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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Nov 27. 2023

사랑의 A부터 Z까지 궁금하다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책입니다. 워낙 유명한 책인지라 예전에 한 번 집어 들었다가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포기했던 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연한 계기로 '알랭 드 보통'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의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난 이후 첫 느낌은, 문체가 거칠고 현학적인 표현이 많아서 그리 친절한 느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는 풋풋함이 매력적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그의 처녀작이며,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쓰인 책이라는 건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책의 장르가 소설책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스토리텔링 식으로 서술되어 있긴 하지만, 중간중간 철학 실용서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클로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화자의 심리변화를 중심으로,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첫 만남부터 타임라인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1단계] 사랑의 시작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느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에게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랑스러울까?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든 콩깍지가 씌어 완벽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때로 쎄한 부분이 있어도 사랑하는 이가 하는 말이기에 일단 무턱대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기 마련이죠. 그런 심리를 잘 표현한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내 기준이나 잣대에 맞는 부분만을 찾아보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종의 어느 환상 속에서 그 사람을 완벽하게 재단하게 되기도 하지요.



[2단계] 사랑의 진행과 갈등

  

클로이는 나에게 그녀의 독특한 말투를 남겨두었다. … 나도 클로이처럼 침실에서는 완전히 불을 끄게 되었고, 그녀는 나처럼 신문을 접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일 뿐이었으며, 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했다 -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얼룩덜룩했다.


 사랑하면 어느새 상대의 말투나 행동, 습관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고 닮아갑니다. 둘 밖에 알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해지지요. 서로의 애칭을 지어주기도 하고. 서로만 아는 의미들을 가지고 별일 아닌 것으로 낄낄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까워지는 만큼, 사소한 일로 투닥투닥하게 되기도 하지요. 설렘도 잠시,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냉정한 현실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3단계] 권태와 사랑의 종말

  

호화로운 호텔이나 궁전에 사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한동안 나는 클로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을 심드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녀는 내 삶의 일상적인,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연애가 자연스러운 종말에 이르기 전에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다툼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을 느꼈다. …… 어떤 결정도 내리기 어려울 때에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클로이는 얼버무렸다. 나도 합세했다.


 죽을 만큼 사랑했던 상대는 어느새 익숙하고 당연해지고, 또 그 익숙함은 어느새 권태로움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질리는 과정, 그리고 차마 끝내지도 이어가지도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관계를 끝내는 과정을 공감 어리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 만났던 장소인 '공항'에서 이별을 맞이합니다.



[4단계] 이별 그 이후

  

우리가 함께했던 외적 세계의 많은 부분, 따라서 클로이가 여전히 얽혀 있는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클로이를 잊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그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바로 그녀가 살던 동네였음에도], 근처 레스토랑에 잡아놓은 약속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로 돌아가려면 나 자신을 다시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이별 이후에 마음이 힘들어지는 과정을 잘 표현한 구절입니다. 어딜 가든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르는 과정이죠. 특히나 한 사람과 오래 만날수록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내가 나라는 정체성을 규정할 때가 많기 때문에, 그 흔적을 지워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구절처럼, [어느 사물이나 장소]를 [그 사람]보다 더 먼저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비로소 그에게서 마음이 떠나는 순간으로 가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책에 있는 모든 구절이 공감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를 테면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덜 복잡하다'는 말이라던지, '막상 상대가 나를 사랑하자 상대에게 화를 내게 된다'던지, '상대가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한다면 그것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던지, 하는 것들- 등 그리 와닿지 않는 부분들도 꽤 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해 만남부터 헤어짐까지의 내밀한 고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풋풋한 설렘과 더불어, 의미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마치 해설서가 함께 담겨있는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었달까요. 지금 사랑을 하고 있거나 혹은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 앞서 이전의 연애 경험을 돌아보고 싶다면 한번 읽어봄직한 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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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이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어보셨다면,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댓글로 자유로운 감상 부탁드리며, 오늘 하루도 힘차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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