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의 유산 2

by 괜찮은 D

1화에서 연결되는 글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저기 저 바닥, 컴컴함 속에 가라앉았다.

차라리 슬퍼하자.

마음껏 슬퍼하자.

아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저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닌 그 슬픔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사유하기 시작할 때 감정은 더 분명해진다.

희미한 감정은 너무 흐릿해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어딘가 남아있지만 선명한 감정은 그 끝이 분명해서 오히려 평온한 마음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슬픔과 죽음을 생각하며 문득 떠올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외할아버지였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참 좋았다.

다른 분들보다 특히 좋았던 이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만나기를 기대하셨던 분이어서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나의 이름 은지는 은혜 은(恩)자에 복 지(祉) 자이다. 아마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사랑했을 것이고, 은혜로운 복이 넘치게 사는 축복을 받기 원하셨나 보다.


명절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늘 대답을 준비했다. 나에게 늘 똑같은 질문을 하셨으니까.


“은지야~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할아버지가 유일했다. 그리고 난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선생님이 될 거예요.”


그럼 나는 자랑스럽게 수가 잔뜩 적혀있는 성적표를 보여드렸다.

물론 할아버지는 수가 적혀있는 성적표보다는 착하고 성실하다는 서술 문장을 훨씬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으니까.


할아버지는 나의 수능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돌아가셨다.

교실에서 열심히 야자를 하다가 담임 선생님께서 복도로 나오라고 날 부르셨는데, 그때 이미 나는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직감했다.


“은지야~”라고 하는 그 순간에 벌써 눈물이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수능 성적표도 못 보시고, 내가 교사가 된 것을 알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추억하다, 왜 교사가 되었는지, 어떤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생각이 났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더라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장하고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겠지.

힘들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세상 무엇보다 귀한 일이라고 응원해 주셨겠지.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기뻐해 주셨겠지.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천천히 낮게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너무 환하게 웃어 눈이 작아지는 표정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마음 가득 차오르는 할아버지의 믿음까지.


글을 쓰며 할아버지께서 생전의 목소리로 조곤조곤 내 귓가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미 내 안에 씨앗을 뿌려 놓으셨었나?

역시, 할머니처럼 할아버지도 알고 계신 게 분명하다. 힘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는 것과 결국은 내가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나를 떠올린다.

열심히 했던 나를 떠올리고 상처받고 힘들었던 나도 떠올린다. 그간 만났던 학생들, 동료들 여러 학교의 모습도 떠올린다.

20년쯤 지났으니 이제 좀 유능하고 세련된 멋진 교사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믿을 수 있는 것은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천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할아버지. 제가 벌써 교사가 된 지 20년이 되었어요. 저 잘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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