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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an 07. 2024

가로수길이 너무 화창해서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우연히 스텔라장이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면서 새싹이 피어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음색이었다.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은 늘 <보통날의 기적>이었는데, 시동을 걸고 출발과 동시에 늘 그 음악이 흘러나왔다.


“I'm waiting for a miracle~ 내 보통뿐인 나날에~”


그리고 ‘첫 출근’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지금껏 생애 단 한 번밖에 없었던 그 단어. 내가 아는 첫 출근이란 스스로의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첫걸음마와도 같은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첫 출근. 

그날도 차 시동과 함께 스텔라장의 <보통날의 기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10분 남짓 걸리는 출근길의 도로는 참 곧고도 넓게 뻗어있었다. 쭉 뻗은 길 양쪽으로 가로수들이 가지런히 줄 지어 서있었는데, 그 사이로 넓고 높게 펼쳐진 하늘이 마치 그림같이 화창거렸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오랫동안 멈춰있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한 것 같았다. 갑자기 생뚱맞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여가 얼마인지, 일이 얼마나 고된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왜 굳이?’라는 내색을 숨기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였지만,

사실 그저 내겐 목적지가 필요했다.


가도 되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 아니라, 일정하게 꾸준히, 내가 가야 할, 집이 아닌 다른 곳. 그런 곳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무언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엄마로서의 일, 아내로서의 일 말고,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었는데… 그간 내가 느낀 정서의 정체가 ‘답답함’이었다는 사실을 탁 트인 출근길 하늘을 보며 차오르는 감정을 느낀 후에야 깨달았다.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돈도 얼마 안 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느라 힘든 일을 왜 하려는 거야?”

“차라리 그냥 다시 회사를 다니지 그래? 광고 일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거야?” 

“차라리 그냥 계속 쉬면서 아이들 케어에 더 신경 쓰면 좋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잘 설명을 하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기껏 설명해 봤자 오히려 설명하지 않으니만 못한 답답함에 목이 메곤 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응~ 그냥.. 가로수길이 너무 화창해서…”


이 길을 얼마나 오가게 될지. 또는 언제까지 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딱 지금의 이 기분. 

그거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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