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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국국어교사모임 Jan 26. 2021

다문화 학생들이 우리 학교로 왔다

배기연 부산 주례중 byegy11@naver.com

신규 2년 차에 다문화 학급 담당 교사가 될 뻔했다. 좌충우돌 끝에 벗어났지만 그해부터 다문화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다문화 멘토링을 했기 때문에 다문화 학생들을 대하는 것에 약간의 (근거 없는) 자신이 있었으나 그건 완전히 헛된 자신감이었다. 나는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실제로 다문화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것은 내 생각과 아주 달랐다. 다문화 학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니,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분한테도 갑작스럽게 다문화 학생들을 마주할 일이 생길 수 있다. ‘미리 보기’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한번 읽어 봐 주시면 좋겠다. 


다문화예비학교준비된 교사는 없다 

2017년에 내가 신규 발령을 받고 한 해 뒤, 우리 학교는 다문화예비학교로 지정되었다. 부산에 있는 중학교 중에서 다문화 학생이 많기 때문이었는데, 지정된 이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다문화 학급을 담당할 선생님이 정해지고, 선생님들은 다문화 학생이 들어오는 수업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사실 나는 그해에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문화 학급에 들어온 학생은 슬라바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슬라바는 1학년으로 들어왔고, 한국어를 영 못하진 않았다. 나는 2학년 국어 전담이었기 때문에 슬라바와 수업에서 만날 일은 없었다. 메신저 백을 메고 늘 복도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슬라바의 모습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이다.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슬라바를 관찰했는데,

“슬라바! 이 과제 내일까지 해 와야 해.”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못 알아들어요.”

“슬라바~ 발표 수행평가가 있어. 다음 주까지 준비해야 해.”

“나 외국인이야. 한국어 알아들을 수 없어요. kill me.”

존댓말을 할 줄 알지만, 반말을 섞어 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 학교에서 다문화 학급은 특수 학급과 비슷하게 운영된다. 다문화 학급 선생님이 한 분 있고, 다문화 학생은 다문화 학급에서 교육과정에 따라 한국어 수업을 듣고, 다른 시간에는 자신이 속한 학급의 시간표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한국어 수업은 다문화 학급 선생님 또는 한국어 강사가 와서 진행한다. 다문화 학급 선생님과 슬라바의 유대 관계는 돈독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 대화할 사람이 없는 슬라바 처지에서는 유일한 소통 창구가 다문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학급 선생님 처지에서도 (당시에는) 한 명뿐인 다문화 학생이었으니, 슬라바에게 마음을 많이 쓰셨다. 1학년 3반 아이들이 다문화 학급 선생님이 오시면, 슬라바 아빠가 왔다고 했을 정도이니, 학교에서만큼은 확실히 부자 관계였다.

우리 학교가 다문화예비학교로 지정되긴 했지만, 어떤 지침이나 도움이 없었기에 1학년 수업 담당 선생님들은 서로 다른 난항을 겪었다. 러시아어를 아예 모르니 손짓, 그림 그리기 등을 해 가며 슬라바에게 설명을 하긴 했지만, 그리 매끄럽진 않았고, 원활하게 진행되지도 않았다. 수업 시간에 구글 번역 앱도 등장했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 교실에 슬라바가 있다는 사실에 무뎌졌다. 교실에서 외딴섬처럼 앉아 있던 슬라바에게 수업이란 모르는 외국어가 계속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멍하니 듣고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해 겨울 러시아어를 쓰는 막심, 드미트리, 안나, 파키스탄어를 쓰는 에마드가 전학을 왔다. 막심과 드미트리는 한국어를 거의 못 했고, 안나와 에마드는 한국어를 꽤 잘했다. 나는 다음 해부터 다문화 학생들을 2학년 국어 수업에서 만날 수 있었다. 걱정이 컸지만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외국어 배우는 걸 좋아해서, 우린 서로 러시아어와 한국어 원어민이니 ‘언어 교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배우긴 배웠다. 제일 많이 배운 것은 러시아 욕. 수업 시간에 자꾸 러시아 말로 욕을 하기에, 언어생활 지도를 위해 위키 페이지에서 러시아어 욕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국어 수업너에게 닿기를 

