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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Feb 19. 2024

남편의 의미

나를 지켜주는 사람 Vs. 나를 키워주는 사람

“남자들은 반드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 결혼을 하거든 작게라도 꼭 남편의 공간을 만들어줘.”


30대 초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나이가 지긋한 거래처 팀장님께서 해준 조언은 듣기에 꽤 그럴듯했다. 사회적 성취와 온화한 인품, 우아한 취미까지 참 멋진 중년남성의 모습을 갖추셨기에 그 말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이로써 난 지혜로운 아내가 되는 방법 하나를 획득했고, 방이 두 칸 밖에 없는 작은 신혼집임에도 불구하고, 안방을 제외한 나머지 방 하나를 남편의 방으로 꾸며 주었다. 가구점에서 중후한 느낌의 블랙 앤 우드 스타일의 서재 가구도 구매했고 듀얼 모니터를 연결하여 일하기 좋은 작업 환경을 만들었다. 방 한편의 선반에는 당시 남편이 한참 관심 있어했던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드론과 RC카가 전시되어 있었다. 작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남편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남편에게 이런 방을 선뜻 만들어 주는 나 자신이 기특했다.


그렇게 남편은 자기만의 방에 살게 되었다. 두 개의 모니터에 작업창과 드라마창을 나란히 띄워 놓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은 창문 쪽을 바라보고 배치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언제나 내가 보는 모습이라곤 살며시 열어 본 방문 틈으로 보이는 남편의 뒤통수뿐이었다.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이 만나 이제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라는 진부한 청첩장의 글귀처럼 결혼을 생각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우리의 관계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을 때 깨달았다. 아… 부부는 결코 하나가 아니구나.


가끔 문을 열고 “뭐 해?”라고 물으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늘 이 대답이 돌아왔다.


“왜? 뭐 할 거 있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함께 짊어진 부모로서의 역할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오히려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는 데에는 손이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보통 이랬다.


“내가 이걸 맡을 테니 너는 이걸 맡아.”, “오늘은 내가 늦으니 내일은 일찍 들어갈게.”와 같은 주로 역할 분담에 관한 일이었다. 어쩌면 다행인 걸까 그나마 우리는 일을 함에 있어서는 손발이 맞는 편이었다. 철저하게 분담된 업무 분장은 우리의 접점을 최소화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2교대로 번갈아 근무하는 동료의 사이가 이럴까..


그렇게 우리는 부부라기보다는 육아 파트너에 가까웠다.




긴 고민 끝 어렵게 퇴사를 결정했을 때, 남편은 고맙게도 내 의견을 지지해 주었다. 덕분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푹 쉴 수 있다니 참 감사한 일이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백수가 된 내게 그는 새 휴대폰과 노트북, 그리고 자신 명의의 신용카드를 주었다. 남의 카드로 생활한다는 건 생각보다 놀랍고 어색한 일이었기에 처음 카드를 긁기 시작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회사 노트북을 반납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노트북을 선물하다니 새삼 그가 이토록 배려심이 있었나 하고 놀랐다.


한 순간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었을 때 가장의 어깨가 꽤나 무거웠을 텐데, 남편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본래 책임감이 커서였을까, 아니면 내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도 전쟁터 같은 집구석을 탈탈 털어내고 이제는 내가 부뚜막의 여신 헤스티아처럼 편안하고 포근하게 이 가정을 감싸주기를 바랐던 걸까. 그즈음 우리는 온갖 묵은 짐을 다 들어내고 가구 배치를 뒤집어엎으며 대청소를 했다. 끝없이 들어내고 치워내는 엄마 아빠를 보며 여섯 살 난 첫째 아이가 따라다니며 “다시 살게요?”라고 묻는 소리에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그래~ 다시 살자. 다시 잘 살아보자~”라고 하면서 박박 걸레질을 해댔다.




그렇게 ‘집에 있는 엄마’가 된 지도 여러 해가 흘렀다. 그동안 나는 정말 푹 쉬었을까. 솔직히 일을 할 때보단 확실히 나았다. 일에서의 성취만큼이나 가정을 “직접 내 손으로” 돌보는 것이 내게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늘 불안함이 존재했다. 이렇게 “일을” 쉬어도 되는 건 언제까지일까. 다시 일을 시작할 수는 있을까. 이대로 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시작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괜찮을까.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아빠는 일 하고 엄마는 가사와 육아를 하는 안정된 프레임’을 내심 깨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지금 내가 다시 일을 한다면 지금껏 내가 일궈 온 집안일도 오롯이 내 몫으로 유지되면서 거기에 추가로 일까지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물론 남편은 그렇지 않을 거라 했지만 지금까지 그와 지냈던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추론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을 다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알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처럼, 나는 일에 있어 많은 자신을 잃었고, 그것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그냥 앞으로도 쉬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말은 나를 돌보는 그의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마음을 느끼고 두려워하는지 그는 조금도 공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실제로 내가 걱정하는 것들이 현실로 펼쳐졌을 때 그것은 결국 내 몫의 문제가 될 것이다.


오늘도 그는 닫혀진 방문 너머로 등을 돌린 채 일일 연속극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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