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예의가 바르며 똘똘함이 눈빛부터 남다른 아이였다. 학기 초부터 혼자 등하교를 하던 그 아이는 친구 엄마들의 얼굴까지 일일이 기억하고 먼저 다가와 인사를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무리에서 자연스레 리더 같은 역할을 하며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앞장섰고, 친구들은 그 뒤를 졸래졸래 쫓아다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8살, 만으로 6살밖에 안 된 아이가 스스로 자기 스케줄을 기억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기가 막히게 딱 나타나 자기 물건까지 꼼꼼히 챙겨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 아이가 참 기특해 부럽다고 한 마디를 하자 어떤 엄마가 이렇게 얘기했다.
“부럽긴… 난 안쓰러운데~ 엄마가 일 하느라 없으니 스스로 할 수밖에…”
얘기를 듣고 보니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 아이는 특출 난 아이인 거고 대다수 초등학생들의 일상은 엉망진창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상상 그 이상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언제나 아이는 제시간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아이의 물건들 또한 제자리에서 사라지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하물며 스스로 학습을 하는 습관이란 정말이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그런 사실은 방문교사 일을 시작하면서 더 크게 와닿았다. 매주 수십 번은 남의 집 방구석을 들여다보게 되는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학습지는 기본적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지향하고 있고, 학습지 방문교사의 수업이란 한 주 동안 아이가 학습해야 할 교재에서 알아야 할 핵심 개념만 설명해 주고 지난주 학습 여부를 체크해 주는 것까지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수업을 해봤자 한 주 동안 아이가 학습지를 손도 안 대고 팽팽 놀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사실 매주 꼬박꼬박 나가는 진도를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학습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성실성이 요구된다. 어느 순간 해이해지면 밀린 학습지가 산더미만큼 쌓이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희한한 사실을 발견했다. 수업을 가보면 학습을 100% 완료했거나 거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중간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 차이의 기준은 너무 명확했다.
엄마가 집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한 아이는 언제나 집에서 혼자 나를 맞이했다. 해맑은 미소가 순진무구하고 참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학습 상태는 영 꽝이었다. 우선 벨을 누르면 문이 열리기까지가 한 세월이다. 하도 안 열어서 전화를 하면 화장실이라 좀 기다려달라고 메시지가 온다. 겨우 집으로 들어가면 온 바닥이 빨래나 이불, 잡동사니 등으로 뒤덮여 발을 디딜 곳이 없다. 겨우 비집고 공간을 만들어 거실 가운데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물티슈를 한 장 꺼내 흘린 반찬으로 찐득찐득해진 테이블을 닦고 교재를 놓을 공간을 마련한다. 그 사이 아이는 지난주 숙제를 어디에 놨는지 모르겠다며 찾는다고 난리다. 연필도 지우개도 없고, 학습 패드도 충전이 안 되어 있어 제대로 수업을 할 수가 없다. 겨우 겨우 수업을 시작했다가도 똥이 마렵다며 5분씩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그 아이를 어떻게든 잘 가르쳐보려고 엄마와도 얘기하고 학습 준비하는 방법부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책상에 붙여주는 등 별 짓을 다해봤지만 사실 마지막까지 크게 눈에 띄는 변화는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반면 엄마가 있는 집은 문을 열 때 집안의 온기부터가 다르다. 수업시간에 맞춰 완료된 지난주 학습 교재가 차곡차곡 책상 위에 반듯하게 올려져 있고, 각종 학습 도구도 정리함에 빠짐없이 놓여져 있다. 내가 앉을 방석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고, 방 안 온도도 춥지도 덥지도 않게 준비되어 있다. 숙제를 안 해놓은 아이는 매번 내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학습을 잘 해놓은 아이는 늘 칭찬을 받으니 학습 정서가 좋아져 늘 즐겁게 공부를 하며 쭉쭉 성장하는 게 눈에 띄게 보인다.
물론 모든 집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짧은 기간 동안 내가 만난 친구들은 그랬다. 엄마의 손길이란 아주 루틴하고도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하나씩 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이 오랜 기간 쌓였을 때에는 누적된 공백이 어느새 너무 크게 뻥 뚫려 버리고 만다.
처음엔 아이들이 학원에 있는 낮시간만 활용해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수업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워낙 바쁜 요즘 아이들 시간표에 맞추려면 점점 저녁시간 내내 일을 하는 스케줄로 짜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처음 하는 일을 하면서 내 입맛에 맞춰 일을 할 순 없는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일단 열심히 했다. 점점 조율하며 밸런스를 맞춰야지라는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어느 정도의 기간과 경험치가 필요했다.
아직 많은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뒤로 두고 일을 하러 나가는 엄마의 마음은 늘 편치가 않았다. 게다가 매일 저녁 수업을 하러 회원의 집에 방문하면, 그 집에서 구수한 저녁밥 냄새와 퇴근 후 오순도순 모여 앉은 남의 가족들을 마주해야 했다. 정작 내 아이들은 엄마 없이도 스스로 챙겨 먹을 수 있을만한 간단한 메뉴로 때우며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내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마음으로 수업을 다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면 그 일을 오래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직장도, 아무리 유능한 직원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닌데…’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린 사람은 꼭 얼마 안 가 퇴사를 하게 되더라는 빅데이터를 나는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야 할 시간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면 우리 아이들이 딱 그랬다.
바로 그 엄마가 집에 없는 집의 아이들.
게다가 내가 없는 동안 이 두 형제가 무슨 난리굿을 펴놓은 건지 집은 엉망진창에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방에 처박혀 나와보지도 않는다. 겨우 집안을 정돈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까지 교재를 공부해야 했다. 내 아이들 책상에는 엄마가 채점해주지 못한 문제집이 쌓여가는데…
조심스레 시작한 엄마의 새로운 도전은 또다시 우리 가정에 보이지 않는, 아니 너무나 빨리 보여버린,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쌓여있는 문제집을 바라보며 자꾸만 드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