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티는 실행으로 이끄는 장치여야 한다
우리 아이는 시작하는 게 어렵습니다.
일명 실행기능이라 하는데
ADHD 아이들은 목표와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기능이 약합니다.
우리 아이는 특히 공부나 학원 등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학원 시작 10분 전에 갑자기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리는 식입니다.
그래서 학원에 적응시켜 루틴하게 보내기까지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물론 적응과정에서 실패하기 부지기수이고요.
ADHD 진단을 받고, 아이가 기분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아이를 지적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돕는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와 상의를 했습니다.
정해진 일을 제시간에 시작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말이죠.
아이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아이든 마음 속에는 잘 해내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다만 ADHD를 가진 우리 아이는 해야 할 때가 되면 충동적으로 귀찮아지거나 하기 싫어집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행이 안되는 상황.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는 아이가 안타깝지만
저는 부모이기에 아이가 충동성을 조절해 제시간에 실행하도록 할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칭찬은 칭찬대로 하겠지만
하지 않았을 때 손해가 되도록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 ADHD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지침서 3판> 미국소아과학회, 범문에듀케이션)
일명 '패널티'
아이와 상의했다니
하루 미디어 제한이 좋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일단 시작해 보고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계속 찾아보자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미디어 제한 패널티가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아이를 진료해 주시는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1. 패널티는 아이를 벌하기 위해 또는 아이가 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2. 패널티는 아이가 '실행'하도록 돕는 장치임을 서로 공유해야 합니다.
3. 아이가 실행하도록 하기 위해 적절한 패널티의 종류와 강도를 아이와 합의해 정해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패널티의 의미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종종 부모는 아이를 훈육할 때 자신의 감정이 섞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훈육할 때 부모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할 수 있어야 아이에게 제대로 된 훈육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훈육은 지적이 아니라 가르침이어야 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아이에게 '손해'를 주는 패널티라는 장치에 부모의 감정을 섞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로서 아이와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작전을 짜는 것만으로
ADHD 우리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를 돕는 길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일 겁니다.
한편, 미디어 제한 패널티는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검도관 셔틀 탑승 10분 전, 갑자기 가기 싫어졌던 아이는
“그럼 미디어 제한이잖아”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하다가
발을 쾅쾅쾅 구르며 현관문을 쾅 닫고 셔틀을 타러 가곤 했습니다.
유튜브와 게임을 못하는 상황이 싫기도 했겠지만,
자신이 정한 약속을 못 지키는 상황은 더 싫었던 것 같습니다.
매번 효과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어떨 땐 이 장치마저 소용없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아이가 조금 시무룩했습니다.
막상 가기 싫어서 미디어 제한을 수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안갔을까. 난 바보야”라며 후회와 자책을 했습니다.
엄마인 저는 아이가 자책하는 걸 보는 게 참 속상합니다.
그래도 이 속상한 마음 또한 엄마인 제가 견뎌내야 할 잘 흘러가도록 놔둬야 할 감정이라는 걸 압니다.
“다음엔 잘 갈 수 있을거야. 엄마도 도와줄게“
이 말로 아이에게 응원을 전합니다.
아이가 잘 해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잘 지켜주는 게 부모의 임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싫어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장치를 수용하고 지키려고 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책임감을 가져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이가 한뼘씩 자라기를 온 마음 모아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