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방법을 몰라서 정처 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었습니다.
세 시간하고 조금 더 지났을까.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지만 흔들리는 오색의 다마 전구와 곳곳에 간접 조명 때문에 눈 부시다. 비트 있는 음악까지 끼얹으니 한 마디로 정신이 없다. 북적북적한 호프집에 더 이상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주로 들어주는 편이지만, 가끔 기회가 오면 대화를 이끌기도 했고 분위기를 살려 웃기기도 여러 번 했다. 그러다 내심 경계하고 있던 그들만의 대화가 시작됐다. 이 대화는 좀처럼 끼어들기 쉽지 않다. 무리해서 끼어들었다가는 실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불편한 내색을 가렸으나, 가장 자신 있는 착한 표정은 점점 풀렸고, 입술이 오래 닫히면서 목소리는 잠겼다. 이내 낯설지 않은 우울함과 서운함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스며들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다. 일어나 가는 순간, 내 얘기가 이 테이블에 올라 망신스런 춤을 출까봐 걱정됐다. 하품을 삼키며 사회성 좋은 척 버티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마른세수를 했다. 그렇게 00시가 넘어서야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의 가방과 핸드폰을 챙겨주고, 점퍼 매무새를 만져주는 다정함과 인사가 오갔다. 하필 물건과 맵시를 잘 챙기는 나였기에 챙김 받을 거리가 없었다.
건물에서 나오자 집 가는 방향에 따라 삼삼오오 게걸음 치며 슬슬 뭉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나온 나는 춥다는듯이 팔짱을 깊이 끼우고 큰 하품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개방했다. 누가 누구랑 함께 가는지 순식간에 나뉘었다. 집 방향을 잠시 고민하다가, 본능적으로 좀 더 친절한 무리의 뒤를 따라갔다.
"같이 가~"
동행할 수 있는 범위에서 조금 오버하고 비효율적인 경로로 집에 왔다. 간만의 외출이고 약속이었는데 들어올 땐 이렇게 허무하다. 그런 나를 조소하듯 신발장 자동 센서등은 왜이리 빨리 꺼지나. 어둠이 내게 어울리나. 아직 오른쪽 신발 밖에 안 벗었는데. 승질 내듯 괜히 손을 휘휘 저어 다시 불이 키고 꺼지기 전에 냉큼 신발장을 건너 왔다. 평소처럼 깊이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린 엄마의 잔소리에 대충 대답하고 방문을 닫았다. 우울함과 허무함은 방에 들어오자 삽시간에 시린 외로움으로 변했다.
분명 오늘 여럿이서 시끌벅적한 모임을 가졌고, 누가 봐도 즐거워 보이는 무리에 동참해 있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집에 올 때까지, 또 집 안에서도 혼자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오늘 하루 외로웠다. 혼자가 되어 쓸쓸한 것이 외로움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럿이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태그된 알림 없나, 스토리 올릴만한 사진 없나, 이미 새벽인데 더 늦게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미 내릴 만큼 내려서 더 이상 새로 게시물이 뜨지 않는 인스타그램. 한 번도 나를 찾지 않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는 단톡방에 마음 쓰는 내 모습이 더 싫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혼자 있는 방법을 몰라서 이미 늦은 밤인데도 잠을 청하지 못하고 인정(人情)을 찾아 헤매는 새벽은 해갈을 줄 수 없는 바닷물과 같았다. 혼자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마주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건강한 자기애를 필요로 한다. 내가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혀 불편한 일이 아닐 때 혼자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나와의 시간을 자연스레 보낼 줄 아는 자기 이해. 미처 해석되지 않은 사회적 관계적 의미의 내면화를 중단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주변이 아니라 나를 살피는 생각이 그 첫 단추이다.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이 보랏빛 새벽을 만들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 방의 온도를 정할 것이다.
아무런 약속도 연락도 없이 혼자일 때의 나, 여럿이 모여 복작복작한 곳에 있을 때의 나, 모두 다 여전히 소중한 본인이다. 혼자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혼자가 된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자. 인파 속에 있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님을 발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