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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Oct 12. 2023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 걸까?

일상을 여행처럼?!



 얼마 전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의 해외여행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여행 경비를 위한 환전도 하고, 공항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면세점 쇼핑도 했습니다. 출입국 심사와, 다른 나라에서 이방인이 되어 보는 경험도 실로 오래간만이었죠. 미리 준비해 둔 대로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모든 게 순탄한 여행이었지만, 삐걱거렸던 건 한 가지, 다름 아닌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무어라 말하기 좀 애매하지만 묘하게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생경해서 매력적이었던 이전 여행들과 다르게, 이번 여행에서는 그리 새롭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죠. 어쩐지 여행에 대한 감흥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무얼 보아도 강렬하게 좋다는 느낌보다는 '여기는 그렇구나' 정도로 약한 반응이었죠. 무엇보다 여행이 끝나는 날, 도드라진 변화를 실감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 휴가를 계획하곤 했던 이전과 달리, 예전만큼 절실(?)하게 다시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이제는 여행가면 어떨지 뻔히 알겠는 느낌에 기대감이 줄었달까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여행'과 '설렘'은 의심할 여지없이 완벽한 동의어였습니다. 팍팍하고 건조한 일상에서 여행은 마치 단비 같았습니다. 정말 다양한 나라의 국경을 문지방 닳듯 드나들었고, 여행에 특화된 카드를 통해 PP카드를 발급받아 공항마다 다른 각양각색의 라운지를 방문하는 것도 하나의 낙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언젠가 다시 떠날 날을 꿈꾸며 지내고 있었죠.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이후로 가장 큰 삶의 낙이 사라졌다며 우울해하곤 했고요. 마치 해외병에 걸린 것처럼 그때는 꼭 나가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외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굉장히 쳐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오기 싫었기 때문이죠. 돌아와서 마주할 현실(쌓여있는 업무, 복귀하기 싫은 직장 등)이 두려웠기에 여행이 끝난다는 느낌이 몸서리치게 싫었습니다. 떠날 때의 기분과 돌아올 때의 기분은 극과 극을 달렸죠. 떠날 때는 날아갈 듯 좋았지만, 돌아올 때는 세상 침울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고 설레었는데, 최근의 여행에서 왜 갑자기 이렇게 감흥이 사라진 걸까?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가설 : 이미 너무 많은 여행을 해서?

  예전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 처음부터 너무 인프라가 잘 되어 있거나 볼거리가 화려한 곳에 가면, 그다음에 방문하는 나라들은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었죠. 예를 들어 자연경관의 끝판왕이라 일컬어지는 스위스나, 광활함의 대명사인 미국 등을 먼저 가면 그다음에 가는 여행지들은 무언가 애매한 스케일로 느껴진다던지 하는 의미입니다. 저 역시 이미 유명하다고 하는 곳은 거의 가보았기에, 단순히 여행의 경험이 많이 누적되어서 그리 큰 감흥이 없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어딜 가도 '세상 사람 사는 모든 곳은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두 번째 가설 : 나이가 들어서? or 체력이 떨어져서?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경험이 쌓이기에(모두 그런 건 아닙니다만) 더 이상 새로울 것이랄 게 없는 건데요. 마찬가지로 여행 역시 이미 좋은 풍경들을 많이 보고 나면 마주한 풍경이 더 이상 새롭다거나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체력도 떨어지므로 같은 곳을 가더라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줄어듭니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듯이, 피곤하면 온전히 여행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죠. 20대 때야 밤샘해도 쌩쌩했다면 지금은 초저녁부터 잠이 온다거나, 그렇게 많이 이동하지 않았음에도 금세 지치고 마는 체력이 되었지요. 


세 번째 가설  : 행복을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되어서? or 일상에 만족하게 되어서?

 여행이 목말랐던 당시의 일상은 출근-업무시간-퇴근을 비롯해 식상하디 식상한 일상이었고, 딱히 특별할 게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여행에서의 특별함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죠. 하지만 일상이 꽤 만족스러워진 이후로 여행은 더 이상 간절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전에는 무조건 화려하고 이색적인 것이 좋았다면, 편안한 듯 익숙한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기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특별한 시선으로 보다 보니, 주변에도 꽤 좋은 곳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집 근처에서 마주하는 풍경 또한 멋지다는 것을 종종 깨닫기도 합니다. 심지어 해외의 어느 곳은 국내에서 이미 본듯한 기시감마저 들었지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이 중 마지막 가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 여행의 목적은 주로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특히 평범한 일상이 불만족스러울 때 더더욱 해외여행에 목말랐습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고, 왠지 떠나고 나면 현실과 다른 판타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떴지요. 평소에는 마주하기 힘든 온갖 이색적인 풍경들을 비롯해서요. 하지만 그럴수록 일상과 여행지의 괴리감이 커져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후유증만 더욱 커질 뿐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일상에서 여행지에서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다름 아닌 '일상을 낯설게 보기'인데요. 평소 걷던 거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특별함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겁니다. 마치 온몸의 안테나를 켜고 있는 여행지에서처럼요. 우리는 여행지에 가면 아무것도 아닌 골목이나 간판도 감탄하며 바라보거나, 새로운 풍경이라며 놀라워합니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역시 우리나라에 오면 우리에게는 별 것 아닌 특별한 일상을 신기하게 바라보지요. 내게는 특별한 여행지가 현지인에게 일상이듯이, 우리 또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일상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365일 중 여행하는 며칠만 행복하기보다는 그 외의 기간도 여행하는 것처럼 즐겁게 지내기로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상을 여행처럼 지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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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신가요?


혹시, 언젠가 떠날 여행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면,

일상을 여행하듯 지내보는 건 어떨까요?

여행지에서처럼 매 순간 새로워하고 감동하면서 말이죠.


그 순간 평범함에 가려져 있던 특별함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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