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범죄 추리소설을 즐겨 읽곤 했지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에는 왠지 그런 스토리를 기대하게 되지는 않았다. '기억법'과 같이 자기개발서에서나 쓰일 것 같은 제목이나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이 마치 이 소설의 함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으레 추리소설에서는 앞부분에 나오는 정보 중 상당 부분에 허점이 있지 않은가. 시를 배우러 문화센터에 다니는 모습이나 강의가 실망스러우면 죽여버리려고 했다는 표현은 자칫 귀엽기까지 해서 영 소름 끼치는 살인자의 캐릭터로는 느껴지지가 않기도 했다.
간결한 문장과 짤막한 단락들로 빠르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누구라도 한 시간 정도면 술술 읽힐 것이다. 그러나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 구성된 단락들은 마치 명언의 한 구절 같은 느낌을 받다가도, 살인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이라는 데에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쇄살인마의 심리에 대해 프로파일러가 분석하는 말에 주인공 김병수는 이렇게 적었다.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짤막한 단락들은 더욱더 치매 환자의 토막 난 기억과도 같은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독자는 물론, 이 소설을 써나가는 주인공(김병수) 본인도 이 이야기의 실체를 자신할 수 없으니 그 무엇도 확신 있게 추정할 수 있는 진실이 없다. 그저 매 순간 살인자의 혼돈 속 감정과 농담 같은 진실, 아니 진실 같은 무서운 농담이 섞여 있다. 그 마저도 점점 더 희미해지며 무감각하게 허공 속에 부유한다.
역시 김영하 작가의 문장력은 대단하다 생각하며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는데, 오히려 작가의 말이 더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다.
소설가라는 존재는 의외로 자율성이 적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문장에 지배되고,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을 따라야 한다. 소설의 끝에 도달하면 작가의 자율성은 0에 수렴한다.
오직 나만이 그 세계에 방문했다는, 오직 나만이 그 세계에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아마 이 소설은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속 캐릭터에 얼마나 몰입하면 이러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까. 소설은 작가가 지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소설가가 받아들여졌던 세계의 이야기를 그저 전달하는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마치 내가 살인자의 영혼 속에 들어가 그와 함께 혼잣말을 읊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