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은 나의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업무 강도가 너무 센 회사이고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만 문제가 꼬여만 가는 거라고. 그래서 점점 무너져가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의 일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큰맘 먹고 사직서를 쓰고 아이들 곁에 있기로 결정했다. 그로 인해 많은 부분이 해결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없이 우울해지는 내면을 마주해야만 했다. 일과 가정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답이 아님이 금세 드러났다. 중요한 건 일을 하느냐 마느냐 얼마큼 하느냐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 자체에 있었다.
아이 때문에 방문했던 심리상담센터에서 나의 심리 검사를 제안했고 다면적 인성검사를 시행했다. 나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측면에서 들을 수 있었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나와는 전혀 다르게 정의되는 결과지를 보면서 적잖이 충격도 받았다.
문장 완성 검사 중 이런 문항이 있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내가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언성을 높이고 필요 이상의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 나 자신이 나와 내 가족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늘 화가 나있고 우울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 가정의 영혼이라는데, 우리 가정의 영혼이 이런 모습이라면…
이 가족은 절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다.
상담 선생님은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물었다.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유년 시절이 편안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어릴 때 내가 생각하는 우리 가족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싸우는 가족’이었다. 엄마는 아빠랑 싸우거나 언니랑 싸웠고, 싸우는 방식 또한 고성과 폭언, 폭력이었다. 엄마는 엄마가 정한 규칙을 강박적으로 강요했고 그에 반하는 상대에게 예고 없이 폭발했다. 어린 난 무서웠고 그 안에서 나는 착한 아이의 역할을 맡아야 했다. 우리 집을 뒤집어 놓고 나면 엄마는 꼭 나를 이용해 ‘니네 아빠한테 가서 이렇게 해봐라.’ ‘니네 언니한테 이렇게 말해라’라는 식으로 수습을 전가했다. 그게 그렇게도 끔찍하게 싫었다.
“약을 먹으면 머리 꼭대기에서 폭발하던 화가 목구멍에서 딱 멈춰요. 약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쁜 게 아니에요.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상처를 주는 일을 피하면서, 좀 더 편안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어머니의 어머님도 그 당시 약을 드셨으면 아마 훨씬 나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쉽게 하기 어려운 시대였죠.”
어머니의 어머님도 약을 먹었다면…
내가 좀 더 안정감 있는 유년 시절을 보냈을 수 있었다는 그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주고 있는 과거의 나.
그리고 어쨌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재의 나.
어쩌면 그때 나의 엄마도 그 약을 먹었다면, 나는 정서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내가 실제로 겪었던 유년 시절의 아픔이 어쩌면 이 약으로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한편, 약 복용이 내가 아이에게 해줘야만 하는 것이라는 의무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