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도 Jul 19. 2024

뇌출혈, 나의 가족들이 왔다(3)

리스본에 다시 모인 우리 가족

나의 가족들이 리스본에 왔다


아마 여러 갈래 호스를 코에 연결하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남편, 아빠를 보면서 가족들 모두 큰 충격에 빠졌을 것이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기다림 속에서도 옆에 있는 두 딸들이 그래도 문여사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었다


큰형도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생사를 확인하고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큰딸도 일본 또는 한국으로 가야만 했다


리스본 집에 남은 둘째와 문여사는 살아가기 위해 냉장고 속 얼려 놓았던 음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고, 서울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니 이사준비도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누구든 이런 상황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묵묵히 이런 일들을 준비해야만 했다


한인회장님을 비롯한 한인 여러분들이 우리 가족들을 위로해 주셨으며, 원로분들은 따로 병문안을 와 안부를 물어 주셨다


* 정o정 한인회장, 나o란 사범, 원o성, 소o화, 강o구, 강o호 님등 원로분들께 특별한 감사 말씀을 드림


문여사는 병원을 오가야 하니 운전면허증이 필요했고 포르투갈에서 운전 가능하도록 면허증을 급히 만들었는데 대사관에서도 이것저것 도움을 주셨을 것이다


그렇게 3.15(수) 필드에서 쓰러진 후 암흑의 시간이 흐른 뒤 3.24(금) 처음 의식이 돌아왔고 이후에도 의식이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잠에 빠지는 등의 차도를 보이다가 4월 초에는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었다


문여사와 둘째는 금방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서둘러 귀국 준비를 하였고, 드디어 4.15(토) 필드에서 쓰러진 뒤 한달만에 긴급 후송서비스를 통해 두바이를 거쳐 서울로 귀국할 수 있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문여사와 둘째가 알아서 귀국 준비며 이삿짐 물품 정리를 하였다

감자에 싹이 나고...

귀국 전 며칠이라도 집에 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어, 바로 Almada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 후 두바이를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으며 앰뷸런스를 타고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사실 귀국 즈음에는 어느 정도 의식도 돌아오고 건강도 회복 중이었으므로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걸 고대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평상시 때와 비교해 반 정도 의식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