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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Jul 23. 2020

이직이 망설여지는 이유 (feat. 텃세)

익숙함의 미학



 몇 번의 입퇴사를 반복하고 보니 이직이 두려워집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했다면, 이제는 이직했을 때의 고충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죠.


 하루에 최소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이 바뀐다는 건 일상에서 큰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옮긴 직장을 둘러싼 모든 것-새로운 '물리적 환경', '사람', '업무'-에 적응해야 하죠. 


 이직하기 두려운 이유는 이러한 변화된 환경 적응에 대한 피로감 때문입니다.






첫째, 새로운 물리적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만 만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 편이 편하거든요.

변화된 환경에서는 모든 게 새롭습니다. 출퇴근 길부터 회사 주변의 건물, 점심 먹는 식당가 등 처음엔 전부 낯섭니다. 그리고 회사 내부도 마찬가지죠. 사무실 책상부터, 회의실, 화장실 위치 등의 물리적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한동안은 비품이나 물품의 위치도 모르기 때문에 애먹습니다.

 예전 회사라면 어느 정도 눈에 익고 손에 익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사무실 공기도 익숙지 않아서 그냥 앉아있는 것만으로 에너지 소모가 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새로운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거죠. 우리가 새로운 곳에 출근한 첫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진이 빠지는 이유입니다. 



둘째, 새로운 인간관계, 즉 사람에 적응해야 하는 피로도가 큽니다.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처음 출근하면 마주치는 모든 이가 적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요하는 일입니다. 처음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 그리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죠. 그 과정에서 먼저 그들이 손 내밀어 주면 좋을 텐데 대부분 똘똘 뭉쳐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때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기죠. 

 여러 번 새로운 집단에 적응해본 입장에서 팁을 드리자면, 어차피 그 사람들이 챙겨주든 말든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이니 당연히 잘 챙겨줄 거란 기대, 쉽사리 그룹에 녹아드리란 기대는 마세요. 또 조급해서 친분을 빨리 쌓으려고 무리하지도 마시구요. 어차피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룹에 동화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적응 과정에서 텃세를 부리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텃세를 부리는 이유는 '영역 침범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다들 내 영역이 행여 침범당하지는 않을지 안테나를 세우고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파악되기 전까지는 쉽사리 마음을 내어주지 않죠. 내가 아군이 아닌 적군으로 판명 나는 순간 직장생활이 괴로워집니다. 직장 내 괴롭힘도 그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한 일도 트집 잡거나, 본인들만 똘똘 뭉치는 등 학창 시절에나 있을 법한 유치한 싸움이 시작되죠. 지금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민하시는 분들은 이전 포스팅('사람 때문에 퇴사하고 싶을 때')을 참고해주세요.



셋째,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전에 했던 업무라고 해도 조직이 바뀌면 다시 익혀야 될 부분이 많습니다.

조직 체계도 익혀야 하고. 프로세스도 새로 익혀야 하고, 보고서 양식도 다릅니다.

하다못해 회사마다 선호하는 보고 서체도 다르고, 분량도 다르고.. 여러모로 적응해야 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경력을 가지고 들어와도 신입의 마음으로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하죠. 익숙했던 업무에서 벗어나 나름 경력직인데 신입처럼 취급될 때는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내가 경력직인데..'라는 생각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내려놓고 나는 신입이다 생각하는 게 스트레스를 그나마 덜 받는 방법입니다. 또 당연한 얘기이지만 금기어는 '이전 회사에서는 이랬었는데'라는 말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 이전 회사에서 어떠했는지는 지금과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라떼' 지양 문화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습니다. '전 회사에는 말이야~'라는 말은 전혀 상황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차라리 예전 회사에서의 기억은 깡그리 지우고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일단 그런 신입 포지션으로 가다가,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이 되고 조직 적응이 된 이후에 본인의 의견을 피력해도 늦지 않습니다. 일단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로마법을 따르는 게 좋죠.







 그래서 우리는 이직을 망설입니다.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기가 두렵기 때문이죠.

누구나 익숙한 공간을 벗어난다는 건 스트레스받는 일입니다.


 지금 있는 직장을 욕하면서도 남아있는 이유는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직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기로에서, 정답은 본인만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저울질해봐서 더 심한 쪽의 스트레스를 버리고 넘어가기 마련이죠. 지금 있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감내할 수준이면 남아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면 뛰쳐나오게 됩니다.

 굳이 지금 있는 편안한 곳을 벗어나려면 그에 합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정도의 스트레스가 아니라면 잠시 툴툴대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반대로 이직을 결심했다면, 지금 있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이직 스트레스를 뛰어넘을 정도로 최고치라는 말도 될 겁니다. (*다른 분명한 이유가 아니라면요.)



 이직하기로 마음먹었든,

그게 아니라 지금 회사에 남아있기로 마음먹었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있을 곳'에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왕 이직하지 않고 현 직장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면 지금 직장에 마음을 두고 적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직하기로 결심했다면 예전 회사에서의 일은 깡그리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습니다.

결국 내가 마음 끌리는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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