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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Jan 13. 2019

중2면 다냐 싶은 날


20180501

아이의 안경다리가 뒤틀려있다. 자고 일어난 후에 쓰고 있었고, 잠시 책상 위에 벗어놓을 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다리 찢기 동작을 하고 있는 인형처럼 다리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왼쪽 테 부분은 우그러들었다. 당연히 렌즈도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책 더미에 깔린 것도 아니란다. 그저‘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듣고 나니 더욱 이유를 알 것 같다.


일단 집 앞 안경점에 들렀다. 새것으로 사야 하나 싶게 뒤틀린 안경테가 5분 정도의 재활 끝에 원래의 테로 돌아왔다. 수리비도 따로 받지 않았다. 

“말해라.”

“뭘?”

“안경테 값도 굳었고, 수리비도 안 받았고,

5분 만에 해결됐으니… 혼내지는 않을게.

네가 밟았지?”

“안 밟았어.”

“그럼, 뭘 어떻게 한 거냐?”

배시시 웃더니,

“손으로 쥐었어. 꽉~ 으스러지게…

손에 잡힌 게 안경뿐이어서…” 


‘아침 7시 반쯤 집에서 나가야 해’라는 나의 말에 어젯밤부터 설렜을 것이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7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9시 반에 친구들이랑 도봉산역에서 만날 수 있다’고 내 입으로 말했으니까. 

늦잠 자느라 약속을 못 지킨 건 내 사정이고, 아이 입장에선 혼자만의 시간이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날아가 버린 게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재량 휴업일의 첫날이자 2박 3일 수련회의 전야인 오늘을 호젓하게 즐기고 싶었을 렌데 엄마의 늦잠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스키점프 영화 ‘독수리 에디’를 보면 부러진 안경테를 모아놓은 통이 나온다.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꿈인 꼬마 에디가 '욕조에서 숨 오래 참기, 허들, 역도, 장대높이뛰기' 등등을 시도하는데, 경기 종목과 연습량이 늘수록 망가진 안경들도 쌓여간다.  


에디에겐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이 있고, 지금 중2인 내 아이에겐 ‘독립’이라는 꿈이 있다.

사람 하나 키워내기 참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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