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강릉 하슬라중love2ley@korea.kr
-프레임 속에서 나를 만나다, 세상을 만나다
나에게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카메라가 한 대 있다. 한때는 사진 수업을 열심히 듣고 특별한 사진을 찍기 위해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핸드폰이나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서는 절대 그 맛이 안 나는, 고상하면서도 어떤 사연들을 품고 있는 듯 보이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면서 무겁고 부피가 큰, 찍는 기능에만 충실한 카메라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급기야 먼지가 쌓인 가방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나의 손목을 시큰거리게 했던 그 카메라와 이별하고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많은 사진을 찍는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람, 사물,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등교하는 길에 잠깐 들fms 편의점에 앉아서도 셀피를 찍고 학교에 도착해서는 화장실 거울 앞에 모여 깔깔대면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에게 사진은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이 되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 가득 내려와 앉은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바이러스가 앗아 간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되찾아 줄 것 같은 그런 화사한 날,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인 사진을 활용해 다양한 수업을 실천하고 있는 전신자 선생님을 오죽헌 앞 카페에서 만났다. 선생님을 만난 오죽헌은 세계 최초 모자(母子) 화폐 인물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만남의 장소가 오죽헌 근방이 된 것조차 의미 있는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2019)의 영화 ≪기생충≫의 대사를 빌려 ‘우리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자화자찬으로 만남을 기억하고 싶다.
신사임당은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부터 화가, 거문고와 서예의 대가들을 길러 낸 인물로 한국 어머니의 대명사이면서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문장가였다. 그녀는 일곱 명의 남매를 모두 다양한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한 인물로 키워 냈다. 신사임당의 교육철학은 한마디로 ‘너의 뜻을 찾아 스스로 하고 싶은 길을 찾아라’이다. 신사임당은 항상 책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머니를 모방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가 곧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이 되어 주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매체에 오롯이 담은 전신자 선생님의 ‘사진으로 세상 읽기’ 수업과 신사임당의 ‘개성과 적성, 자기주도성을 강조한 교육철학’, 이 두 가지를 연결하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자유학년제 수업이 떠오른다.
자유학년제는 중학교 1학년 1년간 지식·경쟁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참여형수업과 과정중심평가를 통해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르고, 자신의 꿈과 끼를 찾도록 도와주는 교육과정이다. 자유학년제 취지에 맞는 수업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동료 교사가 함께 모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문적학습공동체를 통해 수업을 고민하고 자유학년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시는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30년 넘게 근무한 영락중학교에서 올해는 영락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 남은 교직 5년을 더 바쁘게 보내고 싶다는 선생님의 열정 넘치는 목소리를 이곳에 남긴다.
사진 속 세상 읽기 수업의 시작
사진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는 걸 더 좋아했어요.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때도 꼭 제가 사진을 다 찍었지요. 10여 년 전 유럽에 있는 한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인상적인 장면을 봤어요.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어요. 인솔자인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은 또 그걸 진지하게 듣는 모습이었어요. 그걸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죠. 수업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그때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활용해 아이들의 삶과 관련된 수업을 하고 싶은 생각을 품었지요. 가장 결정적인 건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 책과의 만남이에요.오래전에 품었던 생각을 실천하게 만들어 주었죠.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전 세계 아이들과 함께한 사진과 글쓰기 교육의 결과물이에요. 책 표지에 찍힌 아이들 표정이 참 예쁘죠?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 참 좋아요.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사진이 많이 들어 있는 이 책이 도움이 되었어요. 2년 전에는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께 사진 활용 교육을 위한 자료 개발을 하자고 제안했고 7개월 만에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그때부터는 이 두 책을 활용해 더 풍성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학기 주제선택활동 ‘사진은 내 친구’ 프로그램 내용 >
단계
프로그램 내용
1단계
한 장의 사진으로 말하기
주변을 탐색하는 단계
- 한 장의 사진으로 말하기
-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 함께 읽기
2단계
관련 정보 수집하기
도구의 접목 단계(스마트폰, DSLR 활용)
- 사진의 기초 익히기
-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 앱 조사하기
3단계
렌즈로 세상 보기
시각의 차이를 알고 대상을 설정하기 단계
- 거시적 관점, 미시적 관점으로 세상 보기
- 연역적 접근, 귀납적 접근으로 세상 보기
- 광각렌즈, 망원렌즈로 세상 보기, 프레임으로 세상 읽기
4단계
나만의 이야기 담기
포토에세이, 렌즈로 세상과 소통하는 단계
- 나만의 이야기 표현하기
- 너의 이야기 표현하기
- 우리 이야기 표현하기
5단계
렌즈로 꿈꾸는 세상 표현하기
렌즈로 꿈꾸는 세상을 표현하는 단계
- 나의 자존감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기
-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 나의 역할 표현하기
- 역사를 바꾼 한 장의 사진 따라 찍기
- 아름다운 사진전 관람하기
심화 단계
사진을 매체로 한 진로 탐색
진로 탐색 활동 단계
- 사진과 관련된 직업 탐색
- 나의 미래 사진 미리 보기
사진 전시회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글을 쓰게 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까요?
