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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y 14. 2019

마음이 말했다, 나는 지금 아프다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가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에 주저앉았던 날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 미처 정신을 차릴 수도 없는 틈에, 나는 빠르고 명확하게 그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주저앉게 되는 날이었다



나는 편집디자인 회사에서 기업 사보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한다. 기획이라는 일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허벌판 가운데 방향을 정하고, 묵묵히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정해진 답은 없다. 간혹 답이 정해져 있는 일을 할 때도 있지만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쉴 새 없이 그 답을 바꿔야 한다. 나의 판단이 부정당하는 건, 익숙해졌다. 이 업계에서 일을 하려면 어떠한 흔들림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수년간 여러 클라이언트와 여러 동료들과 일하며 겨우, 스스로를 붙잡는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 날은 힘에 부쳤던 것 같다. 클라이언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데, 한 번에 오케이를 받고 싶었는데, '이거다!' 싶은 결과물이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디자이너에게 조금 다른 것을 요구했고 나 역시 오랜 시간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있었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머리가 너무 무거워졌다. 베란다에 나가 숨을 고르고 있는데 디자이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우리는 함께 일하며 겪어야 할 과정을 겪고 있었다. 대리라는 직급을 단 두 명의 청년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의견을 주고받는 일은 꽤 멋진 일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가 말했다.



"다른 기획자들은 안 그런데, 대리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최대한 맞춰드리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

내가 너무 강해서 저 사람이 힘들구나!'


미안해졌다. 내가 뭐라고 저 사람을 저렇게 힘들게 하나 싶어 미안했지만, 어쩌겠나 일이란 게 다 그렇지. 잘해보자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내 자리로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늪에 빠진 사람처럼 걸음걸음을 내딛기가 버거워졌다.



'답이 없는 일을 하면서 내 생각을 강요했구나. 내가 참 독단적이었구나.'


'내가 뭘 안다고 디렉션을 해.'


'기획도 잘 못하는 게.'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이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평소 독단적이었던 나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남자 친구를 가르치려고 들었던 나의 태도, 친구들에게 내 주장을 강요하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가 흰 벽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 자꾸만 내 어깨를 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도망쳐 나와 내 몸과 정신을 짓눌렀다. 나는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이 끝없는 절망을 이제 그만 느꼈으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나는 결국 이 모양이구나.’


‘내 까짓 게 뭘 하겠다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숨이 멈춰졌으면 싶었다.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다



나는 의사라는 사람과 4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결과지에 나오는, 나의 부정적인 스키마에 대해 걱정을 표했다. 스키마란 개인의 성격구조라고 한다. 동일한 상황에서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개인이 가진 스키마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는 내가 가진 부정적인 스키마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나를 힘들게 만든다고 했다.


결과지에 나온 나의 부정적 스키마는 ‘엄격한 기준/과잉 비판’, ‘특권의식’, ‘승인 추구/인정 추구’, ‘실패’, ‘사회적 고립/소외’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주를 보러 온 것처럼, 놀랐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잘 알까 놀라웠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와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검진 결과를 떠들었다.



“나보고 자기 통제가 심하고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데. 그리고 자기 비난과 자해가 심하다고 했어. 계획을 10개 세우고 5개를 끝냈을 때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3개만 못해도 모든 걸 실패로 규정하는 성격이래. 특권의식이 있어서 무조건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그걸 제대로 못하면 자기 비하로 빠지고 만데. 특히 남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만점이래. 와, 진짜 똑같지? 알코올이랑 카페인 중독 수준은 중간이긴 한데 조금씩 줄여볼 필요가 있다고 했어. 우울과 불안이 높아서 항우울제를 처방해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요즘 너랑 이야기하면서 너무 즐겁다고 하니까. 조력자가 있어서 당장 약 처방은 안 하겠다면서. 너보고 조력자라고 했어. 좋은 조력자가 있는 건 참 좋은 거라면서. 흐흐.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사랑한다고 스스로 말하라고 했어. 그게 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남자 친구는 쉴 새 없이 퍼붓는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고 자기가 느끼기에도 그렇다고 동의했다. 그리고 자신도 검진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 검진 결과를 보니 신뢰가 간다며.



그날 나는 친구들과 만나 빳빳한 청첩장을 돌렸고 술을 마셨다. 새벽 5시에 돌아와 컵라면 하나를 끓여 먹고 이른 잠을 청한 후, 일요일엔 하루 종일 침대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이 왔다. 출근이 지독하게도 하기 싫은 걸 보면 평범한 월요일이었는데, 유독 집중이 안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울이 나를 덮쳤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얼마나 노력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전문가라는 이유로 나를 판단할 수가 있냐고. 내가 내 상처를 극복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 줄 모르면서 그렇게 쉽게 약을 권할 수가 있냐고. 개원한 지 얼마 안 돼서 환자가 필요한 가본데. 아, 열 받네.’


머리가 띵해졌다. 공기 중에 붕 떠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호흡이 가빠졌다.


‘아, 씨. 괜히 갔네. 유난 떨더니 꼴좋네.’


중력이 느껴졌다. 엄청난 무게의 돌덩어리가 나를 누르는 기분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자꾸 바닥에 붙는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는데 손이 떨렸다. 동료들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밥을 먹으며 숨을 쉬는 게 어려웠다. 밥을 먹든 지 숨을 쉬든 지 하나만 해야 할 것 같았다. 숨을 마시기가  무섭게 숨이 사라졌다. 자꾸만 공기를 들이마셔야 했다.


오후가 되었고 디자이너가 교정지를 들고 올라왔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고 가슴 중간이 아파졌다. 지난 목요일에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다시 찾아왔다.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던 그 날, 나는 마음껏 불안해도 좋다는 명분을 얻었다.

억지로 누르고 있던 불안이 나를 뒤흔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졌다. 그저 가만히 앞을 보고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확인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날의 감정이 불쑥 다시 올라와 내 명치를 누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한 자 한 자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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