샵….), 똑같은 전형을 통해 똑같은 대학에 진학한다(혹은 똑같은 대학에 진학하길 기대 받는다). 이러한 틀 바깥의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 순간 청소년은 ‘일탈’을 낙인찍힌다. 그 어디에도 ‘나’가 없고, ‘나’를 표현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 꾸미기, 즉 복장, 두발 등의 꾸밈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임을 잊지 않았으면


물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도 거울을 들여다보거나 화장을 고치는 등의 행동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는 일선 교사들의 푸념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유행에 따라 취향이 획일화된다는 문제 제기나, 자기표현의 방식조차 화장품이나 염색약, 액세서리 등 소비품을 통해야 하는 통에 학교에서까지 자본주의가 판치는 현실에의 비판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값싼 화장품을 쓰다가 피부가 상한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종종 기사화돼서, 고작 몇 년 더 산 선배지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다음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다.


나를 꾸미는 데 시간을 보내되,
‘꾸미기’에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꾸미기’는 나 스스로를 옭매는 코르셋(여성들의 보정 속옷. 사회적 압박을 비유하여 쓰기도 한다.)이 될 수 있다. “사회에서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은, 여성의 꾸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화장을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라면, 화장을 하지 않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다. 다른 말로, 꾸미기는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지 ‘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까무잡잡한 피부나 얼룩덜룩한 여드름 자국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여성을 마치 옷가게 마네킹처럼,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완벽한 존재로 단장시키려 하는 이 사회를 가만히 목도해서는 안 된다.


꾸미기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과 판단임을 생각하자.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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