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잖아요..
맛을 느끼는 개인의 감각은 컨디션의 지배를 받는다.
맛을 느끼는 개인의 감각은 단련하지 않으면 부정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원두를 감별하는 직업군이 따로 있고 바리스타들도 개인의 역량을 강화화기 위해서 큐그레이더 같은 자격증 및 훈련, 인증을 통해 자신을 다듬고 단련한다. 그래서 컨디션을 조절하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도 균일한 평가가 가능하다. 그에 반해 일반 사람들은 그 정도로 감각적이지 못하다. 단순히 맵고, 짜다 정도의 쓰다, 달다, 구수하다 등의 모호하고 주관적인 표현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제 아무리 원두가 뛰어난 향미와 다채로운 커피노트를 가졌다고 한들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맛이라는 영역이 꼭 전문가들 수준으로 노력을 해야 알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그야말로 감각이라는 것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도 좋은 느낌 혹은 불편함을 구분하게 해 준다. 그리고 나는 그 정도 기준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큰 굴레에서 이유정도를 알고 마신다면 적어도 자신(손님)과 상대(바리스타)를 오해하는 폭이 좁혀질 수 있으니 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커피가 재배되고 수확되어 원두에 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미 맛은 9할 이상 정해진다.
2년 전에 3개월 정도 로스팅 수업을 들으면서 생두를 감별하고 로스팅을 통해 원두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바리스타로 몇 년간 일하면서 나름대로는 음료에 대한 정성을 쏟았지만 커피머신을 통해서 바리스타가 자기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커피 맛의 변화는 솔직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스탠더드로 알고 있는 온도와 기압, 추출시간과 에스프레소의 양을 기교 없이 추출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렇다. 추가적으로 단 맛을 내는 재료를 넣거나 커피 본연의 맛을 변화시킬 다른 요소를 넣는다면 그건 또 다르게 연구해야 할 분야가 된다.
커피는 생산과정에서 어느 지역에서 어떤 품종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확되고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천의얼굴을 가진다. 마치 중복되는 유전자가 한 명도 없는 인간과도 같아서 거슬러 올라가면 끝이 없어지기 때문에 어느 선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자신의 바리스타로서의 입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원두를 이력을 소개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몇 번의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해도 그 자체가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아니다. 알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3:3:4의 비율로 블렌딩 된 1kg의 원두는 20g씩 담아보면 늘 3:3:4의 비율은 아니다.
오늘의 요지다. 예를 들어 브라질 40%, 콜롬비아 30%, 케냐 30%의 비율로 블렌딩을 하여 1kg를 호퍼(사진)에 넣고 갈아서 포터필터(위의 사진)에 원두 20g을 담아 계속 추출을 한다고 가정해도 사실 각 20g씩의 원두의 비율은 조금씩은 다르다. 원두의 분쇄도에 따라 맞물리지 못하는 빈면적은 있게 마련이고 어딘가는 촘촘히 어딘가는 느슨하게 쌓여서 20g을 이룰 것이다. 그럼 당연하게도 애초에 시작된 비율과는 약간의 차이를 가진다. 물론 이 정도의 차이를 감별해 내고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이 몇 이나 될까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매장에 방문하여 커피를 마시는 단골 고객들은 원두에 대한 선지식이 없어도 혀 끝으로 구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깨어있는 바리스타들의 경우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서 그날의 추출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유야 수십 수백 가지가 있다. 중요한 건 고객 스스로 주관을 갖는 일이다.
회전율이 낮은 매장의 경우는 어제 뜯은 원두를 오늘 그리고 심지어 내일도 써야 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보관을 정말 잘하지 못한다면 거기서 또 맛은 달라질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나가면서 거친 맛은 한층 사라지지만 향미는 그만큼 함께 빠져나가니 어제 받은 느낌을 오늘 받을 수 없고 오늘 받은 느낌이 내일까지 전가되지 못한다. 반대로 회전율이 높아 매번 볶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원두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고 로스팅 날짜와 포장 날짜 등을 꼼꼼히 확인시켜 주는 매장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 자체로 전자의 매장이 나쁘다기보다는 커피가 재밌는 성격을 가진 음식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소비자가 똑똑해지고 현명해질수록 바리스타들도 거기에 맞춰 더 노력하고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믿는다. 요새처럼 지적이 난무하고 정보가 여기저기 남발이 되어 있는 시대에 올바른 주관을 갖는 일은 필수이다. 주변에 즐비한 커피매장들을 꼬집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만, 개인들이 주관을 가지고 건강하고 흥미로운 커피 생활이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