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책 <무엇이 옳은가>의 저자인 후안 엔리케스는 TED가 가장 사랑한 미래학자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기도 하고, 책 제목도 짧지만 강렬해서 마음이 끌렸습니다. 거기에 책 표지에 적힌 문구("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는, 책을 읽으면 미래의 결정에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더했습니다. 뒤표지에 적힌 이어령 교수, 정재승 뇌과학자, 이기진 교수 등 쟁쟁한 분들의 추천사도 더욱 기대를 부채질했고요.
책을 읽고 난 뒤 무언가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졌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또 판단력의 기준을 세워서 미래에 나만의 무기를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책은 굉장히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 종교, 윤리, 문화, 환경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여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굉장히 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무언가 정리가 된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었습니다. 저자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다방면으로 많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제 식견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지나치게 많이 언급되어, 정치적으로 살짝 편향된감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듯 책의 전체적인 만족도는 살짝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구절은 몇 군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윤리를 순백의 대리석 조각상 같은 그 무엇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결코 바뀔 수 없는 영원불멸의 합법적인 토템(신성한 상징물)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윤리적인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오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사실 윤리적이라 함은 무언가 바뀌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님을 짚어준 대목입니다. 일례로 노예제도 혹은 신분제도 역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 되기까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는 동성애자, AI 출현 등의 예시를 함께 듭니다.
윤리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우리 인생사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다'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까, 절대적인 선과 악이 존재할까, 와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나의 상황에 빗대거나 당시 시대적 관습에 비추어볼 때는 옳은 것이었지만, 과연 시간이 흐르거나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봐도 그렇다고 여겨질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사서 자신을 촬영할 거란 점, 그리고 자기를 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을 가장 무서워할 거란 점이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독재자 빅브라더를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조지오웰은 사회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빅브라더를 인용했지만, 현재는 도리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즐기거나,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개인사를 노출하고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스타, 팔로워 수, 좋아요, 리트윗 등 이 시대에 우리를 정말 불안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일분 단위로 남의 눈에 노출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즉각적인 피드백이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SNS에 중독된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는 시대에 따라 시시때때로 상대적일까? 우리는 과연 지금 그 시대의 맥락에 비춰 당대 사람들의 행동과 믿음을 판단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지닌 절대적인 '옮음/그름'의 잣대로 그들의 윤리를 판단하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한 일들이 나중에 돌이켜보니 끔찍한 짓이었다는 이유로 욕을 먹을 텐데, 사실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봤을 때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판명될 현재의 행위 중에도 좀 더 좋은 게 있고, 또 좀 더 나쁜 게 있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현재 시대의 맥락에 맞춰 정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피임도 이전에는 터부시 되었지만 기술 발달 및 여성 인권의 신장과 함께 허용되었던 것처럼(물론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지금은 금기시되는 것들이 자연스러워지는 때가 올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윤리적인 개입이 섣부르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장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혹은 지금까지 개인의 경험이나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여 옳지 않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옳았을 수 있으며, 반대로 윤리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이슈인 챗GPT의 윤리적 문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윤리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지 않으냐 하는 현재의 의견들이, 사실 가까운 미래에도 옳다고 여겨질지는 모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옳은가>라는 제목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 기준에 도움을 받고 싶어서 책을 읽었지만, 읽고 난 뒤에 느끼는 점은 '무엇이 옳은지 명확히 알 수 없다'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무엇이 옳은지'에 관한 정답을 찾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는 명제 자체가 그릇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이 후에 옳지 않은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지금은 옳지 않은 것이 후에 옳다고 느끼는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윤리 기준을 매사 비판 없이 순응하기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옳은지' 날카롭게 안테나를 세워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들이 켜켜이 쌓여간다면, 내부의 기준을 올바른 방향으로 정립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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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