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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Sep 30. 2019

소화시키지 못한 10만 원치 만두



 지난 추석은 결혼 후에 맞는 첫 명절이었다. 명절을 맞는 며느리로서의 첫 경험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경주에 내려가기 며칠 전부터 남편에게 괜히 투정을 부렸다. 설거지 당번인 남편 씨가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지 않았거나 내가 널어둔 빨래를 내가 걷기 전까지 무심코 계속 지나치는 모습이 썩 탐탁지 않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미미한 두통도 며칠간 이어졌다.


 우려가 무색하리만큼 시댁에서의 시간들은 별다른 문제없이 흘러갔다. 손부로서 시할머니까지 모셨던 나의 시어머니는 자신이 몸서리쳤던 만큼의 고통을 내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으신 모양이었다. 물론 종갓집 며느리로서 불쑥 튀어나오는 시어머니의 모습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요즘의 시엄마에 조금 가까웠다. 새로운 손부이자 종갓집 며느리가 된 나는 내 선배였던 시엄마의 배려로 3~4시간 정도 전을 굽고 콩나물을 다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매불망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신입사원처럼, 시월드라는 일터를 어서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행복인 줄 알지 못했다


 추석 당일 불국사역에서 1시 1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려 집까진 택시를 탔다. 시댁에서 우리 부부의 예민 점수가 100이라면 친정에선 그 절반으로 떨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편안해지니 남편도 내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는 사이, 엄마는 딸과 사위의 늦은 점심상을 차려냈다. 우리는 고픈 배를 채우며 자식으로서 잘 먹는 사명감을 달성하며, 한 그릇을 비워냈다. 시댁 식구들과는 나보다 더 편한 사이의 최씨네 남자 어른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빈 그릇을 치우던 야매 손님에서 진짜 귀한 손님이 되는 건 우리 집에 왔을 때나 가능한 일. 예쁘게 담긴 시댁 제사상 음식보다 아무렇게나 차려낸 엄마의 밥상이 백 배 더 맛있는 건 말할 필요가 없을 터다(그렇다고 엄마가 밥상을 아무렇게나 차려낸 건 아니다). 딸이 좋아하는 조기 살을 맨손으로 발라주는 엄마, 맥주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를 한 박스나 사온 아빠. 가만히 앉아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먹는 일이 그리 행복한 일인 줄 그제까진 알지 못했다. 머슴밥 같던 흰 쌀 밥 한 그릇을 다 먹고서도 단감 하나와 사과 하나, 배 반 덩이를 먹고서야 겨우 수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퍼를 풀고 앉아 몸을 베베 꼬는 우리에게 아빠는 두류공원 산책을 제안했다. 며칠 째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데다 밥까지 잔뜩 먹고 나니 세상만사 반가운 일이 없건만, 아빠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나 있는지 자꾸만 나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두류공원은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되는 도시공원이다. 야구장과 테니스장, 수영장, 문화회관, 식당 등 다양한 시설들이 마련되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한다. 부모님은 매일 저녁 1시간씩 공원을 돈다고 한다.

 

 아빠는 열 걸음 앞에서, 엄마는 그보다 여섯 걸음 뒤에서, 우리는 엄마보다 네 걸음 뒤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공원 초입만 해도 사람이 몇 없었는데 안에 들어서자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온 것처럼 공원을 걸어 다녔다. 대구라는 도시가 이렇게 상쾌한 지역이었나,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가 꼭 제주나 강원도에서 들은 것과 닮아 있었다.


 산책의 미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면 유독 커피에 목을 매는 나는 아빠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 수밖에 없었다. 짠돌이 아빠가 비싼 커피를 사줄 일은 만무했고 나 역시 1천 원, 2천 원짜리 아아를 좋아하기에 적당한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자판기 앞이었다. 아이스커피, 1잔에 400원. 각자 한 잔씩 총 1,200원 치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야외음악당 잔디밭으로 향했다. 당황스러운 커피 사이즈였지만 맛은 썩 괜찮았다. 남편은 이 정도 커피라면 진짜 괜찮다면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음악당 잔디밭 위에는 이미 다수의 치맥러와 치소러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돗자리 없이 주저앉아 하늘을 봤다. 독수리 그림, 나비 그림이 그려진 연들이 우리가 보는 하늘 이곳저곳을 유영했다. 깨끗한 하늘색 하늘은 왼쪽으로 가며 점점 하얗게 빛이 발했고, 땅 가까이엔 이미 분홍 노을이 부드럽게 퍼져있었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내가 다시 아빠를 보며 웃을 수 있을까 고뇌했건만 이렇게 잔디밭에 앉아 웃고 있는 상황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해가 지고 나면 이런 평온함도 사라질까 작은 걱정이 잠시 머릿속에 머물기도 했다. 아빠는 꼭 한 번 우리를 그곳에 데려오고 싶었다며 그 날이 아니면 함께 두류공원을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를 졸랐다고 말했다. 그날 마셨던 커피는 참 고소하고 시원했다.






