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할 줄 아는 어른이 되는

노래일기 마흔

by 솔초

2018. 6. 15 금

서른아홉 번째 수업은 5월 25일, 마흔 번째 수업은 6월 15일, 3주 만에 수업을 했다. 오늘이 6월 26일이니 노래 일기는 수업을 끝낸 지 11일 만에 쓰고 있다.


‘(솔초님이) 서도민요를 관뒀나 보네? ‘하루 일기’는 매일 올라오던데…’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만 둘 생각은 아직 없다. ‘아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 그만 둘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지금의 내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을 간다거나, 생각하기는 싫지만 노래를 할 수 없는 병에 걸린다거나, 혹시 노래를 싫어하게 된다거나, 레슨비를 감당할 최소한의 경제력이 사라진다거나, 지금도 바쁜 서도민요 선생님이 더 바빠지셔서 시간을 못 내시는 경우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위의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달 동안 내 주변의 공기가 좀 우중충했다. 안개가 낀 듯 답답했고, 먹물을 풀어놓은 듯 흐릿했다.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일시정지가 너무 많아서 결심하지 않으면 아주 간단한 일도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다시 아이가 돌아오면,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일기를 쓰고 … 평범한 일상의 흐름이 뚝! 뚝! 끊겼다.

태엽을 감아야 소리가 나는 오르골처럼 한 가지가 끝나고 일시정지! 그것이 반복되었고, 멎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게 되었다.

몇 시간씩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누워있기도 했다. 식물이 된 것 같았고, 방바닥으로 그대로 스며들어버릴 것처럼 막막했다. 노래는 멀리멀리 달아나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지금은 산길을 매일 걸으면서,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겨우 1년이면서 벌써 1년이기도 하다. 지난 시간을 정리해 본다.

노래에 대한 것들>

1. 수심가, 초한가, 영변가에 이어, 최근에 난봉가를 배우기 시작해서 진행 중인 노래가 4곡이 되었다.

2. 몽금포 타령, 해주아리랑, 오돌똑은 수업시간에는 부르지 않지만, 내가 혼자서 불러봐야 하는 노래들이다.(하지는 않고 있다^^)

3. 작년 12월에는 겨우 6개월 배운 실력으로 용감하게 대회에 나갔고, ‘초한가’를 불러서 10명 중에 9등을 했다.(올해 이 대회에 다시 나가 4등을 해보겠다고 스물세 번째 일기에 썼었는데, 그 대회가 벌써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노래 아닌 것들>

1. 노래를 배우면서 감춰진,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는 일을 ‘자기 수양처럼 생각하느냐’고 선생님이 물어보신 적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자기 수양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가 나의 생각이다.

입모양과 발음, 몸을 쓰는 방법 등은 노래의 스킬을 익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결국 나와 만나게 되고, 그 시간들은 대체로 괴로웠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은 내가 장하다.

3. 배우기 시작할 때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데’라는 집착이 강했다. 목표가 없으면 배움이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1년을 지나온 지금,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무언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1주일에 몇 시간이 노래로 채워지는 것이 좋고, 그런 시간이 쌓여서 ‘노래를 할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처럼 그냥 노래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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