Поэзия это не сложно 시는 어렵지 않다 

2학년 1학기 국어 수업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시 창작하기’였다. 그때 시를 쓰기 위한 준비 운동으로 시집을 무더기로 갖다 놓고, 마음에 드는 시집 몇 권을 골라 거기서 마음에 드는 시를 뽑아서 옮겨 쓰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쓰게 했다. 슬라바, 드미트리, 막심이 읽을 수 있는 러시아어 시집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를 싸맸다.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읽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멍 때리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의 친구이자 조력자 구 선생(Google)의 도움을 구했다. 세계문학에 조예랄 것이 없는 사람이라 이름을 아는 러시아 시인 몇 명을 추려, 그중에서도 러시아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함께 있는 시 몇 편을 골라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아이들에게 자기가 마음에 드는 시를 찾으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 내가 무슨 뜻인지 아는 시를 골라 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선택권을 박탈해 버렸다. 알렉산드르 푸시킨과 세르게이 예세닌의 시 몇 편을 나눠 줬는데, “시가 (사랑 얘기라서) 느끼하다”는 감상을 보고 웃은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인, 좋아하는 시를 갖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괜히 시가 느끼하다는 편견만 생기게 만든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상적인 경험에 대해 마인드맵도 그리고, 그 경험으로 시도 써냈다는 것이다. 소통의 부재로 거리감이 느껴지던 아이들이 귀엽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한국어로 글 쓰는 것도 어려운데 시 쓰기는 더 힘들 것 같아서 러시아어로 써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세 명 다 서툰 한국어로 시를 써 왔다. 드미트리는 축구, 슬라바는 커피, 막심은 필통에 대한 내용이었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별로 표현을 하지 않는 애들이라(물론 나와 친하지 않으니 그렇겠지만) 그들이 써 온 시가 더 반갑고 귀하게 느껴졌다. 특히 막심이 쓴 시는 읽고 너무 감동해서 개인 에스엔에스 계정에도 올렸는데, 그 글에 막심이 ‘헐’이라고 댓글을 달아서 웃겼다. (하트를 누른 걸 보니 나름 마음에 들었나 보다.)        


흔히 빠지는 착각 

다문화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학습 수준도 낮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한국어가 서툴 뿐이지 생각의 깊이나 감성이 어린아이 수준이 아닌데도, 이런 착각으로 자꾸 과제의 수준이나 기대를 낮추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적 자극을 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친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데, 글쓰기를 할 때 학생의 모국어로 과제를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행평가를 할 때도 자기 수준에 맞는 모국어 작품들을 골라 읽게 하면 안 되나?

아이들이 언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국어로 과제를 하게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한국어로 과제를 하게 했을 때보다 풍부하게 자신의 의견을 적어 내서 그 점이 좋았다. 다만 결과물을 받고 피드백 하는 데 문제가 좀 있다. 그때 모국어로 써서 제출한 과제 중 몇 개는 이중언어 선생님에게 해석을 부탁드려서 내가 이해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작년에 받은 과제인데 아직 뭐라고 썼는지 모른다. 말수 적은 그 아이가 필기체로 빼곡하게 뭐라고 쓴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다문화 교육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긴 하지만,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사로서 의견을 하나 내자면 아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수업 속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행평가나 과제 같은 것들을 낼 때, 모국어로 과제를 제출해서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어도 배우고, 동시에 자신의 모국어도 유창하게 하는 능력자를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닐까. 수업을 지금처럼 계속 운영한다면, 모국어는 모국어대로 까먹고, 자신의 능력과는 별개로 과제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한국어 학급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중도입국해서 한국어 학급에 들어오는 아이 중 대부분이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다고 한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데, 한국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고 모국어도 자꾸 까먹고 있으니 우울감과 분노가 계속 쌓이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어떤 아이는 그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흰머리까지 왕창 생겼다. 완벽주의자인 그 아이가 자기가 잘하는 과목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백지로 내야 했을 때 느꼈을 속상함이 얼마나 컸을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의 다문화 학생들이 미래에는 후배들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로 적임자가 아닐까? 


