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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Mar 17. 2020

이 나이 먹도록 적성을 찾아 헤매는 이유

착한아이 컴플렉스


 


 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래 한 편입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하고 그곳을 향해 가고 있지만, 졸업 후 근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황하고 또 방황했죠. 어렸을 때부터 일찌감치 본인의 진로를 정해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딱 맞는 진로를 찾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만 할까?


어렸을 때는 찾을 수 없었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모범생이 아니라, 어른들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인데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나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그저 '어른들의 기준에 착한 행동'만 하며 지냈죠. 가끔 학원이나 독서실 땡땡이치고 만화방에 가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갔던 게 소심한 일탈이라면 일탈이었을까요? 별다른 '사고' 한 번 쳐보지 않고 이렇다 할 추억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여기서의 사고는 범법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관대로 지를 수 있는 용기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반기, 저항 정신을 의미하죠. 어쩌다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어른 말씀이니까..'하고 꾹 참고 지나가곤 했거든요.


 그 근원을 따져보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연스레 답습했던 '말 잘 듣는 학생'의 억압에 눌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른들은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라는 프레임을 전달하거든요. 어른들의 말에 반기를 드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라고 규정되죠. 그러다 보니 어른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그게 불합리할지라도), 그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은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 쓰는 편지 마지막 구절에는 응당 그래야 하는 듯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이 될게요.'라고 썼습니다. 또 학기말 생활 통지표의 '이 어린이는 품행이 단정하여 교우의 모범이 되며'라는 피드백은 바른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믿음을 확인시켜주었죠. 


 그 후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수님의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고, 학교의 규율(가끔 이해할 수 없었던)에도 저항하지 않는 말 잘 듣는 학생이었습니다.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죠. 인정받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서... 기성세대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기가 꺼려졌습니다


 부모님이나 교수님이 가라고 하는 길은 별다른 의심 없이 옳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진로를 고민할 때 막연하게 공무원 시험에도 뛰어들었구요. 어른들이 안정적이고 옳다고 했던 길이었거든요. '부모님(어른)이 옳다고 한 것 = 나에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제 생각의 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주는 FM 프레임이 안전하다고 믿었고, 그대로 지켜나갔었죠. 어쩌면 제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꽤 오랜 기간 방황을 하게 되었던 것도, 그 이유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내 욕구나 욕망은 지운채 기성세대의 말만 답습하다 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들의 기대와 욕망에 그것을 투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진로로 방황했던 책임을 부모님이나 기성세대에 전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책임 소지의 문제로 보자면 환경에 대한 탓은 변명에 불과하며, 나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제 잘못이 가장 크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나 사회적인 분위기와 여건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말 잘 듣는 학생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교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학생이나 부모님에게 반발하는 자녀의 모습은 일단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 선생님(부모님)께 감히' 하면서요. 그 시각이 두려워서 내 목소리를 내기가 꺼려지기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하기보다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훈련이 어려서부터 되어있어야 본인의 욕구에 민감해지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걸 하지 못해서 지금껏 '내가 도대체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모르겠어요'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닐까요? 가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막연히 부모님의 생각을 답습해서 진로를 정해버리는 경우를 꽤 많이 보고는 하거든요. 기성세대가 제안하는 길은 그 세대에만 안정적인 코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길이 아닌 위험한 길일 가능성이 크구요. 지금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막연히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맹목적으로 쫓는 모습을 보면 꼭 예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저립니다. 



 '내 목소리를 내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나와 다른 생각일지라도 하나의 주체적인 목소리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길 바랍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회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는 다양성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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