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 졸업 후에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시쳇말로 스펙이 장난이 아니다. 전교 몇 등이 아니라, 전국 몇 등 정도 했을 만한 서울대 출신도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MIT, 스탠퍼드 출신도 가끔씩 있다. 자기 혼자 잘 났다고 생각하는 Y대, K대 출신은 발에 치인다. 일찍 잘 들어왔지. 그래서, 스펙 좋은 사람들이 일은 잘하냐고?
수학 시간에 배운 함수란게 있다. 함에 입력값 x를 넣으면, f(x)가 된다. 영어로는 function. 입력값 x에 어떠한 작용을 하니, f(x)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결과값에 영향을 주는 인자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필요한 x, 자질은 무엇인가?
어려운 내용을 나름 쉽게 이해하고, 오랬 동안(시험 기간 동안) 기억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책상에 앉아 있는 능력이 중요한 듯하다. 즉, 이해력/암기력/인내력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중요한 인자인 듯하다.
그러면, 회사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암기력? 이건 뭐 아닌 듯하다.
이해력? 이건 좀 필요한 듯하다. 상사가 지시한 내용을 빨리 catch 할 능력이 필요하다.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다고 한다.
회사일은 주로 혼자 일하는 게 아니어서, 사교력도 필요하다.
이거 잘하려고 가기 싫은 회식도 안 빠진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해도, 끝까지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추진력이 꼭 필요하다. 실패하면 똥고집이 되지만. 높은 자리까지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하다. 추진력이 있는 사람을 남들은 다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회사는 좋아한다. 회사를 대신해 악역을 하는 것이다.
남들이 싫은 소리 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는 자존감, 다른 말로 무공감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인자는,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건 책에도 없다. 그리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그 상황에 맞는 문제를 적시에 풀어야 한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문제 해결 능력!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잘한다. 학벌과 상관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학벌이 좋은 사람에게 경험할 기회가 먼저 갈 확률이 높다. 회사 입장에서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할 듯하다. 특히, 업무 능력 파악이 안 된 신입 사원에게는.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 문제 해결을 잘하면, 그다음 기회가 또 주어진다. 물론, 그 기회를 잘 못 살려 일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게 반복되면, 공부만 잘했지, 소위 일 머리 없는 사람이 된다. 실제 그런 사람 많다. 일머리 가르쳐 주는 학원은 없다.
반대로, 학벌은 그럭저럭인데, 급하게 일을 시키야 하는 경우에 일을 한번 맡겨봤더니, 이놈이 여기저기 알아도 보고, 중간중간에 상사에게 상황 보고도 하고,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물어도 보고 하는 사원이 있다. 가끔씩 늦게까지 고생하는 티도 팍팍 내면서, 재미나게 일하는 신입 사원. 상사도 왠지 자기 새끼를 키우는 맛도 든다. 그러면서 업무 경험도 쌓고, 상사에게 이쁨 받는 경우다. 세상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 모자란 학벌을 보충하려고 어려운 자격증도 딴다. 내가 능력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게 좀 덜 한 듯하다. 그래서, 최고 경영층에 S대 출신이 아닌 분들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 수준에서는 사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하더라. 로열티! 오히려 그런 분들이 그 자리에 오르면 더 죽어라 충성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소명 의식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더라. 그 자리까지 가서 스스로 감동받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