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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un 02. 2023

괴로움을 반복하고 싶진 않지만, 다시, 나의 일

40대 이후에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선생님~ 제가 댁으로 갈게요. 우리 뵙고 얘기 나눠요~"


‘…선생님??’

산부인과에서 처음 '어머니'라고 불렸을 때만큼이나 생소한 호칭이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여유로운 평일 오후였지만 약속 시간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망설임은 계속되었다. 굳이 이 불편한 만남을 성사시키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고, 전화를 받았더라도 그냥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말았어도 되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자석에 이끌리듯 이어나가는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전 밤의 일이었다. 별 다를 게 없는 하루였지만, 언제나 그랬듯 별 다를 게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하루하루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워킹맘을 퇴사한 지 4년 차…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간다. 언제까지 별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도 괜찮은 걸까. 그날도 그런 생각을 애써 누르며, 늦은 밤 의미 없는 SNS 숏폼 컨텐츠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언뜻 평범한 광고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무자본 창업, 경력 상관없이 누구나 월 수익 300 가능!'


그저 흘려보냈을 흔한 광고 카피인데 순간 멈칫했다. 15년 간 광고업에 종사했던 사람인데 이런 진부한 카피에 현혹되다니. 그래도 이름 있는 기업이기에 믿을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절대 이 광고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는 것 이상으로 힘든 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좋아해야 하고,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아이뿐만 아니라 어머니들을 상대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한두 과목 깨작깨작 가르쳐서는 수입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며 그나마도 회원 수업료의 반 이상은 회사에서 가져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오히려 그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주 무심결에 상담 신청까지 누르고는 다시 그 사실도 잊어버린 채 잠이 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겨우.



들어본 지 아주 오래된 말들이 있다.

나에 대한 질문.

언제부턴가 내 이름보다는 아이의 이름, 아이의 학교, 아이의 나이, 아이의 성격, 아이의 취미 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역 지국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목소리가 예쁘고 상냥한 언니 같은 그분은 끊임없이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눈빛으로 질문을 던지고 경청했다. 물론, 이 분은 지금 일을 하는 중이다. 직장인 모드가 장착되어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표정, 눈빛,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지,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해서 사귀려고 하는 중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만인 나에 대한 관심이 참 고마웠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라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내 과거 이력을 담담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상황과 이 일에 대한 생각을 모두 솔직하게 얘기했다. 첫 직장을 구하던 20대 시절과는 완벽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꼭 하고 싶습니다. 뽑아주시기만 한다면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잘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한 책임은 그 간의 삶이 충분히 담보해 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랬다. 진솔한 내 생각을 묵묵히 들어주는 그를 보며, 우리가 합을 맞추는 것이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는 이 대화를 통해 서로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사람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게 처음부터 느껴지는 그런 사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귀인이거나, 간접적으로 끊임없이 내 생각에 자극을 주게 되는 사람. 어쩌면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저는 이 일이 재미있어요. 보람도 있고...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라는 대화를 끝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저렇게 말은 했어도 얼마나 힘든 일일지는 알고 있다. 그래도 자신의 일을 추천할 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가 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지원서조차 쓰지 않았고, 면접 일정을 잡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천천히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떼고 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의 정체는 내가 바라는 삶을 향한 갈증일 것이고, 결국 내가 도착해 있을 곳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쨌든 지금의 내 삶에 작은 사건 하나쯤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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