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9살에 나는 광고기획사 애드필에 대리로 입사했다. 이 회사는 주로 보험회사와 신탁회사 관련 광고 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신동아화재와 동양화재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당시에는 작은 리플릿 하나조차 경쟁 PT를 통해 업체를 선정했었다. 표지에 모든 기획 의도를 담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새 준비한 내 디자인이 채택될 때면 성취감이 정말 컸다. 물론, 그 반대로 아쉽고 속상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애드필이라는 회사에서 문현주라는 디자이너로 성장해 갔다.
20년 넘게 일하며 팀장과 실장까지 승진했고, 회사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냈다. 당시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는 것은 성실함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회사가 어려워 폐업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지만, 대표님의 뛰어난 수완 덕분에 보험업계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며 어느 순간부터 일이 하기 싫어졌다. 모든 것에 흥미가 떨어졌다. 퇴사자가 나가면 새 사람을 구하는 일부터 그들을 다시 가르치고 키우는 것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피로가 점점 쌓여갔다. 대표님과의 잦은 갈등도 그 시기를 더 힘들게 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꿈, 그리고 현실
회사 생활하면서 늘 가지고 있던 소박한 꿈이 있었다. 작은 사무실을 열고, 소소한 디자인 일을 하며 느긋하게 살아보자. 명함이나 전단지처럼 간단한 작업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집 앞에 괜찮은 사무실이 있어요.
퇴사하고 여기서 소소하게 사무실 운영하면 좋을 거 같아요.”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회사가 내가 점찍었던 그 자리에 이사를 왔다. 그리고 나는 이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되어버렸다. 실장이란 직함은 여전했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감을 떠안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산 넘어 산!
2018년, 회사가 김포로 이사 오면서 가장 좋은 점이 있었다. 10분도 안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않아서 좋았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버리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집과 회사의 경계가 흐려지는 문제가 생겼다. 집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주말에도 거의 회사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마치 나만의 작업실 같아서 좋았지만,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함께할 디자이너를 구하는 것이었다. 대기업이 광고주임에도 불구하고, 김포라는 위치는 디자이너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인연이 닿아서 디자이너를 채용할 수 있었다. 22살의 아주 파릇파릇한, 능력 있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전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본 친구라 그런지 일을 정말 잘했다. 김포에서 처음 함께한 디자이너였는데, 나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게 일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한 명 더 채용할 수 있었고, 거래처들의 밀린 대금도 처리하면서 통장 잔고가 쌓이는 걸 보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코로나19는 나에게도 큰 위기였다. 주요 광고주 중 하나가 경쟁에서 밀려 떠났고, 직원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회사는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그 와중에 좋은 소식이 있었다. 힘든 상황을 얘기하던 중에 예전에 퇴사했던 직원이 다시 합류하기로 한 거다. 비록 재택근무였지만, 나한테는 회사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그 친구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광고주와의 소통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줬다. 그냥 같이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내 든든한 파트너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서류상으로 대표이사가 되었다.
대표가 된다는 것은 다시 신입이 된다는 것
대표가 되면서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다. 법인 등기소를 찾는 일부터 법인세와 부가세 문제까지 하나하나 익혀가야 했다. 경영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은 상상 이상이었다. 디자이너로서 광고주와 소통하며 디자인 작업에 집중하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직원들 월급부터 세금 납부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작은 선택조차도 매 순간 고민해야 했고, 성장이 없으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통장 잔고가 늘 신경 쓰이고, 직원들의 급여는 매달 고민거리였다.
실장과 대표의 차이
실장이었을 때와 대표가 되었을 때, 즉 팀원이었을 때와 회사를 운영해야 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감이다. 실장 시절에는 맡은 일과 팀원들 관리만 잘하면 되었다. 대표가 된 후에는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왔고,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예전에는 "대표님이 왜 저렇게 하지?"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씩 이해할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시간이 지나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의 나는 직원들이 나를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설득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장 시절에는 불평도 하고 동료들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해 아쉽긴 하다.
"이 회사 왜 이래?" "그만두자 우리" 이런 말은 속으로만 한다. 그 차이가 가끔 답답하고 외로울 때도 있다. 고민과 결정은 함께 하지만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수는 없다. 결국 이 모든 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
새로운 여정의 시작 디자인 순수의 시대는 끝났다
누군가 물어본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멋진 일을 하시네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멋지지만은 않다. 법인 운영부터 경리 업무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큰 회사라면 분업이 되어 있을 테지만, 우리 회사는 소규모 중소기업이라 모든 게 내 몫이다. 물론 세금 계산서를 발행할 때는 기분이 좋다. 열심히 일한 보람이 돈으로 돌아오니까. 디자인만 하던 시절보다 고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이상 나는 계속 종잇값 할인율 1%를 더 얻으려고 고군분투하고, 견적서를 쓸 때마다 고민하며, 매 순간 이윤을 따져야 한다. 슬프지만 디자인 순수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복병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각오라면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캔 두 잇!
대표라는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단단해질지 궁금하다. 무쇠 팔, 무쇠 다리가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욕심을 조금 부리자면,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 말뿐인 리더가 아니라,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함께 나아갈 방향을 이끄는 리더 말이다.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들과 순간을 나누며 발전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 이렇게 함께 성장한 멋진 사람들과 함께라면, 광고주가 찾아오는 회사가 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했던 누군가가 "문현주와 일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라고 말해준다면, 나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퇴사하면서 홀가분해지려던 순간, 더 큰 짐을 짊어지게 됐지만, 그것을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인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참 다사다난했다. 지금도 파란만장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조금씩 방향이 잡혀가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해야 한다. 연재라는 약속만 아니었으면 글쓰기는 미뤘을 거다. 말로는 10년, 아니 20년이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고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