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아님의 책 '응원하는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잘했으며,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뻤는지”라는 문구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이 문장을 곱씹으며, 한동안 책을 덮고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일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을 그려가며 출근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하듯 원고를 쓰고 디자인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때때로 성과가 눈에 띄지 않을 때면 “이쯤에서 포기할까?” “왜 이렇게까지 애써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그러나 어느새 또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분명 열심히 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뭐였더라.
이 업계에서 일하며 늘 느끼는 불안감이 하나 있다. 바로 클라이언트의 부재다.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당연한 걱정일 수밖에 없다. 이 업계 또한 대부분의 업종과 마찬가지로 ‘지인 영업’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아는 사람을 통해 일을 시작하면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긴다. 클라이언트가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옮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도 몇 년간 함께해 온 모 회사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했다. 미안함조차 없는 계약 해지 통보였다. 업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며 그냥 넘겼지만, 한편으로는 전화 한 번 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져보지도 못해 아쉽다.
김포로 이전하면서 맡게 된 회사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광고주의 변심이었다. 대형 광고주와의 계약이 끊기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고, 지인 영업의 리스크를 실감하게 되었다. 코로나 속에서도 버텼지만, 결국 함께해온 직원을 권고 사직시켜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 실패를 온몸으로 겪으며 무엇보다 직원에게 비전을 줄 수 없다는 자괴감이 컸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하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나,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우리가 클라이언트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그렇게 비로소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얼떨결에 맡아 운영해온 디자인 회사였지만, 이제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만의 브랜드, 보험전문 콘텐츠
모두가 디자인을 하는 세상에서 우리 회사는 특별하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쉽게 디자인할 수 있는 요즘, 우리만의 차별화된 강점은 무엇일까? 결론은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었다. 이전에 한화손해보험 등에 동기부여와 니즈 환기 같은 콘텐츠를 제공했던 경험을 주력으로 삼아, 보험 영업 전문가들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을 다 내보내야 했던 아픈 경험도 있었고, 더는 최소한의 예고도 없이 계약이 파기되는 일을 겪지 않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고 판매해 보겠다는 의지로, 우리만의 콘텐츠를 개발하자는 결심을 했다. 카드뉴스와 같은 비주얼 콘텐츠를 제작하며, 그 브랜드를 통해 보험 관련 정보를 전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이름은 ‘문콘텐츠’다
브랜드명은 내 성인 문을 활용했다. 별거 아닌것 같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 콘텐츠(文)로 마음의 문(門)을 두드려라. 그래서 막힌줄 알았던 벽이 시작점인 문이 되게 하자. 이렇게 글로 쓰니 오글거기지만 이렇게 나름 심호한 뜻이 있다. 주력 콘텐츠는 보험 관련 정보지만, 생활, 건강, 이슈 등 유익한 정보를 카드뉴스 형식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슈콘이라는 뉴스레터를 통해 자료를 다운로드받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웹사이트 구축 비용이 부담되어 아임웹을 통해 콘텐츠 쇼핑몰을 개설하고, 스티비를 통해 뉴스레터를 발행했다. 하나씩 차근차근 실행하며,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꾸준함과 끈기의 힘, 그리고 꿈
누군가 말했다. “뉴스레터는 100호 이상 발행해야 비로소 성과가 난다”고. 그래서 무조건 100호 발행을 목표로 삼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인내하며 매주 한 편 한 편 정성을 들여 작성했다. 물론 매번 정성을 다할 수는 없었다. 주력인 디자인 업무에 쫓기다 보니, 뉴스레터는 종종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힘겹게나마 꾸준히 이어갔다.
그러던 중, 농협손해보험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우리가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우리를 찾은 첫 사례였다. 매주 뉴스레터 인슈콘을 통해 꾸준히 다가갔던 결과였다. 그 꾸준함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현재 우리는 한 달에 두 종류의 카드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계약은 2025년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뉴스레터는 결국 꾸준함과 끈기의 산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인슈콘으로 발행하는 뉴스레터는 현재 109호에 이르렀다. 기대했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여러 보험사에 뉴스레터 제안서를 보낼 수 있는 근거 자료가 생겼다. 여전히 우리가 직접 찾아다니는 상황이지만, 우리만의 독창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느낀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과 인쇄가 아닌,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년 넘게 보험업계 관련 디자인을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꾸준히 업계 정보를 접하며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이를 카드뉴스로 제작해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보험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다. 사소한 정보로 인해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분들에게 문콘텐츠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 업계에서 꾸준히 해 온 경험이 무기가 되어,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문콘텐츠의 보험 정보가 정말 유용하대”라고 이야기할 날을 꿈꾸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길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걸어가자
같은 업계 이야기라 흥미롭게 봤던 드라마 대행사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길을 만들어야죠.
아니요, 그런 건 일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죠.
길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길을 찾지 마세요.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하시면 됩니다.
그러다 성공하면 그걸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를 테니까요.
성공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다 보면 성공이라는 이름의 길이 생길 것이라는 이 말처럼, 앞으로도 실패를 과정이라 여기며 한 걸음씩 걸어가자.
누군가 “디자인 경력으로도 충분히 일을 해나갈 수 있는데 왜 또 다른 콘텐츠 브랜드를 만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우리만의 것을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아오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요.”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은 얼마나 클까? 생각만 해도 좋다.
보험 정보 콘텐츠는 사실 중요하지만 인기가 없는 분야다. 그러나 보험 회사와 함께 일하며 느낀 것은, 이 정보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콘텐츠 제작자로서 내 목표이기도 하다. 묵묵히 콘텐츠를 제작해 나가는 일은 일종의 투쟁이다. 내 삶 자체가 투쟁이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길 기대하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려운 보험 용어와 씨름 하는 중이다.
‘면책,’ ‘공제금,’ ‘무배당종신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