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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Feb 21. 2024

도대체 퇴고의 끝은 어디인가요?

#17. 다듬기의 무한 굴레





 원고를 쓰는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자면 퇴고하던 순간입니다. 고쳐도 고쳐도 고칠거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만하면 되겠지 싶어서 마무리했다가도, 다시 들여다보면 수정할 거리가 또 발견되는 것이었습니다. 보다가 이제 더 이상 고칠 만한 게 없다는 결론이 나야 멈출 수가 있는데, 봐도 봐도 끝이 없으니 도무지 퇴고를 끝낼 수가 없는 것이었죠. 원고를 들여다볼 때마다 고칠 부분과 부족한 부분만 보이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웬만큼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또 수정사항이 생길 때의 망연자실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고쳐야 하는 건지. 원고를 수십 번, 체감상 수백 번 읽으며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전날 썼던 글이 다음날 다시 미워지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던 키워드를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퇴고 언제까지

퇴고 끝은 있나요

퇴고 끝내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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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작가들은 어느 시점까지 퇴고하는지, 도대체 퇴고를 얼마나 해야 적정한 건지 도움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죠. 첫 책이라 유독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웬만큼 출간 이력이 있는 작가의 경우에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본인만의 퇴고 철칙이나 확고한 기준이 있을 텐데, 저처럼 초보 작가인 경우에는 도대체 그 시점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도 물론 퇴고하긴 하지만, 책 원고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언제든 수정이나 삭제할 수 있기에 부담이 덜하다면, 종이로 출력되는 책은 영영 박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죠. 혹시 오탈자나 잘못된 정보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사실 출간이 된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책을 생각만큼 집요하게 파고들며 보는 사람은 없었고, 혹여 잘못된 내용이 발견된다 해도 2쇄 이후에 수정해도 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죠(다음 책을 쓰게 된다면 부담감과 불안을 덜고 가볍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퇴고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글은 고칠수록 나아지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책 역시, 초고와 실제 출간된 원고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다듬기 이전의 초안은 너무 형편없이 느껴져서 다시 읽기가 오글거리는 수준의 글이었습니다. 여러 번 퇴고를 통해 수정해서 이 정도지, 그 상태 그대로 출간되었다면…. 상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립니다. 어디에선가 들었던, 퇴고란 '글 쓰며 그 사이 성장한 내가 발견하는 것'이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원고를 마무리하며 저 역시 퇴고 스킬이 좀 생겨난 것 같습니다. 저만의 퇴고 원칙은 '새롭게 보기'입니다.  퇴고를 하며, 동일한 패턴으로 여러 번 보는 것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크게 가지에 변화를 줍니다.




첫째, 시간의 새로움

 원고를 묵혀서 숙성시킨 이후에 다시 보는 게 좋습니다. 글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거죠. 편집자님 역시 처음 완성 원고를 전달하는 시점과 본격적으로 편집 들어가는 시점 사이에 텀을 좀 두셨습니다. 그리고 완성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이후,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을 추천하셨죠. 이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글을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롭게 발견되곤 합니다.


둘째, 읽는 방식의 새로움

 작가마다 작업하는 방식은 각기 다를 겁니다. 저는 주로 한글 파일에 썼고, 워드 파일에 작업하거나 원고지에 쓰는 분도 계시겠죠. 이렇게 작업하는 플랫폼에서만 글을 퇴고하다 보면 익숙해서 색다른 시선으로 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내 글이 아닌 것처럼 새롭게 보려면,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게 좋죠. 이를 테면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만 주로 검토했다면, 인쇄물로 출력해서 보거나, 모바일로 보거나, 하는 식으로 읽는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겁니다. 주로 사용하던 폰트를 바꿔보는 것도 좋습니다.


셋째, 듣는 방식의 새로움

 글을 소리 내서 읽어봐야 한다는 것은 워낙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직접 소리 내어 읽게 되면, 눈으로 볼 때 놓쳤던 부분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눈으로는 부드럽게 읽혔던 문장도, 소리 내어 읽으면 매끄럽지 않게 들릴 때가 있고요. 그래서 퇴고할 때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소리 내어 읽어도 보고, 직접 녹음해서 매끄럽게 들리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반복하여 소리 내어 읽는 게 지겹다면, 라디오 사연 낭독하듯이 BGM을 깔고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생각해보면 퇴고가 더 어려웠던 이유는 '완벽주의'가 발동되어서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부족한 것만 같은 결과물에, 계속 고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거죠. '하루 온종일 교정보면서 오전에는 쉼표 하나를 떼어냈고, 오후에는 그것을 다시 붙였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글 쓰는 사람이라면 퇴고는 힘들지만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입니다. 적어도 더 이상 후회는 남지 않을 만큼 보되, 더 이상 고치면 나빠질 것 같을 때 비로소 멈추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 번 퇴고를 반복하다 보면, 본인만의 스킬이 생기실 겁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퇴고를 끝냈다면, 그만 글을 떠나보내주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완벽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거죠. 왠지 부족한 것만 같아서 마음이 괴롭더라도,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에 더 붙잡고 싶은 집착이 생기더라도, 이제 그만 글을 떠나보내주세요. 오히려 지금의 아쉬운 마음을, 다음 새로운 글을 구상하는 것에 쓰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부족'하다 느끼지만, 

독자에겐 '완전'하다고 느껴질 수 있고


나는 '완전'하다 느끼지만,

독자에겐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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