그냥 처음부터 글을 쓰라고 하면 막막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무작정 꺼내라면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는 설명하는 글을 먼저 쓰게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물건을 가져와서 주변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사진을 찍게 해요. 본인이 사물을 먼저 만들고 사진을 찍게 되면 그 사물에 관심이 생기죠. 그럼 그 대상에 대해서는 분명히 할 말이 생기거든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야 하는 글보다 단순하게 설명하는 글부터 시작하면 자신의 이야기로 연결하여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돼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등학교 1학년 대상 ‘국어 시간에 책 읽기 프로젝트 활동’을 하나 계획하고 있는데요, 수업의 시작을 문학작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본권 선생님의 책이나 ≪생각하는 사물의 등장≫처럼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관련된 정보 중심의 책을 먼저 읽게 해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그 수업 이후에는 반대로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해요.
‘로봇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주제로 토론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때에는 소설을 읽게 해요. 어려운 작품이 아니라 이태준의 <달밤>, 김유정의 <봄봄>처럼 아이들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요. 그리고 문학작품을 읽은 후 자신의 직업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의 직업을 상상해 보는데요. 예를 들어 <달밤>에서 황수건이 일자리가 없어서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황수건을 위해 미래 신문사에는 어떤 직업이 있으면 좋을까 상상해 보자는 것이지요. <봄봄>에서 점순이의 직업을 만들어 볼까? 어떤 직업이 어울릴까? 생각해 보게 해요.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중학교 1학년 친구들에게도 문학작품 속 인물의 직업 찾기 수업이 참 좋아요.
사진 수업의 진행 그리고 연계 활동
진정성 있는 작품(글)을 쓰기 위해 사진 수업에서 가장 초점을 맞추고 진행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진과 글쓰기를 성공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저는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해야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은퇴하신 이준섭 선생님께서 학교 곳곳에 다양한 들풀을 많이 심으셨는데요, 매발톱꽃은 오직 한곳에만 피어 있어요. 아이들에게 어느 곳인지 가르쳐 주지는 않고, 우리 학교에 참 아름다운 꽃이 있다고 슬쩍 이야기했더니 무척 궁금해하면서 학교 구석구석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더라고요. 이렇게 사진을 찍다 보면 협력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해요. 기억나는 사진이 있는데요, 프레임 속에 프레임을 넣어 찍은 작품입니다. 학생들이 프레임을 한 장씩 들고 서서 전체적으로 프레임 속에 다시 프레임이 들어가게 나란히 줄을 서서 찍었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수업이 곧 표현 놀이인 셈이에요.
즐거움 다음으로 저는 글을 쓸 때 분량을 채우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반듯하게 훈민정음체로 쓰지 않는 것에 아주 분노한다고 아이들에게 계속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제 자신을 ‘친절한 신자 씨’라고 말하는데요,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경우 지우개를 들고 가서 직접 지워 주고, 분량이 정해진 경우 반드시 다 채우게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같은 표현이나 “참 재미있었다”, 또는 “후배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처럼 의미 없이 반복되는 문장은 제가 다 친절하게 지우고 다시 쓰게 합니다. 수정할 때는 도서관 밖으로 가져가지는 못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와서 고쳐 쓰게 해요.
