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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아이의 탄생, 그러나

아이와의 첫 만남과 첫 경험들

2006년 10월 20일

40주 동안 기다림을 지나 아이는 그렇게 내 품에 왔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쉽지만 않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듯이 임신기간 동안 그리 평탄하지 만은 않았다. 한번 겪었던 유산의 두려움, 계속되는 입덧 그리고 썩 좋지 않았던 신랑과의 관계 등 결국 아이는 역아의 상태로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 태어나고 며칠 후 수술방 옆 입원실에서의 큰 소리는 아이의 아픔을 예견했던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의 탄생이었지만 왠지 그리 기쁘진 않았다. 그리고 첫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웃는 것보다 우는 것을 더 많이 하던 아이

아이는 너무 힘든 아이였다. 신생아를 키우는 게 다 그런 게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조리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보아도 여러 가지 점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쉽지 않았다. 모유 수유가 잘 안되었다. 모유가 충분하지 않기도 했지만 빠는 힘이 유독 약해서 결국은 모유 수유는 포기하고 분유를 먹였다. 아이는 잠이 너무 없었다. 신생아들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가 대부분 생활이라던데 아이는 낮에도 칭얼대고 밤에도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깼다. 그리고 아이는 옹알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눈 맞춤이라든지 웃는 것도 반응을 많이 해줘야 거의 한번 할까 말까 그래서 한번 크게 웃어 주면 세상 다 갖는 것처럼 너무 기뻤다. 그리고 아이는 옹알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눈 맞춤이라든지 웃는 것도 반응을 많이 해줘야 거의 한번 할까 말까 그래서 한번 크게 웃어 주면 세상 다 갖는 것처럼 너무 기뻤다.


모든것이 늦던 아이


목가누기도 늦었고 뒤집기도 늦었고 기는 것도 늦었고 혼자 잡고 서는 것도 엄청 늦었다. 돌 잔치때도 혼자 앉지못했다. 남들은 선다는 데 혼자 걸었다는데 아이는 18개월이 되어도 혼자 걷지를 못했다. 언어적인 부분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를 했다는데 아빠를 했다는데 아이는 의미없는 옹알이도 거의 하지를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이고 같이 태어난 주위 아이들이 다 빠르게 성장을 해서 그런지 더 걱정이 되었지만 친정엄마 아빠는 좀 느린 아이일 뿐이라고 그냥 기다리자고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특수 교육을 배우고 느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느림에도 다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알고 원인에 맞추어 방법을 달리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병원 방문 그리고 첫 치료 시작

기다리다 첫 걸음마가 늦어져서 아이를 데리고 분당 차병원에 방문했다.

병원에서는 유관상으로는 원인을 모르고 MRI를 비롯하여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마취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냐며 성은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큰 반대에 부딪혀 그냥 돌아와야만 했고 결국 서현동에 취치한 치료센터에 가서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아이는 분리불안이 심했고 치료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못해서 한달도 못받고 치료실에 더 이상 가지 못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치료실에서 아이가 눈맞춤도 안되고 반응이 없다고 자폐의 증상이 보인다고 이야기 들은것 이었고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강한 부정을 하고 더 이상 치료실에 보내고 싶지않았다. 치료실을 잘 선택하고 치료사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것 역시 부모가 아는 만큼 가능하고 그 또한 잘 맞아야 아이는 변화할 수 있다.



첫 걸음마


그날은 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엉결겹에 수건을 들고 ( 뭐라도 잡고 싶었나 보다)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첫 걸음마를 2년간 기다리던 우리 가족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면서 좋아했다. 결국 걸을 줄 알았다면서 검사안하기 잘했다면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그 때는 믿었다. 아이는의 걷기는 그떄 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또한 성은이는 걷기 시작했지만 뛰는 모습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그 때는 혼자 걷는 것이 오래 토록 지속될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돌때처럼 혼자 앉아있기도 힘들어 졌다. 태어나서 14년만에 아이는 다시 태어날때의 모습으로 하루 하루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걸은 아들 처음으로 스스로 걸은 아들 



첫 단어를 말하다

걷기 시작한 아이는 첫 단어를 말하게 되었고 만 5세까지 성은이는 5개 단어정도 말할 수가 있었다.

보통 태어나서 아기들이 22~24개월쯤 어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평균 250~300개 정도의 단어산출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겨우 한 단어 발화를 시작하여 엄마 아빠 밥 차 타 만 했으니 정말 일반아이들에 비해 늦었다. 워낙 대근육 발달도 늦었기에 놀랄만한 일을 아니였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조금 더 일찍 언어치료에 대한 정보가 있었더라면 아이가 이 정도가 될 때 까지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내가 노력을 안했던 건 아니다. 노력은 했지만 전문가가 아니기에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계속 반응을 요구하고 변화하기를 바랬으니 그 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경험을 통해 엄마도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나서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엄마들에게 용기있게 전달할수있게 되었다. 



혼자 화장실에 가게 되다.

모든것이 늦었던 아이는 만 6세까지 배변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저귀에 계속 의지 하고 있었다.

배변책도 읽어주고 관련 동영상도 보여주고 계속 아이는 실수를 했다. 심지어는 응가를 한 후 집의 벽에 응가를 뭍이고 다닌적도 있었고 집에 응가 냄새가 멈추질 않았다. 어린이집에서도 계속 실수를 한다고 들었고 가정에서도 많은 시도를 하다 만 6세에 조금씩 기저귀하는 시간을 줄이고 결국은 혼자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물론 이 역시 이후로 1년 반 정도만 가능했다. 아이는 이제 혼자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누구의 도움없이는 화장실에 갈 수 없고 다 화장실 밖 이동변기에서 일을 본다. 그렇게 잘 누던 응가도 이제 가끔씩 약물의 힘을 얻어야 가능하다 .누군가에겐 혼자 할 밖에 없고 평생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 그 누군가에겐 평생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는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된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겠지만, 아이들은 당신의 비행기를 조종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꿈꾸는 법을 가르치겠지만, 아이들은 당신의 꿈을 꾸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살아 나가는 법을 가르치겠지만, 아이들은 당신의 삶을 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비행과, 모든 삶과, 모든 꿈에서,

당신이 가르친 방법의 흔적은 언제나 존재할 것입니다. 


마더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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