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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Mar 10. 2019

저장하고 싶은 날

20190303

 아이가 서너 살 때쯤이었을까? 못자리였는지 모내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논에서 일하시다가 논두렁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힘들어하시는 기색도 없이 조용히 담배를 피우시고는 아무 말씀도 없이 다시 논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은 농사 경험이 전혀 없던 내 눈에는 경이로워 보였다.

며느리인 내가 나서지 않아도 평생을 지켜봐 온 아들들 중 누군가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고, 생각해 보니 당연한 듯 지켜봐 온 가족 입장에선 별 느낌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8년간 선생님이셨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의 경우와 비슷할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에서 은행을 퇴직하는 성동일 아빠처럼 꽃다발이라도 받으셔야 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내가 찍은 시댁 모임의 사진을 정리해 보았다. 6시간 가까이 정리하다 보니 아버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찾을 수 있었다.

아직은 농사일을 계속하시지만, 내년에, 내후년에도 지금처럼 왕성하게 지으실지는 알 수 없는 것!
모든 농사일정에 내가 다 참여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많은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60년간 한 가지 일에 매진해 온 분께 이 정도 기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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