자연스럽게 분량을 채워서 쓰는 힘을 길러 주기 위해서 저는 ‘5분 글쓰기’ 활동을 자주 하는데요,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진행합니다. 사진 한 장을 보여 주고 떠오르는 생각을 5분 동안 쓰는 것인데요, 공책에 ‘7줄 글쓰기’로 짧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선착순 12명만 칭찬 도장을 찍어 줍니다. 생각을 글로 빨리 표현하는 것을 계속 연습시키는 거지요. 그럼 12명 안에 들기 위해서 아이들이 글을 조금씩 빨리 쓰더라고요. 사진 한 장을 보고 글을 쓰거나 책 속의 좋은 문장이나 단어를 코팅해서 문장 카드를 나눠 주고 글을 이어 쓰게도 해요. 짧더라도 자꾸 쓰는 연습을 하다 보면 아이들 글이 좋아집니다.
사진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도 사진을 잘 찍고 사진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할까요? 국어교사로서 어디까지 사진을 가르쳐야 할까요? 사진 수업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선생님들에게 조언 좀 해 주세요.
사진 수업을 진행하려면 핸드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핸드폰 카메라 기능이 워낙 뛰어나서 그저 흔들리지 않게만 찍으면 됩니다. 제가 요즘 이스라엘 요르단에서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핸드폰 카메라 기능이 얼마나 좋은지, 에이쓰리로 출력을 해도 오래된 벽돌의 표면이 모두 섬세하게 표현이 되더라고요. 흔들리지만 않게 고정하여 찍고 하이앵글과 로우앵글 정도를 구분하여 이해하는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거창한 기능은 필요 없고 보는 대로 사진을 계속 찍는 것이 필요해요. 지나가다가 무너진 성곽에 비친 햇살이 좋아서 가는 길 멈추고 찍기도 하고 여행 중에 자다가 일어나서 급하게 창문 밖 풍경을 찍기도 하는 거예요. 저는 제 아이가 세 살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요. 이제는 그 아이가 벌써 시집을 갈 나이가 되었으니 오래되었네요. 처음에는 필름 카메라부터 시작했는데, 학교 계단 아래 암실을 만들고 선생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인화 작업했던 일들이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학생들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 기술적인 수업은 간단하게 기본적인 용어와 개념만 소개해도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준비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카메라 기능보다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사진을 찍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사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추천해 주실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활용하면 좋아요. 사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선택하고 강조하는 효과가 있어요. 프레임은 일반적으로 쉽게 만들 수도 있으나, 액자의 틀을 사용합니다. 이것처럼 단순한 네모 모양의 액자 틀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는 겁니다.그러면 프레임 하나만으로 아이들은 너무 즐겁게 집중하면서 수업에 참여해요. 프레임은 이렇게 일차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이용하기도 하고 기본 프레임이 익숙해지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조각조각마다 다른 장면이 나옵니다. 프레임을 활용하여 두 개의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데요,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속한 세상’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말 그대로 프레임을 들고 내가 보는 장면을 찍는 것이고, ‘내가 속한 세상’은 본인의 신체 일부를 프레임에 넣어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두 개의 세상을 각각 다섯 장 찍게 하는데요, 다섯 장으로 제한한 이유는 학생들이 사진 촬영 활동을 아쉬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과 분량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속한 세상을 보여 주는 프레임 사진은 아이들의 마음이 들여다보이는 활동입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프레임에 넣는 사진을 찍게 하면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가 그대로 사진에 담겨요. 축구 골대 속에 아이가 누워 있는 사진을 볼까요? 단순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이 사진에는 이 아이의 꿈과 역사가 담겨 있어요. 자신의 신체 일부를 담는 사진으로 아이들의 심리 상태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학생 상담 자료도 돼요. 억눌린 자신의 심리를, 안경 쓴 한쪽 눈만 반복하여 보여 주는 것으로 표현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프레임을 활용하여 사진을 찍는 활동이 참 매력적이네요. 대부분의 아이는 사진 수업을 좋아했을 것 같은데요, 활동 수업을 귀찮아하거나 무기력한 아이를 어떻게 참여시키셨나요? 계획했던 바와 다르게 진행되었거나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없었던 수업도 있었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개선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교사가 수업에 너무 힘을 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세상 읽기’를 처음 시도할 때였어요. 