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도 '숙성'이 필요해

노래 일기 서른다섯

by 솔초

2018. 4. 20 금

나: 아니 보며느으은

선생님: 아니 보며느으은

나: 아니보며느은

선생님: 아니 보며느으은

음정도 박자도 맞는 것 같은데 자꾸 다시 불러주신다.

위에 소개한 ‘엮음 수심가’의 일부만이 아니라 노래 수업의 대부분은 ‘구간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정리해 보면,

①내가 먼저 부른다.

②내가 ‘10개월 배운 수준에서 가능한 맞는(?) 소리’를 내면,

끊지 않고 다음 소절로 넘어가신다.(이런 일은 가끔 있다)

③‘이 소리가 아니다’ 싶으시면 다시 불러주신 뒤 나의 소리를 들으신다.

④‘이번에도 아니다’ 싶으시면 또 불러 주신다.

⑤‘그래도 이 소리가 아닌데’ 싶으시면 이유를 설명해주시기도 한다.

⑥‘여전히 아닌 소리’가 나면 일단 후퇴(?) 후, 다음 소절로 넘어간다.

이런 경우에는 다음 수업 때 다시 구간반복이 이루어진다.

⑦내 소리의 상황에 따라 각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무슨(어떤) 차이예요?”

(내 소리의 어느 부분이 선생님과 다른지를 묻는 질문인데, 노래 사이사이에 묻다 보니 그 과정에서 비문(非文)이나 축약된 문장이 나오기도 한다)

분명 선생님 소리와 다른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질문이 튀어나왔다.


“무슨(어떤) 차이냐고요?

그 순간 선생님은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예감이 안 좋다. 괜히 물어본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질문내용이 부적절한가? 설마 학구열을 문제 삼으실 리는 없다. 나의 말투? 말투가 부적절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것을 꼬투리 잡는 분이 아니다. 아니면 타이밍? 질문에 타이밍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궁금한 순간이 아닐까?


“그러니까 선생님(:나) 스스로가 비교를 하셔야 해요. …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각’ 자(字)를 쓴다고 할 때 ‘ㄱ’, ‘ㅏ’, ‘ㄱ’을 제 위치에 놓아 글자를 쓰죠. 만약에 ‘틀렸다’고 하면 어디가 틀린 건지 스스로 찾아보고 다시 글자를 써봐야 하는데, 해보지 않고, 아니면 하다 말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알겠는데요, 일단 선생님이 좀 써 주세요.(선생님이 쓰신 거 보고 쓸게요)’라고 얘기하는 거랑 같은 거예요.”


질문에 타이밍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몇 번 해보고 안 되니까 질문하는 것과 수십, 수백 번을 해보고 답을 구하다가 질문하는 것은 질문의 질(質)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적어도 ‘어디가 틀린 거예요?’보다는 ‘이 소리가 맞아요, 이 소리가 맞아요?’ 라거나 ‘제 음이 조금 높은 것 같은데 이렇게 내 보면 좀 비슷한가요?’ 정도까지 진화하는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동안 저절로 배우게 되는 소리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답을 구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나의 질문, ‘무슨(어떤) 차이예요?’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배움의 과정이 다 생략되어 있다.


수학 문제가 잘 안 풀린다고 바로 ‘정답과 해설’을 펼치는 것과 같다. 지금이 중2라면 초1 때부터 중2 때까지 배운 모든 수학적 지식을 끄집어내어 시도해 보고, 갖고 있는 수학적 지식이 부족하다면 교과서를 찾아보고, 평소 공부하던 수학교재를 다시 살펴보고, 인강을 다시 듣고, 수학 사전을 찾아보고, 다음날 다시 풀어보고, 다른 문제를 풀다가 다시 그 문제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수학 잘하는 친구한테 힌트만 조금 받아 다시 풀어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본 뒤에도 안 될 때는 그 막히는 지점부터 질문하는 것이 스스로 정답을 찾는 것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과정을 요구해 왔다.^^


‘듣고 따라 하는 게 먼저’라는 말은 단순히 선생님의 소리를 따라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1차원적인 질문 이전에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는 얘기도 포함되어 있구나.


다시 들어보니,

1. ‘보’의 첫 음이 틀렸다. 내 소리가 선생님의 것보다 살짝 높다.

2. 느으은의 ‘으’가 나는 직선, 선생님은 살짝 곡선(27번째 일기에 쓴 파먹는 소리)

3. ‘느’의 음도 선생님의 것보다 살짝 높다.


위의 세 가지 외에 틀린 것이 더 있을 수도 있고, 내가 틀린 것이 위 세 가지가 아닌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배운 지 10개월 된 상태에서 가능한 맞는 소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툭’ 떨어지듯 순식간에 답을 확인하길 바랐다. 내가 ‘답 주세요.’ 했던 순간의 질문들을 나는 다 기억하고 있는지, 쉽게 얻은 답들이 내 소리에 들어와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스스로 정답을 찾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기 힘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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