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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Nov 01. 2017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기'

‘인생 도시 한 달 살기’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지인이 메신저로 보내준 적이 있다. 내용은 한 은행의 카드를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한 고객에 한하여 ‘다른 도시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는 것’을 지원해주는 이벤트였다.


짧게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문화와 냄새, 사람들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살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고 기대했던 것들을 이룰 기회의 이벤트였다. 실제 주변의 지인들이 그 은행사의 카드를 사용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한 달 살아보기’, 3박 4일, 5박 6일 짧게 여행하는 것 이상의 매력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 ‘여행’, ‘다른 나라’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필자도 ‘대학’, ‘대학 생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 생활은 좀 더 자유롭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필자가 반강제적이라고 느끼는 고등학생의 생활에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많은 공식과 이론들, 대학 진학 여부도 묻지 않고 성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을 나열하는 진학상담은 고등학교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또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주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일상에서 떠나는 여행처럼 대학을 고등학생의 탈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입시 공부로, 친구들과의 경쟁을 힘들어했던 필자는 대학을 ‘포기’하려 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하셨고, 그때부터 ‘무슨 과에 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나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자.’의 결론을 내렸다. 아동학과 진학의 목표를 잡고,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이 결론은 2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좋은 에너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대학을 가게 되었다. 대학에 간다면 반강제적, 의무적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말이다. 






대학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하고 싶은 과목을 수강하지만, 강의 내용은 교과서 내용이었다. 시험에 치이는 고등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공부하면서 드는 여러 의문점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 문제를 생각해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많은 과제, 시험, 결국엔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때 다시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와 다르게 대학에서는 휴학(학교를 신청한 기간 동안 쉼)이라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고, 대외활동(교내 이외의 활동)을 통해 많은 경험 할 기회가 있었다. 휴학을 결정한 필자는 장기 자원봉사를 선택해 인도에 가게 되었다. 






맡은 반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필자가 힌디(인도 언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어서 소통이 굉장히 어려웠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로의 언어를 몇 마디씩 배우기도 하고, 비언어적 소통으로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에 따라 서로를 생각하고 그만큼 아끼게 되었다.


아직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 허용되는 곳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맞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매우 아팠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학교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이 어떤 실수, 잘못했더라도 때리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네가 뭔데’였다. 이때 왜 대학(아동학과)에 진학했는지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19세 고등학생은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서 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주변에 만날 수 있는 아이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아이를 위한 일.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현장은 필자에게 전문성과 자격을 요구했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고, 책을 읽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필자는 누구보다 ‘말’에 힘이 있는 사람, 다시 말해서 ‘전문가’라는 목표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다.






‘왜 학교에 다니는가?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고 돌아온 대학은 필자에게 많이 달라졌다. 아동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강의는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방향성이 생겼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여러 연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할 일이 늘어났다. 


대학을 진학하고자 할 때, 진학보다 다른 일을 해보고자 할 때, 그 일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실 학생 때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계셔서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더 가까이에 있다. 주변 어른들을 찾아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많은 대학생 멘토링을 통해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자유 학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필자처럼 자원봉사를 가는 방법도 있고, 파트타임으로 일해보는 방법도 있다.






사실 가장 도움이 된 방법은 주변에 어른들, 선배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인도에 가는 것을 결정하기까지 상대가 필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인에게 고민 상담을 받다 보니 그 지인의 주변에 먼저 다녀온 사람들을 소개받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 먼저 다녀온 선배를 소개받아 가기로 결정하고 걱정되었던 고민들, 결정하지 못한 마음에 대해 털어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무언가 주변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항상 두려움을 안겨 준다. 답이 아닌 것 같은 불확신에서 오는, 하지만 이제는 먼저 경험한 선배가 된 필자는 말하고 싶다. 항상‘답’은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되고 살고 있는 곳이 삶이 된다. 



나는 대학에 던져졌다.



필자의 지인이 하는 이야기이다. ‘수능’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학생 때의 시간을 보내왔던 그 지인은 대학에 가보니 어떤 것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했다고 한다. ‘인생’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대학에 진학한다면 좀 더 대학을 내 입맛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것은 ‘포기’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였다. 필자는 결국 대학 진학을 선택했고 많은 경험을 했다. 이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이 해야 할 일들로 어깨가 무거운 날, 한 번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공부에 지쳐있는 당신에게, 멋진 일의 과정을 해내고 있는 당신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방향이 있는 여정은 지칠지언정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From. 애드캠퍼스 칼럼멘토단 2기 멘토 김빛나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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