수업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지나쳤던 시기이지요. 카메라의 기술적 측면을 너무 강조해서 설명하다 보니 수업 시간이 끝나 버린 거예요. 결국, 혼자 남아서 아이들 작품을 출력하고 정리하는 수업이 되어서 부담감이 컸던 기억이 나네요. 첫해는 항상 욕심을 내게 되더라고요. 교사 욕심에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사례를 보여 주고 개입을 많이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 예시에 얽매어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제 경우에는 활동 수업을 귀찮아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는데요, 조금 아쉬운 상황은 있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모습을 찍는 걸 참 좋아합니다.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도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그것을 자신들만의 우정 표시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 그 자체로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표정이 모두 똑같고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사진이 없어요. 모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잖아요. 저는 그 예쁜 얼굴을 가리는 손을 내리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감정 캐릭터를 따라 직접 자신의 얼굴로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게 했습니다. 감정 캐릭터를 10개 선택한 후에 자신이 직접 그 표정을 지어 보는 거예요. 아이들이 자신만의 표정 사진을 찍어 오면 불통(不通)! 불통! 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제대로 표현해 올 때까지 계속 찍어 오게 하는 거예요. 자신의 얼굴을 좋아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거지요.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을 느끼고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저는 첫 수업 시간부터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를 시작해요. 수업을 길게 하지 않고 밖으로 모두 나가게 하고 85mm나 105mm 렌즈로 학생들 인물 사진을 찍어 줘요. 그러면 아이들이 처음에는 막 가리고 찍어요. 그런데 사진을 바로 보여 주면 강요하지 않아도 다시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 이 책의 표지처럼 카메라를 든 아이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 주기도 하고요. 이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 스스로 이렇게 말해요. 자신들의 표정이 이렇게 예쁘고 다양한지 몰랐다고요.
인물들의 감정을 얼굴 표정 이미지로 표현한 감정 캐릭터를 활용하여 수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20년 전에 이 감정 캐릭터를 보자마자 소설 수업에 이것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업에서 영어권의 영문학 수업과 시, 소설 수업하는 방법을 참고했는데요, 미국 몬테소리 교육에서 감정 캐릭터를 사용하더라고요. 지금은 이미 많이 알려져서 시나리오 작가나 방송 작가들도 활용한다고 합니다. 소설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아주 한정적인데 감정 캐릭터는 30개나 되니까 정말 좋아요. 소설 창작하기 활동에서 오늘의 운세를 바탕으로 감정 캐릭터를 제시하면 자신이 그에 맞는 캐릭터 하나를 만들어요. 다른 방법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의 미래 캐릭터를 그리고 인물 감정 카드에서 감정 캐릭터를 하나 골라 가족 관계, 사회적 신분, 직업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완성해 나가는 활동이에요.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기분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설 속의 다양한 장면에 감정 캐릭터를 사용했고 나중에는 사진 수업에도 활용했어요.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진 일기 수업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요즘 아이들은 긴 호흡의 글을 읽거나 쓰는 활동을 어려워하고 힘들어합니다. 사진을 활용하여 글을 잘 쓰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간단하지만 꾸준히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수업이에요. 일주일에 3회 이상 사진을 찍고 각각의 사진에 3-4문장의 짧은 글로 일기를 쓰는 거예요. 작품이 완성되면 수업 밴드에 사진 일기를 올리고 공유합니다. 처음부터 긴 호흡의 글을 쓰기보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모아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진의 의미와 가치가 담긴 글을 아이들과 공유하면 더욱 좋아요. 제가 예전에 소록도에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프레임을 잡고 있었는데요, 벽에 갑자기 햇살이 사라지고 구름이 드리워지면서 그 모양이 확 드러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진을 찍고 ‘흔적’이라는 글을 썼어요. 그런데 그 사진 일기를 쓰고 10년도 더 지나 학생들과 다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장면을 또 보게 된 겁니다. 사진에 긴 글을 쓸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쓴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거죠. ‘너희들도 이렇게 사진 일기를 써 봐’ 하고요.
