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에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고민, 대입을 위한 경쟁 속에서의 고독감, 자유로운 삶을 억압받는 것.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기 때문에 수험생 시절을 떠올렸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누구나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들은 “그래도 공부할 때가 가장 좋을 때야.”라고 말하며 위로를 건네지만, 암기할 내용들로만 꽉꽉 채워도 모자랄 나의 머릿속은 온갖 잡다한 고민들로 가득 차 늘 내 일상생활에서 맴돌고 있다. 그렇게 나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흔들리며 우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나 역시도 수험생의 신분인 시절이 있었다. 나는 상당히 계획적인 사람, 소위 말해 ‘플랜맨’이다. 내 머릿속에는 늘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며 물건은 늘 놓던 자리에 놓아야 했고, 책은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야 했으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동선을 그리며 이동했다.
다른 사람은 보며 말한다. “너는 정말 피곤하게 사는구나!” 작은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항상 정리하며 그림을 그리던 나에게 수험생 생활의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불확실한 미래’였다.
스무 살,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어떤 대학생이 되어 무엇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확신과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나의 표지판을 세울 곳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 그곳이 평평한 땅일지 비탈길 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책장을 넘기며 문제집에 비가 쏟아지면 나의 대학 생활도 이토록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지, 혹은 나의 대학 생활이 1년 더 미뤄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내 수험생활 동안 늘 함께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외국어고였다. 특목고에 입학하면 내 인생에 꽃길이 열릴 것만 같고, 부모님이 기뻐하시니까 그 이유로 열심히 공부하여 특목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곳은 내 기대와는 달랐고,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친구들은 앞다투어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데, 나는 아무리 뛰어도 격차를 좁히기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내가 아닌 주위를 먼저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보다 진도를 두 단원이나 빠르게 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고,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닌 다수가 따르는 방향에 맞춰가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 안의 문제는 곪아있는데 겉으로만 따라간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곰팡이가 잔뜩 핀 벽지를 말리지 않은 채 계속 새로운 벽지를 붙여나가도 곰팡이는 살아있는 것처럼. 나의 계획은 무너졌고 공부에 더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책을 봐도 무슨 말인지 1도 모르겠고, 책을 보는 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기에 나 자신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학교를 잠시 떠났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였기 때문에 방학에도 학교에서 지내며 보충수업을 진행했다. 주위에서는 혼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냐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사실 나는 그 반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서 집으로 떠났다.
짧은 방학이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분명 있었다. 비교할 곳도, 비교를 당할 곳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고 느리게 걷고 있다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이전의 나보다는 훨씬 스스로에게 여유로웠고 만족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생활도 함께했다
이후 나는 엄청난 성적 상승으로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수능 대박으로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으면 좋겠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하지만 성적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지만, 눈에 보일 만큼 크게 오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업적인 측면에 있어서 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은 분명히 마이너스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의 성장통으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험생이라는 나의 신분과 성적 압박과 진로 고민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가짐은 분명 변했다. 이전의 나는 인생의 실패를 겪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실패를 받아들이고 미숙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어주었고, 이러한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거나 회피할 곳이 많지 않았기에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힘들고 고민만 가득할 때,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이고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힘이 된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여전히 계획을 세우는 ‘플랜맨’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집돌이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대학생활은 행복함과 자유분방함으로 가득한 청춘이기도 하지만, 대입을 앞둔 그때와는 또 다른, 오히려 더 다양한 문제와 고민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연애에 실패하여 좌절감을 맛보기도 하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고, 인간관계와 주위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며, 상처를 주고 있다. 더 높은 산과 문제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감과 막막함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미래에 대한 확신과 방향이 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다.
자존감은 내가 내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 자신감은 자신의 가치와 품위를 유지하려는 마음이다. 우리가 꽃이라면 자존감은 뿌리, 자신감은 꽃송이다. 뿌리가 깊으면 외적인 영향을 받아도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틔워 자태를 뽐내면 많은 사랑과 주목을 받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는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성장통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그러한 아픔과 치열한 고민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지금 우리는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그리고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