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하는 후배 사원에게 물어본 얘기가 생각난다.
남편도 좋은 회사에서 돈 잘 벌고 있는데. 힘들게 회사를 왜 다니냐고. 항상 바쁜 데, 왜 바쁜지 모르는 후배였다. 혹시, 차두리랑 친척인가 했다 (차두리가 현역 선수 시절, 축구공과 상관없이 열심히 운동장을 누빈다고 해서 생긴 유머). 자아실현을 위해, 회사를 다닌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자아실현'!
어떤 게 자아실현이냐는 질문에는 얼버무린다. 대화를 잘 이끌지 못했는지. 그냥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모범 정답 이상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40살 넘은 지극히 정상 교육을 받은 보통 직장인이다.
그냥 대출금 갚는다던지, 적금 부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던지 아니면, 남편 눈치 보지 않고 사고 싶은 명품 가방도 사고, 때맞춰 해외여행 갈 돈을 모으려고 회사 다니다는 게 솔직한 답변인 듯한데.
회사를 다니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첫째, 생계유지
월급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월급 모아 부자 되기 쉽지 않다. 솔직히 안된다. 조금 절약하면, 외식이나 해외여행 정도는 가능하다. 이거 부정하면 안 된다.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은 회사에 자원 봉사하면 된다. 대출이 많은 사람도 월급이 나온다면 그럭저럭 살아간다. 대출이 남아 있으면 회사 나오면 안 된다.
둘째, 명함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면 만나는 사람들은 꼭 물어본다. 요즘 뭐 하시냐고? 뭔가 일을 해야 된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 듯하다. 그냥 논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동창 모임에서도 회사 명함만 내밀면 서로 상대방의 수준을 짐작하는 듯한 표정이다. 도움이 될 사람인지, 아니면 최소한 피해는 안 줄 사람인지. 그 참, 은행 잔고 증명서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셋째, 회사는 학교나 책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적용, 체험해 볼 수 있는 場이다.
책에서 보거나 머리로만 아는 것은 사람과 부딪치면서 배우는 실제 세상은 다르다. 이건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다.
공자님 말씀인 論語에서 주요한 핵심 단어를 뽑으라면, 난 주저 없이, 學習이라고 한다. 30년 정도 성장하면서 배운 것(學)을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실제 적용해 보는 게 習이라 생각한다. 이건 누가 대신 알려줄 수가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고 하지만, 실제 세상은 먹어봐야 안다.
넷째, 별다른 취미 거리가 없어도 된다.
하루하루 회사 생활이 바쁘고, 여유 시간이 좀 있더라도 그냥 쉬고 싶다. 술친구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다. 회사에서 알아서 부서원들끼리 술 먹어라고 돈도 지원해 준다. 동창 모임에 가도 회사 다니는 사람들 보다는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퇴사하면 꼭 필요한 게 취미 꺼리다. 특히, 혼자서도 재미있게 보낼 자기만의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다섯째, 자기와 맞거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뜬금없이, '왠지 감이 좋은데', '이제부터 친해 보자', 이런 건 현실에서 어렵다.
힘든 일을 같이 하다 보면, 자기와 잘 맞는 친구를 만나서 추억도 만들고, 평생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쉽지는 않다. 요즘은 성과에 너무 얽매이고, 경쟁이 치열해지니, 같이 일한 기억은 있으나, 추억 쌓기는 어려운 시절이다.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월급으로 생활하고, 남은 돈으로 저축해서 seed money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배운 문제 해결 능력을 회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펼쳐보는 게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된다면 너무 거창한 건가. 같이 고생한 친구와 지난 추억을 얘기하는 즐거움은 이제는 얻기 힘든 보너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