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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Jul 31. 2024

밤 10시 누나를 위한 짜파게티

누나를 한 대 때리고 싶었어.

"내가 요즘 좀 이상한 것 같아." 


점심으로 부대라면을 먹던 아들이 말했다. 


"왜?" 

"요즘 부쩍 짜증이 늘고 쉽게 화가 나." 


오호라. 이건 또 무슨 순간이던가. 

사춘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제 잠자고 있던 누나한테 점심으로 뭐 먹을 거냐고 물었거든. 그런데 누나가 대뜸 짜증을 부리잖아. "

"누나가 잘못했네. 누나는 맨날 짜증만 내. 그런데?" 

"그런데 평소 같으면 그냥 화만 났을 텐데. 어제는 누나를 한 대 치고 싶더라고. 내가 왜 그런지 이상해." 


말인즉슨, 잠을 깨우는 자신을 향한 누나의 짜증을 듣고 화만 난 것이 아니라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아들의 성찰이 담긴 고백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랬구나. 그래도 다행인 거야. 스스로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지금 성찰하고 있잖아. 

그리고 누나는.... 원래 좀 싸가지가 없잖아. 엄마한테도 그래" 


뜬금없는 딸아이를 디스한 격이지만, 실제로 대문자 T인 딸아이가 매몰차다고 느껴진 적이 있었기에 솔직한 엄마의 마음을 전했다. 

어쩌면, 이렇게 아들의 마음을 인정해 줘야지 실제로 저보다 작은 누나를 때리는 일은 없을 것도 같았다. 


성경에는 마음으로도 죄를 짓는다고 했다. 

실제로 때리지는 않았지만 때리고 싶은 마음까지도 죄라면 죄일 듯.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아들은 누나에게 무려 전 재산의 95퍼센트인 만원을 선뜻 빌려주었고 

밤 10시에 누나를 위한 짜파게티를 끓이는 중이다. 

그리고 주방에서 뚱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방에 처박혀 글을 쓰고 있다.


"딸아, 너는 알고 있니?

네 동생은 그런 남자야. 

누나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해하는 남자. 

그리고 누나를 위해 게임을 하다 말고 이 밤에 라면을 끓여주는 남자.

참, 괜찮지 않니? 

그러니 고맙다고 좀 해라." 


클레어 키건의 [이토록 사소한 것들]을 읽다 보면 삶은 거대한 것들로 채워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삶은 그저 한 편씩 또는 한 조각씩 모으고 모아서 맞춰진 퍼즐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조각은 참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아들이 끓인 50번째의 라면처럼. 

그저 친절을

그저 격려를

말이나 행동으로 한 것과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내 삶의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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