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의 동백

노래 일기 서른셋

by 솔초

2018. 4. 6 금

선생님이 ‘노래를 듣다가 혼자 울었다’고 하셨다. 그것도 새벽 1시에...


2,3주 전쯤,

“영변가를 부를 땐 산봉우리를 오르는 것 같아요. 수심가, 초한가보다 더 힘들어요.”

하고 하소연을 했었다. 연습 부족인 걸 감안하더라도 매번 같은 자리에서 틀리고 나면 재미가 없어진다. 내가 노래에게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부르면서도, ‘아~ 여기, 또 틀렸어.’

거의 비슷하게 부르면 ‘조금만 하면 되겠다’ 싶은데, 어디를 왜 틀렸는지 모를 땐, 아니 알고도 소리가 따라주지 않을 땐 답답하고 약이 오른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노래를 두고 성질을 부리다 보면 ‘내가 또 나에게 화를 내고 있구나’, 싶어서 한심해지고, 그러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보고… 이래저래 내겐, 원수 같은 노래다.


“나도 이렇게 영변가가 힘들었는지 궁금한데요? 아마 나는 그때도 잘했을 테지만요. 하하하!”

하고 장난스럽게 웃으시더니, 어려서 노래하던 것을 한번 찾아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선생님이 ‘초등학생이던 자신이 부르는 영변가를 들으면서 새벽 1시에 울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때에 대한 그리움?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 혹시 노래를 해 온 것에 대한 벅찬 마음?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의 짐작을 완전히 비켜간 대답을 하셔서 놀랍기도 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선생님이,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존경스러워졌다.


5년 전 봄, 쌍계사에 간 적이 있다. 차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쌍계사로 벚꽃을 보러 간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그냥 지금까지처럼 못 보면서, 안 보면서 살 것 같은 두려움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도 기어이 갔다.

홀가분하게 혼자 가고도 싶었지만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이, 게다가 친정에 있다가 나선 길이라 부모님도 함께였다.

비가 많이 와서 하얀 면바지를 입은 아이의 바지 뒷단에 흙물이 튀어 올랐고, 우리처럼 우산을 펴 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힘겹게 비에 젖은 벚꽃들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잠시 혼자 있고 싶어 차에서 내리거나 혼자 걷고 있으면, 엄마 아버지는 마흔이 넘은 딸을 누가 납치라도 해갈까 걱정되시는지 경호원처럼 나를 살피셨다. 꽃을 보는 내 표정을 부모님께 들킬까 봐 그마저도 편히 볼 수 없었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척하다가 다시 원위치로.


쌍계사 안의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학독처럼 생긴 음수대를 보게 되었다.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계속 내리는 비에 고인 빗물이 조금씩 일렁였다. 모가지가 댕강 잘린 동백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일렁일 때마다 동백도 같이 흔들렸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동백은 왜 하필 나를 바라보았을까? 고개를 들어 만개한 벚꽃을 볼 일이지 나는 어쩌자고 동백을 바라보았을까? 추락하듯 떨어지는 건 동백의 섭리일 텐데 왜, 그 모습에서 나를 떠올렸을까?


‘노래를 듣다가 혼자 울었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의 얘기가 계속 내 마음에 남아있었던 건 ‘내가 울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5년 전, 그때는 울지 못했지만, 지금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다. 늦게나마 내 마음이 용기를 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 일기도 쓰고 있는 것! 내게 위로가 되어 준 동백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참, 오늘 수업에서는 영변가를 하지 않았다. 부르다가 우실 수도 있을 선생님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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