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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Mar 06. 2024

“네가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어”라는 말

두 번째 퇴사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 내에서 살아감에 있어 일을 한다는 것은 꽤 많은 의미를 가진다. 빈 집이 더 빨리 망가지고, 사용하지 않는 기계는 녹이 슬어 버리듯 인간의 몸뚱이도 마찬가지라 일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늙는다. 일을 함으로써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기여하며 삶의 가치를 더한다. 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보다도 훨씬 고차원의 욕구가 자기실현의 욕구인 것이다. 하나의 인간이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만큼이나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그럴진대 누군가의 삶에 있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걸까? 그건 타인의 고귀한 권리를 지나치게 침범하는 가해 행위나 다름없다.




부부간의 갈등은 정말 대화로 해결이 가능한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갈등은 우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나온다. 그러나 정말 대화로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가?


‘대화’란 얼마나 어려운 고급 스킬인지… 그건 사실상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대화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한 이상뿐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소한 문제로도 물고 뜯고 싸우는 미성숙한 두 인간이,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 어려운 대화를 통해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대화를 통해 이혼을 하게 된다는 웃픈 얘기를 듣기도 했다.




갈등이 시작된 지 또 3개월이 넘었다. 언제부턴가 한번 수틀린 마음이 지속되는 기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그냥 이렇게 살아야겠다라고 적응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남편이 대화를 하자고 했다.


대화..


아마 넌 네가 ‘대화’라고 생각하는 화살들을 나에게 쏘아대겠지. 하지만 난 그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없어. 대화를 거부하고 돌아 눕는 나를 애써 끌어 앉히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크게 작정한 모양이다. 실랑이에 지쳐 억지로 자리에 앉은 내게 그는 ‘대화’를 시작했다.


“넌 뭐가 그렇게 힘들어? 솔직히 난 너랑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난 노력을 하는데 니가…”


역시… 그가 말하는 ‘대화’라는 행위는 사실은 대화가 아님을 그는 모르고 있다. 내가 어떤 문장을 사용하여 설명하더라도 그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노력을 했다는 그에게 ‘당신이 말하는 노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한다. 역시나 그건 노력이 아니다. 그가 무언가를 하긴 했지만 그것들은 나의 바램에 전혀 닿아 있지 않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본인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바램과는 전혀 무관하게 본래 해야 하는 일들 또는 할만한 것들 중에서 골라서 하는 것도 노력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너와 나는 모든 것이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전혀 다르게 정의되어 있고, 살아온 경험과 그에 대한 해석, 온몸으로 느껴지는 감각과 반응,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모든 것들이.


우리는 맞춰갈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면 차라리 거래를 하는 편이 쉽겠다는 데에 생각이 다다랐다. 그동안 묵히고 부풀린 감정들을 끝없이 쏟아내는 그의 말 중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 최대한 애를 써본다. 그리고는 희망이 없다 여겼던 나의 바램을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알겠어. 난 이거 하나만 들어줘.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아도 돼. 노력하겠다는 약속만이라도 해줘. 그래서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노력을 했으나 잘 안 되었다고, 그래도 계속 노력하겠다고라도 말해줘. 난 그거 하나면 돼. 딱 하나. 나에게 말을 좀 상냥하게 해 줘.” 


십 년이 넘도록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죽어도 수긍하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대단한 결심을 한 듯. 엄청난 선심을 쓰듯.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요구사항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지금을 기회삼아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 안달 난 듯했다. 그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입을 쩝쩝거리는 습관이 있다. 또다시 마른침을 삼키는 그를 보며 그만 멈추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힘들다. 점점 지쳐가는 내 마음이 버티지 못하고 또다시 터져버릴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그는 한 마디 더 입을 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어”


……


그렇게 나는 또다시 두 번째 퇴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겨우 다시 시작한 발걸음을 몇 걸음 떼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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