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와 동시에 고대하던 퇴사를, 드디어 이뤘다. 자연스럽게 가사 노동의 부담이 높아졌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지만 백수로서 으레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자는 마음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문을 나서는 출근 패턴에서 벗어나자 여유가 생겼다. 팔을 걷어붙이고 걸레를 집어 들었다. 화장대 위에 뽀얗게 쌓여있던 먼지를 닦아내고, 어수선하던 베란다를 정리하고서 커피 머신을 켰다. 얼음을 넣은 아메리카노가 어찌나 시원하고 고소하던지.
한 동안 이렇게 백수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시 바닥을 닦고 욕실을 청소하고 장을 봐서 저녁상을 차려냈다. 정시에 퇴근해 집에 들어온 남편은 내가 차린 밥상을 먹고는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예쁘게 말했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자연스러운 웃음이 우리의 얼굴에 피어났다.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다.
먼지는 계속 쌓였다.
나나 남편에게 병이라도 있는지 머리카락은 잠시도 쉬지 않고 빠지고 또 빠졌다.
‘삭발이라도 해야 하나.’
머리를 질끈 묶고 다시 방을 닦았다. 빨래 바구니는 왜 늘 가득 차는 걸까. 이틀에 한 번은 세탁기를 돌리는 데도 빨래통이 비워지질 않았다. 남편은 꼭 빨아둔 옷만 입는다. 빨래를 미룰 수가 없다.
가장 미치겠는 건, 하루 세 번 꼬르륵대는 내 배꼽시계였다. 왜 삼시세끼가 예능의 주제가 되는 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방을 정리하는 일들로 시간을 보냈다. 보름이 지나자 진저리가 났다. 회사를 다닐 땐 일주일에 한 번만 해도 충분한 일들이었다. 매일매일 더 열심히 하건만, 전보다 성취감이 더 없었다. 티 나지 않는 소비적인 업무였다.
‘아무리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남편에게 파업을 선언했다.
내 스키마 중 하나가 ‘엄격한 기준’이다. 겸손과 강박 그 중간 지점에서 ‘이 정도로는 택도 없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집안일을 할 때도 그랬다. 청소를 하겠다고 소매를 걷으면 책장 정리부터 시작했고, 세탁기를 돌리고선 세탁조 청소까지 마쳐야 깨끗하다고 여겼다.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면 잘못한 일로 정의했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글을 쓸 때도 여전했다.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글을 쓰지 못했다. 쓸 말이 없었다. 쓰다 보면 또 쓰게 되는 게 글이지만, 계획을 세우고 그 틀에 맞춰 쓰고 싶었다. 글을 통해 나를 치유하는 게 목표였으므로, 어서 빨리 치료에 성공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정리되는 게 아니었다.
글을 쓰는 모든 순간이 힘들었다. 물론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킬 때마다 속이 후련해진 것도 사실이다. 쓰는 순간은 버겁지만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를 용서하고 내 부모를, 우리가 놓여있던 상황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꿈꿨다. 실제로 좋아졌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글쓰기를 통한 심리치료에 대해 연구하는 제임스 W. 페니 베이커와 존슨 F. 에반스는 그들의 저서 <표현적 글쓰기: 당신을 치료하는 글쓰기>에서, 감정의 격변이나 심리적 외상을 가진 사람들이 표현적 글쓰기를 하게 되며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 심리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둘째, 감정의 분석과 명상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 셋째, 글에 쓴 내용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가 망가질 수 있다. 마지막 넷째, 글을 쓴 후에 삶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내 경우는 첫째와 둘째였다. 나는 전보다 오래 지속되는 우울감으로 일상생활을 힘들어했고, 내 감정을 분석하고 명상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여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융은 말했다.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는 절대 치유되지 않는다고. 세상에나, 뭐 그런 거지같은 결론이 있는가 싶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멋들어진 글을 몇 번 쓴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되려 내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 집착하게 될 뿐이었고 우울감을 키울 뿐이었다. 물론 내가 가진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