아이들에게만 글쓰기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사인 저도 틈틈이 교단 일기를 밴드에 남겨요. 몸이 안 좋은 날이라 출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아픈 날이었는데요, 그날 아이들이 웃어 주는 것을 보면서 몸살이 나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이 약이다’는 글을 썼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선생님이 남긴 글을 모두 보는 거잖아요. 너희들이 나의 희망이라고, 선생님은 무척 행복했다고 말해 주는 거지요. 그럼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게 됩니다.
사진에 대한 평가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이들이 사진과 친해지게 하고 좋은 사진을 찍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사진에서 ‘좋은’의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우선 사진의 기법 면에서 이야기하면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히 클로즈업된 사진, 원근감이 있는 사진, 움직임이 섬세하게 표현된 것이 좋은 사진입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잘 표현한 사진’이 좋다고 생각해요. 구도가 좋고 기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도 학생들에게는 스토리가 있는 사진이 좋아요. 그러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전에 상상하여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바람을 찍으려면 어떤 장면을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흔들리는 꽃’, ‘흔들리는 나무’, ‘흔들리는 숲’. 이렇게 순간의 상황을 상상하고 바람을 어떻게 그릴지 생각하는 거지요.
체험 학습을 갈 때도 사진 미션을 제시하면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돌아오겠지요? 3시간 동안 사진 한 장을 찍고 온 아이도 있었어요.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축구만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자신이 선택한 풀꽃을 찍기 위해 그렇게 참고 기다렸대요. 자꾸 바람이 불어서 그 작은 꽃잎이 흔들리니까 그걸 제대로 찍어 보겠다고 한 거지요. 그렇게 아이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성장해요.
사진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감정 캐릭터를 활용하여 사진을 직접 찍어 보게 하고요, 사진에 대해 호기심이 조금 생기면 ‘좋은 사진’에 대한 수업을 진행합니다. 수업을 위해서 선생님들이 좋은 사진을 많이 모아 두시면 좋은데요, 저는 제가 찍은 사진과 구글 이미지를 주로 활용했어요. 이렇게 모아 둔 사진으로 사진 읽기 활동인 ‘사진 받아쓰기’를 합니다.
수행평가 부담을 덜 주면서 아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요?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의미 있거나 소개하고 싶은, 사진을 활용한 수행평가 활동이 있으신가요?
수행평가는 무조건 수업 시간 안에 해결합니다. 과제도 제시하지 않고 모든 평가도 수업 시간에 끝냅니다. 아이들을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하려면 수업을 듣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해결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평가 기준을 정할 때는 구멍이 있게 하지만 경계는 명확하게 해야 해요. 선생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꼼꼼하게 하면 서로 힘들어질 수 있어요.
평가가 끝나면 대부분의 수행평가 결과물은 항상 전시해 줍니다. 그래서 평가 용지를 나누어 줄 때도 전시를 염두에 두고 만들고 활동지를 줄 때도 미리 구멍을 뚫어 주거나 색지를 나누어서 만들어 둡니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면 활동이 끝난 후에 아이들 결과물을 연결하고 제목만 붙여 주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전시회가 됩니다. 우수한 작품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의 작품을 전시해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서로 공부가 되고 평가에 대한 이의 제기도 없게 됩니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학기의 수행평가 계획을 미리 알립니다. 그중에서 사진을 활용한 설명문 쓰기는요, 학교 주변의 사물에 대해 설명문을 쓰는 프로젝트 활동 안내문을 포스터 형식으로 한 달 동안 게시해요. 그 포스터에는 사진반 아이들이 찍어 준 학교 안의 식물도감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달 동안 그 꽃과 식물을 찾아다니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요. 평가 당일에는 그 포스터 속의 사진을 한 장씩 무작위로 나눠 주는데요, 그 식물에 대한 정보가 최대한 자세할수록 좋은 점수를 받아요. 예를 들어 ‘이 꽃은 본관 건물 끝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계단 아래에 피어 있다’처럼 본인이 관찰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해요.
