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1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던 날, 나는 내 정신건강검진 결과가 담긴 요약보고서를 받아왔더랬다. 여러 항목 가운데 PTSD 점수가 가장 높았다. PTSD는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심리 반응을 뜻한다. 나한테 PTSD가 왜 높게 나왔을까 고민하다 보니, 문득 짐작이 갔다.
PTSD 질환 발생과 연관된 위험인자는 다음과 같다.
1) 어렸을 때 경험한 심리적 상처의 존재
(중략)
3) 부적절한 가족의 정서적 지원
4) 여성
(중략)
이 밖에 심리학적 원인은 어렸을 때 심리적인 충격과 관련하여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인 갈등들이 현재의 사건과 다시 일깨워지는 것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어렸을 때의 나는, 내 삶을 위협하는 내 가족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매일을 극도의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밤 10시 혹은 그보다 늦은 11시 무렵. 낡은 대문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TV를 보던 우리는 멈칫한다. 그사이 '퍽-' 문이 열린다. 아빠는 또 취해서 들어왔다. 오빠들은 인사만 하고 자기들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와 방을 함께 쓰는 나는 피할 곳이 없다.
할머니는 술상을 차려온다. 소주 한 병에 반만 익힌 달걀프라이 하나, 김치가 가득 담긴 반찬통 하나. 짧게는 30분, 길어도 1시간이면 된다. 조용히 앉아 있거나 그의 기분을 맞춰주면 되는데 그의 기분은 날마다 달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날은 그의 기분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술상이 엎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방바닥과 이불에 김치 국물이 잔뜩 묻었다. 그는 이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 나를 때리거나 오빠들에게 물건을 던질 때도 있다. 익숙한 상황이지만 이를 해결하는 건 늘 힘들다. 속으로 '어서 내일 아침이 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내일 아침을 맞으려면 이 현실을 보내야만 한다.
할머니는 내게 말한다.
"니가 딸이니까 가서 말리라, 빌어라. 살려달라 하고 빌어라"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든지
"가시나나 얼른 아빠한테 빌어라. 손이 발이 될 때까지 빌어라. 안 카기만 캐 봐라. 내가 콱 쥑이삔다"라고 협박을 한다.
그 상황을 끝내기 위해 나는 무릎을 꿇는다. 내가 잘못을 했든 잘못을 하지 않았던 중요치 않다. 무조건 나는 죄인이다. 별별 잘못을 생각해낸다. 친구와 놀다 싸운 것, 음식을 버린 것. 그런데 그런 잘못도 없는 날이 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안 태어났으면 아빠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제가 태어나서 아빠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화 푸세요."
그러면 아빠는 화를 풀었다. 마치 정답이라도 이야기한 듯이 화를 풀었고 가끔은 "아니다, 아빠가 미안타"라며 함께 울기도 했다. 그런 나와 달리 오빠들은 아빠에게 대들고 함께 소리쳤다.
"자기가 실수해서 낳아놓고 왜 우리한테 뭐라 카든데! 아니 우리가 낳아달라고 했냐고!"
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번도 아빠에게 나를 낳아달라고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늘 빌어야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도 빌었다. 할머니는 오빠들에겐 화를 잘 내지 않았지만 유독 내게는 자주자주 화를 냈다. 할머니는 내게 자신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라고 했다. 나만 없었으면 막내 고모와 함께 둘이서 행복하게 살 텐데 나 때문에, 지 엄마도 싫다고 버린 나를 고아원에 보낼 수 없어 키우느라, 자기가 이렇게 더러운 꼴을 보며 산다고 화를 냈다. 나는 그녀의 화가 풀릴 때까지 욕을 들으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수치스러웠다. 부끄럽고 그녀를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야 내가 어른이 되어 이 집에서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 나이는 아홉 살 혹은 열 살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며 나는 가족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집을 떠나 서울로 왔다. 더 이상 술 취한 아빠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됐다. 숨통을 조이는 존재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또 내게 화를 냈다.
'내가 문제야, 내가 그렇지.'
'나는 어쩔 수가 없어.'
'내가 살아있는 게 잘못이야.'
'죽어야 돼. 나 같은 건 살 가치가 없어.'
