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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y 12. 2019

마음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떠냐고

마음건강검진을 받았다




나는 네이버를 인터넷 홈 화면으로 사용한다. 개인 메일 계정이 네이버 메일이고 딴짓을 하기에도 최적화된 사이트라고 생각해서다. 특히 네이버 판을 그렇게 열심히 뒤적인다. 그 속에서 알아둬도 마땅히 쓸 데가 없는 잡학을 쌓곤 한다.


그날도 열심히 잡학을 쌓고 있었다. 금요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그리 급한 일도 없었기에 퇴근시간까지 대충 시간을 보내려고 궁금하진 않지만 알아두면 좋을 법한 잡학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화면 가운데 '마음 건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품앗이로 글을 쓰는 포스트였다. 어떤 이가 자신의 고민거리를 올리면 그에 대해 전문의들이 해결책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했다.


해당 글 아래엔 '마음건강검진을 무료로 해준다'는 이벤트가 소개되어 있었다. 마음이 동했다. 다른 생각이 들기 전에 서둘러 카톡을 보냈다. 무료검진을 받고 싶다고. 오래 걸리지 않아 답이 왔다. 지난 3월 14일의 일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나를 이기고 싶었다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의미로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 부르고,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지 않는다며 40세를 불혹(不惑)이라 부른다. 그리고 30세는 이립(而立)이라고 한다.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옛 말이 오늘에 딱 들어맞진 않지만, 지난해 서른을 보내며 내 주관이 뚜렷해지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중심을 잡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주위 사람들도 말했다. ‘대개 서른이 넘으면 편해진다’고. 그 말처럼 나도 조금씩 편해지고 있던 것 같았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우선에 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뜬금없는 용기가 솟아올랐던 것 같다. 늘 나를 쓰러뜨렸던 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제 그만 치료하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까지 그 아픈 상처를 지고 가고 싶지 않았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브런치에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알아보고 있었다. 심리검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내 속에 살아있는 내면의 적과 제대로 맞붙으려면 우선 그 실태를 파악해야 했으니까.



그 무렵 나는 심리검사센터를 몇 곳 알아보았는데 믿을 만한 곳들은 검사 비용이 굉장히 비쌌다. 수십만 원짜리 검사는 부담스러웠다. 나중에 해야겠다고 미루던 그때, 마음건강검진 이벤트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3월 23일로 마음 검진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 주 월요일, 온라인으로 검사지를 작성해 제출했다.

 


‘이 정도면 거의 정상에 가깝겠는데, 검진 결과 완전 정상으로 나오는 거 아이가?’


정말 솔직하게 검사지를 작성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 특별한 게 없었다. 대개 이런 테스트를 할 땐 해당 질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나는 검사지가 의도하고 있는 ‘문제적’ 성격과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리고 방문검진 날이 다가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지하철은 토요일 아침에도 붐볐다. 나는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선릉역에 내렸다. 역 바로 옆에 있는 병원이었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병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깔끔했고 조용했다.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는 듯했다. 직원도 한 명밖에 없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 직원이 먼저 내 이름을 불렀다. 아마 그 시간에 예약한 사람이 나뿐이었나보다. 나는 또다시 몇 장의 종이를 건네받았다. 우울감을 측정하는 검사지인 것 같았다. 최근 1~2주 동안에 느끼는 심리상태와 비슷한 칸에 체크 표시를 했다. 간단한 검사지였다. 그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정신과 전문의 진료실은 일반적인 병원과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기업 간부들이 쓰는 사무실과 유사했다. 의사가 사용하는 책상이 있었고 그 옆엔 정신과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었다. 선릉역이 내려다보이는 유리 벽 옆으론 개원을 축하하는 화분들이 있었다. 한편엔 손님이 왔을 때 사용할 법한 미팅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가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책상 앞에 의자가 놓여 있다는 점이랄까. 일반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의사 옆에 앉는 것과 달리 서로가 마주 볼 수 있게끔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한눈에 봐도 부드러워 보이는 크리넥스 티슈가 힘없이 서 있었다.


‘아, 사람들이 많이 우는 가보네.’


적당히 둘러보고선 의사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흠, 조금 걱정이 되는 수준입니다"



굉장히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의사였다. 그가 내게 그날의 기분을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목요일 오후에 회사에서 동료와 크게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있었어요. 그 때문에 며칠간 기분이 조금 다운되었어요. 오늘은 차분하긴 한데 그리 좋지 않은 느낌이 드네요.”



“그럼 지금 느끼는 기분을 점수로 표현해보면 어느 정도 될까요? 아주 좋은 게 0이고, 아주 나쁜 게 100이라고 볼 때, 지금은 어느 정도인가요?”




나는 짧게 고민하고 대답했다.




“60 정도? 아무래도 그 날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졌던 날이라 그런지 쉽게 올라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꽤 괜찮은데요.”


“평소에 기분이 자주 나쁘거나, 나쁜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면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며칠을 헤어 나올 수가 없었고 스스로를 욕했어요. 최악이었죠. 근데 요즘엔 확실히 덜해요.”


“아 그래요? 요즘에는 덜 그런 편이에요?”


“네, 예전에는 정말 정신과에 뛰어 오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많았는데, 잘 아시겠지만 정신과에 온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이제는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의 제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검진을 신청한 거였어요.”


“그렇군요. 흠…”




의사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시기 전에 사전 검진을 하셨잖아요. 그 결과가 나왔어요. 결과만 놓고 보면 저는 조금 걱정이 되는 수준이에요. 여길 보시겠어요?”




의사는 자신에게로 향해 있던 모니터를 돌려 내가 볼 수 있게끔 회전시켰고, 차근차근 검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Photo by Jeremy Bisho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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