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2
그런 사람이 있다.
그냥 좋은 사람. 무얼 해도 마음이 가는 사람.
반면 그런 사람도 있다.
그냥 싫은 사람. 무얼 해도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
좋은 사람에겐 괜히 커피를 한 잔 사주고 싶다. 달달한 간식을 나눠주고 싶다. 그가 내게 보답하지 않아도 좋다. '고맙다'는 짧은 인사 한 마디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와 달리, 마음이 안 가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 그가 내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잘 가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싶다. 심지어 그가 나를 좋게 보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가 나에게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 조금 친해져 볼까 시도해보지만 이내 고개를 젓게 된다. 그가 답답하고 싫다.
그런데 나중에 기억나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내가 기피하던 그 사람이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단짝은 아니었지만 꽤 친한 사이였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그 친구가 전처럼 좋게 보이지 않았다. 불편해졌다. 물론 그 친구는 여전히 나를 좋아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의 똑 부러진 말투,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불편했다.
'지가 뭔데, 저렇게 나대는 거야'
조금씩 거리를 뒀고 우리는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유 없이 피하게 되는 사람은 얼마 전 다니던 직장에서도 있었다. 그는 나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별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고 간식을 나눠줬다. 그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와 거리를 두었다. 선을 그었고 마침내 그도 알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친구를 싫어하고 동료와 거리를 두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왜 또 이럴까. 그렇게 불편했는데, 왜 자꾸 그들이 생각나는 걸까.
투사는 어떤 외부 대상과 마주쳐 무의식 손 원형이 자아도 모르게 튀어 올라오는 정신의 활동이다. (중략) 투사로 인해 겪게 되는 가장 흔한 감정은 적대감이다. 이 경우는 자아의 뒷면이 투사된 것으로 개인적, 사회적 이유로 자아가 가치롭지 못하다고 여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측면이다. 이런 면이 투사되면 '내 취향이 아니야~'라며 딱히 근거도 없이 왠지 상대가 싫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신근영 저. 북드라망 156P
융은 말했다. 내가 타인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타인과 내가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은 사실이지만 진실이 아니다. 현상의 본질은 그 주체가 아니고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평가한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타인을 평가하고 결론짓는다. 그러니까 내가 타인에게 내리는 모든 평가는, 자신의 가치와 태도에 기반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왜 그 친구를 싫어했는지. 고등학생 때 나는 나의 강한 태도로 인해 친구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었다. 때문에 나와 닮아있던 그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나만큼 주장이 강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또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왜 동료와 거리를 두었는지. 그는 친절했다. 특히 남에게. 남의 말과 평가에 기분이 좌지우지되곤 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싫었다. 타인의 말에 영향을 받는 내 모습이, 그대로 그에게 투사되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서 보이는 나의 모습들이 싫었던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기피하는 사람은 나의 아버지다.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가 상당히 기분 나빠하겠지만 나는 요즘 그를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내가 내 속의 상처를 꺼낼수록, 나의 과거들을 대면할수록 그가 싫어졌다.
나는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이기에 그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나는 그 점이 참 싫었다. 그래서 그와 달라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것 같다. 그가 하는 말을 쓰지 않고 그가 먹는 음식을 먹지 않고,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옳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와 달라지려는 노력은 실제로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지식이며 경험이며 사람이며 사랑이며.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생활을 드디어 가졌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살게 되었다. 내가 세운 삶의 가치들을 따르기 위해 나를 철저히 통제해야 했다. 남이 세운 기준에 나를 끼워 맞췄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 내 아버지를 떠올리며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으려 마음을 썼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면 내 아빠처럼 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어쩌면 나는 내 모든 실패의 원인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우리에겐 원망의 상대가 필요하니까.
내겐 어떤 확신이 있었다. 내가 믿는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내가 믿어온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가. 점점 의문이 커진다.
더 명확한 무엇을 얻기 위해 달려왔다. 이쪽으로 달려오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어디에서 달려왔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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