코로나 시대 국어교사의 길
특히 올해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잖아요. 낯선 원격수업이라는 새로운 길도 걸어가고 있고요. 2020년을 통과하는 지점에서, 오늘날의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과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덧붙여 후배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우리 선생님들은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설정한 방향으로 학생들의 역량을 계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아이들에게 맞게 피드백 해 주고 계획하게 해 주는 것, 도우미로서 코칭의 역할을 하는 것이 미래 사회에서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국어 시간에는 학생 개인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수업 활동을 구성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책을 읽고 각각의 문제의식 해결에 도움이 된 아이디어를 작성하게 하는 글쓰기 활동 같은 것 말이지요. 예를 들어, 진로와 관련해 의사가 되는 꿈을 가진 학생이라면 신경숙(2008)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책은 의학적 이야기로 읽히게 되겠지요. 등장인물 중에 누가 어떻게 아프고, 어떻게 치료하는지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가게 돼요. “실제로 주인공 어머니가 두통에 시달린다. 대형병원에서 시티 촬영을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두통에 시달린다. 과연 어머니 두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를 통해 우리는 환자의 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에 대한 내용을 독후감으로 쓰는 식이지요. 또 다른 사례로, 남북통일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게 돼요. “이 책에서 어머니를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린 후 6개월이 지나도 모든 가족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남북한 이산가족은 헤어진 지 60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이산가족의 정신적 고통은 얼마나 심할지 예상이 된다. 그래서 진보나 보수에 상관없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통일 정책은 이산가족 상봉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렇듯, 문제의식으로 책을 읽으면 평소에 얻을 수 없었던 창의적인 생각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고민과 자극이 이루어지도록 교사가 플랫폼을 잘 구축해야 하는 거겠지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기억을 환기시킬 수도 있어야 해요. 저는 유년 시절 작은 시내가 흐르던 강원도에서 살았는데요, 그 시절의 기억이 문학 수업에 참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바람이 불면 반짝반짝 흔들리던 미루나무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국어 선생님들이라면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이런 것들을 잠재우지 말고 끌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배 교사로서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아이들을 쫓아가지 마시고 미리미리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너무 꼼꼼하게 하느라고 지치지 말고 수업을 선생님들끼리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2015 교육과정은 우리 선생님들에게 권한을 많이 주었잖아요. 혼자 하시지 말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학원 손 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만의 수업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활동하는 교육 경험을 만들어 주세요.
“화시무성시 시시무형화(畵是無聲詩 詩是無形畵)”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형상 없는 그림
송나라 화가 곽희(郭熙)
“Painting is a mute poetry and poetry is a speaking picture” 그림은 말 없는 시고 시는 말하는 그림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 세상이라는 커다란 캔버스를 활용하여 글을 쓰는 수업, 사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닌 행위일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은 묵묵한 시이고, 시는 맹목적인 그림이다. 둘 다 자연의 힘을 발휘하며, 도덕적인 원리를 보여 준다”고 했다. 사진과 그림이 그리 다르지 않다. 프레임 속에 나의 목소리가 담기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소리 없는 시가 되어 울림을 주게 된다. 사진의 기록 위에 자기 이야기가 더해지면 더 느낌이 강해진다.
인터뷰 내내 요술 단지 같은 선생님 가방에서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은 수업 교재나 활동지, 작품집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마치 시골집에서 손수 키우신 호박이며 감자, 고추장, 김치를 바리바리 싸 주시는 친정 엄마 같다. 이제 5년이 아닌 60개월밖에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하다 하시면서 말이 빨라지시는 선배 선생님을 뵙고 또 배운다.
친절한 전신자 선생님께서 다듬고 정리하신 사진 이야기 수업을 온전한 내 것으로 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또 생각한다. 나에게는 후배 선생님들에게 저렇게 한 아름 안겨 드릴 수 있는, 나만의 수업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