만두 10만 원치



 다음 날 아침, 또 한 번 머슴밥을 비우고 소파에 널어져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다시 한번 산책을 제안했다. 물론 전날 두류공원을 걸었던 게 참 좋았지만, 이날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를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침의 목적지는 만두 가게였다. 몇 달 전, 친정에 왔을 때 먹었던 매콤한 만두가 계속 기억난다는 남편의 말을, 추석 며칠 전 아빠와 통화를 하다가 이야기했는데 아빠는 나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만두가게에 전화했다고 한다. 만두도 좋지만, 그 잘난 만두를 먹겠다고 아침부터 30분이 넘게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적잖이 짜증이 밀려왔지만 아빠만큼이나 해맑은 얼굴로 산책을 나가자는 남편을 이기지 못해 따라나섰다. 만두가게 사장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추석 다음날에 쉬지 않고 만두 몇 알을 팔겠다고 문을 열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착한 만둣집에서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황스럽고 놀라웠으며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만두 10만 원치는 처음 주문해봤으니까.



"너거가 맨날 부모라고 챙겨주는데 아빠는 해준 게 없어 미안했다. 그런데 최 서방이 만두 먹고 싶다고 하는 말에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다른 좋은 건 못해줘도 만두만큼은 실컷 먹여줄 수 있지."



 만두 가게 사장님의 서비스가 더해져 30인분이 훨씬 넘었다. 우리는 그 가운데 4인분을 먹고 20인분을 싸들고 동대구터미널로 향했다. 뒷좌석 가운데 올려둔 검은 봉지를 보고 택시기사가 무엇이냐 물었다. 만두라고 답하자, 비린내가 나서 생선인 줄 알았다며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만두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다.







짜증을 낼 만두가 아닌데



 만두 가게에서 만둣값을 계산할 때 주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관광버스에서 먹을 만두인 줄 알고 30인분이 넘는 양을 다 쪄서 일회용 도시락에 담았건만, 냉동실에 두고 그때그때 꺼내 먹을 거라니. 주인은 아빠에게 제대로 좀 이야기해주지 라는 말을 반복했고 아빠는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집에 돌아온 후, 일회용 도시락에 담긴 만두를 그대로 비닐팩에 담아 가져 가자던 나의 제안을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거절했다. 그 모든 원인들로 인해 우리는 결국 일회용 도시락에 담긴 따끈따끈하고 냄새가 솔솔 나는 만두 20인분을 시외버스에 싣고 최소 5시간, 버스에 내려 최소 1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비좁은 일반버스엔 산처럼 쌓인 만두를 싣고 올 공간이 없었고, 짐칸에 실기엔 도시락 사이로 온갖 먼지들이 다 들어갈 게 뻔했다. 그리고 그날은 기온이 갑자기 올라 만두가 상할 위험도 컸다.


 왜 늘 집에만 가면 정리되지 않은 엉망진창의 짐이 생기는지 짜증이 났다. 남편은 그런 내게 왜 갑자기 화를 내냐고 다그쳤고 택시기사도 남편의 편을 들었다. 택시는 이내 동대구터미널 앞에 섰다. 뭔가 깔끔하지 않은 상황에 남편과 남의 다그침까지 받은 나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고, 남편은 그런 나를 달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 가서 스티로폼 상자를 구하더니 편의점에 사 온 얼음을 넣고 만두를 담았다. 남편은 입이 바짝 마르는지 계속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7시간에 걸쳐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 만두는 상하지 않았고, 며칠 후에 냉동실에서 꺼내 데운 만두도 맛있었다.






기분이 상한 건 나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화를 낼 만한 일은 없었다. 아빠는 그저 자식을 챙기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고, 엄마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저 응원하고 지켜봐 줬던 것이며, 남편은 우리 부모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감사하게 받았다. 삐뚤어지고 잘못된 건 내 주변이 아니라, 어쩌면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며칠간 이어졌다.




Photo by Charles ��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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