누군가와 사이가 틀어질 때, 어떤 잘못을 했을 때, 혹은 나의 말과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입 밖으로도 그렇게 말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냐'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지만 그런 위로들은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민폐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떨어졌고 무기력해졌다. 자꾸 혼자 있으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 수 없었고, 그렇다고 용기를 내어 죽을 수도 없었다.
절박함 없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격의 성장은 소망이나 명령, 통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박함에 의해 이루어진다.
- 칼 구스타프 융
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와 함께 '콤플렉스(Complex)'라는 심리현상을 알아냈다. 콤플렉스는 경험이 감정으로 저장되는 현상, 비슷한 감정들이 모여 마음속에 무리를 짓는 현상, 특히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강한 애착을 가지고 모여 커지는 현상이다.
융은 콤플렉스를 자연스러운 정신 활동이라고 보았다. 콤플렉스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리고 무의식에 저장된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콤플렉스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사람에 따라 콤플렉스의 형태, 개수, 강도는 천차만별이다. 긍정적인 콤플렉스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를 '실수'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콤플렉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정적인 콤플렉스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우리의 감정을 움직인다. 남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경우, 혼자 기분이 상해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는 경우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실수'들이 콤플렉스의 영향이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 가운데 유독 감정적인 집합이 큰 콤플렉스, 강한 콤플렉스가 바로 트라우마다.
나는 어린 시절 가족들로부터, 그리고 그에 연관되는 상황들로부터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는 때가 잦았다. 아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콤플렉스들이 생기고 강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반복해서 일어나며 트라우마를 만들었다고 본다.
영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는 발레리나다. 그녀는 인생의 목표였던 '백조의 호수' 주인공 역할을 따낸다. 이제 그녀는 백조와 흑조 모두를 연기해야 했지만, 백조 연기에 비해 흑조 연기가 볼품없었다. 백조가 순수와 순결의 상징이라면 흑조는 욕망과 광기의 대상. 착한 딸, 능력 있는 발레리나로 살아왔던 니나에게 흑조 연기는 너무나 버거웠다. 그때 동료인 릴리가 눈에 들어온다. 릴리는 그 자체로 흑조 같았다.
공연 날이 되었다. 백조 연기에서 실수를 하고만 니나의 기분이 좋지 않다. 분장실에서 만난 릴리가 말한다. 자신이 흑조 연기를 하겠다고. 니나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릴리와 싸우다가 그만 릴리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자신은 흑조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그 무대에서 니나는 최고의 흑조 연기를 선보이고 죽는다.
분장실의 릴리는, 니나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었고 니나는 거울 조각으로 스스로를 찔렀던 것이다.
다중성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세상이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법을 사용하지 않듯이, 모두가 같은 것에 웃고 울고 하지 않듯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복수(the plural)다.
-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신근영 저. 북드라망
조현병 환자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다양한 '내'가 있다. 이는 융이나 프로이트가 밝힌 심리학적 사실이다.
나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소리는 부정적인 말만 한다. 그리고 트라우마와 함께 등장한다. 그때 또 다른 나는 강한 권위와 공신력 있는 말들로 나를 깎아내린다.
어린 시절 나는 가슴 가득한 분노를 나 스스로에게 퍼부었다. 거울을 보고 욕했고, 자살을 고민했다. 내 가치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나는 힘을 얻었다. 그 나는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평소의 내가 움츠러들 때 강한 힘으로 나를 휘둘렀다. 내 경우엔 그런 때가 잦았고, 그래서 나는 그것들(트라우마와 또 다른 나)을 인지할 수가 있었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다.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상담을 공부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내린 판단이 옳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나만큼 나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도 없고, 나만큼 나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도 없다. 그런 내가 내린 답이기에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를 힘들 게 했던 건, 어린 시절의 환경 그 자체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버티기 위해 선택했던 방법, 그러니까 나의 판단과 결정의 형태가 굳어지며 스스로 나를 힘들 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무의식 속에 살던 거울 속 나, 악마 같은 또 다른 내가
아주 평범하고 이성적인 나와 함께 성장한 것이다.
아주 멋지게,
나는 나대로, 나 또한 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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