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노래가 되다

노래 일기 마흔여덟

by 솔초

2018. 9. 5

내 기억이 맞는다면 작년 8월 9일은 전주 가맥 축제 기간 3일 중의 하루였다. 당일 생산 맥주를 당일에 마실 수 있다는 모토에 혹해서 무작정 기차를 타고 전주에 갔고, 나처럼 맥주 여행을 온 다른 친구들을 만났던 우연이 있었고, 은색 양동이 가득 얼음과 맥주를 채워 놓고 여름 저녁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가맥 축제에 다녀온 즈음, 선생님은 공연이 있어서 전주에 다녀오시게 되었다. 공연 다녀온 얘기를 하시면서 전주의 막걸리촌 등 술 얘기를 하다가,


“선생님(:나) 술 좋아하시니까 우리 술타령 한번 해보죠.^^”

그렇게 술 좋아하는 나^^를 위해 처음 배운 게 작년 9월 6일인데, 내가 너무 어려워해서 두어 번 배운 후 중단했다가, 1년 만에 오늘 다시 배우게 되었다.


처음 따라 부를 때엔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말하듯이 부르라고 하신 적은 없지만, 그렇게 들려서 불러보았는데 잘 안 될뿐더러, 남의 옷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부르면서도 ‘아, 이게 뭐지? 노래가 너무 이상한데ㅎㅎ’ 하던 느낌…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노래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따라는 하면서도 머뭇거리게 되고, 소리 내기를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노래 속의 화자(話者)는 나이 60대 이상, 카리스마와 리더십, 원만한 대인관계, 건장한 체격을 갖춘 사람(아마도 여성)으로, 적어도 3,40년 동안 온갖 종류의 술을 빚어오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그 솜씨를 인정받았고, 이후 동네에서 술을 빚을 때마다 현장 지휘를 맡아온 술빚기의 명인이다」

작년에 선생님이 처음 술타령을 불러주실 때 선생님이 부르시는 술타령을 듣고 받았던 느낌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 것이다.


‘옜다 여봐라~’하고 부르기 시작하셨을 때, ‘아! 선생님이 노래 속으로 들어 가버리셨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거실에 앉아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노래 속에서 술 빚는 동네 풍경이, 분주함과 떠들썩함이, 누룩 냄새가, 막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이 느껴졌다.

큰 역할 없이 존재하는 동네 사람 1, 동네 사람 2도, 구경하는 얘들이랑 동네 개도 노래 속에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술이냐 만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장의 풍요로움과 스케일로 보면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같은 분위기도 느껴진다.

선생님이 단지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으로 정말 술을 빚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술타령을 다시 배우면서, 1년 전 나를 빨려 들게 했던 선생님의 2017년도 술타령을 다시 들어보았다. 선생님과 노래가 완벽하게 일치했던 노래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고, 노래에서 받은 어마어마한 느낌 때문에 입 떼는 것조차 어려웠구나, 하고 나의 머뭇거림의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상상과는 달리 술타령은 굿할 때 불렀던 노래라고 말씀하신다. 작년에 이 노래를 처음 불러주실 때 다리굿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신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노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동네잔치를 떠올린 나의 상상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의 상상 속에는 지지지징 징지지징 ~ 하는 꽹과리 소리와 함께, 나의 상상 속에서는 동네잔치의 떠들썩한 풍경과 함께 술타령이 흘러나온다.


“‘떡 타령’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공연 때 재수 떡이라고 해서 관객들에게 떡을 한 판 해서 나눠주고, 술도 주면서 술타령을 부르는데,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 이렇게 가사도 바꿔 부르고 그래요…"

이 일기를 읽고 누군가 술타령을 부른다면, 선생님이 공연 때 해 보신 것처럼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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