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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y 21. 2019

마음아, 우린 괜찮을 거야



나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껍데기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 바보에 불과하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두려웠다. 정신과에 가는 건 의지가 부족해서라는 인식에 떨었다. 정신과를 둘러싼 사회의 부정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나조차 정신과에 가기를 거부했다. '나는 정도는 아니지'라며. 


나는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절반의 상처는 십수 년 전 혹은 그보다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품고 살며 덧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불안이 높았고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상담을 피해 살아왔다. 


지난 3월, 마음 검진을 신청했던 것은 나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나의 건강을 증명받고 싶었다. 명랑소녀 성공기를 원했던 것인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소름 끼치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서 나는 스스로를 '나약해빠진 패배자'로 정의해버렸다.






다시 웃을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앉아 불안과 우울에 몸을 떨었다. 이유를 찾으려는 내가 바로 그 이유라는 사실이 비참했다. 우울증 진단을 내린 의사를 저주했지만,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 약을 처방받고 싶었다. 그것들이 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정말 진심으로 약에게 기대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 준비도 그만두고 싶었다. 나 같은 모지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고, 하나의 가정을 꾸린다는 건 사회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나는 점점 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감사합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는 평범한 척할 수 있었다. 매 순간이 위기였지만 더 무너질 수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에 하루하루 시간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약에 의존하고 싶었던 간절함은 정신과 코드를 남길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무지함을 이기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을 대신해 존재가 있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철저하게 내 편에게 의지했다. 매일 밤 품에 안겨 내 속을 가득 채우는 여러 절망들을 토해냈다. 길고 지독스럽게 발악했다. 가쁜 숨을 내쉬었고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단정하고, 무던히 나를 받아주는 그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내뱉었다. 저 사람이 나를 버리지 않길 바라면서도 정이 뚝 떨어질 만한 원망을 퍼부었다. 


그는 나와 같이 울었지만 나보다 더 환히 웃으며 자신의 품을 내어주었다. 속이 아릴 만큼 매운 떡볶이와 차가운 맥주를 함께 먹고 마시며 내게 살아있음으로 느낄 만한 감각들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해줬다. 

나는 조금씩 더 잘 해내고 있다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내가 쓰는 글을 읽으며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만약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었더라면 나보다 훨씬 더 힘들어했을 거라고. 자신이 만난 어떤 사람보다 멋있는 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며. 



처음이었다. 추하게 넘어진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나의 칠칠맞지 못함을 질책하지 않고, 나의 아픔부터 보듬어주는 사람. 처음으로 그런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내게는 없을 것 같았던 행운이, 사람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이제야 그 행운을 발견했다. 








나의 감정은 내가 선택하기로 했어요




선택해야 했다. 감정의 흐름에 스스로를 내맡길 것인가, 감정에 역행함으로 수반되는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감정의 힘은 이성의 그것보다 강하기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답은 아주 간단했으니까. 


나는 포기했다. 편안이 주는 절망을.

그리고 선택했다. 불편과 고통 가운데 얻는 평안을.

못되고 못난 나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다.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결혼식을 올렸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정말 만행이었다. 


위기가 찾아올 때면 감정을 선택했다. 불안이 짓누르는 편안함 대신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수많은 노력을 반복했다. 운동을 했고 좋은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다. 좋은 음악을 틀고 창문을 열어둔 채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러다가 힘에 부치면 약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아주 가벼운 약에 불과하지만. 


한 달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두 번 나는 의사와 만난다. 가끔은 옆집 수다쟁이 오빠 같기도 하고, 냉혈하고 비정한 전문의 같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여과하지 않고 쏟아내면, 그는 나의 생각 구조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내가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늘 말한다. 나는 남들보다 우울한 감정이 심하지만 잘 해내고 있다고. 








나는 자주 불안해지고 늪에 빠진다. 괜찮을 때가 반이고 괜찮지 않을 때가 반이다. 하지만 선택과 노력으로 스스로를 붙잡고 있다. 나의 부단한 노력이 나를 조금 더 편안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가 말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나를 힘들게 만드는 적, 나를 알고 

또 나를 사랑하는 나의 편, 나를 알았으니

백 번의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을 믿어본다. 




Photo by Seth Doy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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