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있지 않은 엄마들에게 진짜 쉼을...
엄마 혼자 여행 보내기 캠페인
흔히들 쉼은 일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누군가가 하는 일을 물으면 보통 이렇게 답하곤 한다.
"쉬고 있어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그 당시 손에 꼽히는 명문이었다. 동창생들을 보면 하나같이 의료계, 법조계, 대기업 또는 젊은 CEO까지 참 멋지게 일하고 있다. 작년 겨울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 보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자리에 참석했다. 동창회는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하는 일을 묻는 자리였구나.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나도 그저 "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면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듯 하다 이내 대수롭지 않게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타인의 마음을 늘 살피는 내 친구는 '굳이' 과거 15년 간의 내 이력을 읊어댔다. 그런 식의 어색한 소개는 꽤 여러 번 반복되었다. 당최 어떤 표정으로 그 소개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만 생각하자고 애써 서글픈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부로 살았던 지난 4년 간 나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쉬지는 않았다. 쉬기는커녕 밀린 숙제를 하느라 바빴고 늘 고단했다. 집안을 늘 예쁘고 말끔하게 정돈하려 애썼고, 매일 건강하고 맛있는 식단을 하루 세 번 이상 고민했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 공부하고 가르쳤다. 가족들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뭘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참 잘 살았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그렇게 나를 소개했던 것이다. "쉬고 있어요."
그렇다고 상대의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내가 어떻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 구구절절 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자격지심으로 가득 찬 초예민 아줌마가 되어 나를 피해버리겠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단어를 골라 사용하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예의 없고 공격적인 사람에게 '세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진짜 쉼을 위한 나홀로 여행을 왔다. 혼자여행은 태어나 처음인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 좋았다. 이렇게 쉬고 돌아가면 내 안에 가득 채운 좋은 것들이 에너지가 되어 모든 것을 이롭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엔 조용히 다녀오려 했는데 너무 좋아 SNS에 자랑을 좀 했다. 웬걸.. 온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이 물밀듯이 쏟아진다. 단 한 번도 휴가를 떠나지 못한 엄마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엄마들 휴가 보내기 캠페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얼마 전 결혼을 유지하는 것과 이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현실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20대의 너무 젊은 애기 엄마가 그토록 여행을 원하는데 남편이 반대하며 갈등이 심해지는 장면을 보았다. 여자의 눈빛은 이미 희망을 잃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그럼에도 남편의 생각은 완강했다. 그 반대의 이유에 아내의 잘못은 단 1도 없었다. 그럴 땐 부부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서로를 지켜주고 의지하는 인생의 동반자이지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는 것은 아닌데...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대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은 정당한가. 부부 갈등의 상당 부분이 남편과 아내로서 응당 그래야 한다는 모습이 지나치게 확고한 경우에서 기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상대에게 바라는 그 모습은 서로의 깊은 이해보다는 사회적 편견에 더 가까웠다. 남편에겐 아내의 여행을 허락할 권리가 있는가.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무시하고 여행을 떠나 버리면 이 가족은 행복해질까.
엄마는 한 집안의 영혼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의 영혼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마음 편히 쉼을 선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쉬고 있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세상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