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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Jul 31. 2022

태연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아이의 짜증을 피해 남편에게 맡기고 잠시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다 문득 책장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내용이었더라. 제목을 읽고 글을 읽어보는데 내용이 얼핏 기억이 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너무 새로웠다.


예전에는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건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나 서른이 넘은 나에게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젊었고, 새로운 것을 읽고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바빴던 그런 나에게 읽었던 책은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 정도였나 보다.


책을 사러 자주 나갈 수 있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 동안에 잊고 지내던 예전의 책이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의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 많이 없고, 새로운 것은 오히려 긴장을 유발한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고 안정적 이어졌다. 그것이 나에게 편안함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짓누르는 버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저 오늘의 내가 조금 피곤한 날은 버겁고, 오늘 하루가 너무나 감사한 날은 즐겁게 흘러가고. 변덕을 부리는 나의 마음을 달래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누군가는 참 편안하겠다. 배부른 소리다. 이야기할 수도 있을 그런 나의 하루들.


그래서 내가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태연한 인생'



아이가 갑자기 잘 가던 유치원을 안 가겠다며 울고불고하기를 일주일째. 막막함과 걱정 혼란 원망 속상함 많은 것들이 뒤섞여 아이의 투정을 어른으로써 바라볼 수 없는 그런 때.



첫 장을 읽어 나가며 예전의 기억이 조금은 났지만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기억은 정말 달랐다. 짧게 읽고 난 후 책을 덮고 제목을 보았을 때 다시 한번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태연하다 :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에서 태도나 기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예사롭다.


단어 뜻을 찾아보고서야 태연하다는 말뜻을 명확히 이해했다. 태연하다는 말이 되려면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받아들인다는 것이었구나.


앞으로의 나에게 태연이 살아라라고 말하며 위로해주어야겠다. 그저 흘러가는 하루일 뿐이라고 금방 또 괜찮아진다고. 물론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의 등원 거부는 끝이 안 나고 나의 걱정도 끝은 안 났지만 어쩔 도리가 있을까.


체념인지 받아들임인지 모를 그 어디 중간쯤의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태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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