명배우의 탄생 

2019년 2학기에 2학년은 단편소설을 단편영화로 재구성하기, 3학년은 공익광고 만들기 수행평가를 했다. 단편소설을 단편영화로 재구성하기 위해 모둠 토의를 통해 각색했는데, 거기서 다문화 학생들은 거의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엎드려 있거나 엎드리지 못해 앉아 있거나. 소설 읽을 때는 옆에서 이해하는 걸 도와주는 것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모둠 토의를 할 때는 도움을 줄 수가 없으니 마음이 쓰였다. 평소 막심은 말이 없고, 슬라바는 “하기 싫다”는 말을 많이 해서 역할을 나눌 때도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막심, 슬라바 모두 존재감 있는 배역을 맡게 됐다. 막심은〈노찬성과 에반〉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찬성 역을, 슬라바는 국밥집 할머니 역할을 연기했다. 특히 막심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자기 혼자 나오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멋진 연기와 비주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영화를 보면서 평소 보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 모두 놀라고, 웃긴 장면에서는 더 빵 터졌다. 역할을 나눌 때, 다른 모둠원에게 아무것도 안 시키지 말고 작은 역할이라도 주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런 얘길 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 못하니까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추측해서 일을 그르칠 뻔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격려와 응원, 친절한 안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믿어 주는 자세가 나한테 많이 부족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막심과 슬라바에게 자기 영화를 본 소감이 어땠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는 못했다. 아마 “별로요”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작은 도움큰 기쁨 

2020년 1학기에는 2학년 전담, 3학년은 각 반에 두 시간씩 들어갔다. 2학년들과 수업하기는 처음이었는데, 2학년에는 러시아에서 온 안나와 파키스탄에서 온 마수마라는 다문화 학생이 있었다. 안나는 한국어를 꽤 잘해서 막심이나 드미트리, 슬라바가 러시아어로 쓴 과제를 물어보면 대강의 뜻을 알려 주는 등 나의 조력자 역할을 해 준다. 수줍음이 많아서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지만, 목소리가 예쁘고 웃는 모습이 귀엽다. 마수마는 처음 왔을 때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는데, 현재 열심히 배우고 있어서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이 눈에 보인다. 수업 시간에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거기다가 예의도 바른 학생이라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1학기에 이들과 함께했던 수업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매체 활용 발표하기 수행평가다. 피피티를 활용해서 발표하는 수행평가인데, 코로나로 인해 발표 준비 방법을 온라인 수업에서 안내하게 되어 안나랑 마수마가 따라오기 힘들었다.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 수업으로 바뀌면서 발표 준비가 미흡한 다른 애들에게 다시 준비 방법을 알려 주고 도움을 줬는데, 안나랑 마수마에게도 교무실로 찾아오라고 이야기했다. 마수마는 한국어가 아직 서툴러서 피피티에 마수마가 말할 내용을 큰 글자로 적어 줬다. 발표 주제는 ‘파키스탄을 소개합니다!’. 사실 마수마랑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는데, 발표 준비하면서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안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하기 때문에, 피피티 제작과 발표 내용을 구성하는 것만 도와줬다. 애들이 관심 가질 주제를 잡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안나는 ‘러시아와 한국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발표 주제로 하고 싶다고 했다. 내용도 흥미로웠고 피피티도 잘 만들었지만, ‘수줍음이 많은 안나가 애들 앞에서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 ‘목소리가 작은데 마스크를 쓰면 더 잘 안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훅 들었다. 그렇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 나는 마스크 때문에 목소리를 더 크게 이야기해야 뒤에 앉은 애들에게도 들린다는 것만 이야기해 주고 안나와 헤어졌다.

다음 날, 안나는 작은 수첩을 손에 들고 ‘떨린다’며 긴장된 표정으로 웃었다. 전자 칠판에 안나의 피피티가 뜨고, 발표가 시작됐다. 걱정이 무색하게 안나는 “자~ 여러분! 여기가 어디입니까?” 하며 능수능란하게 발표를 했다.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밀고 당기고, 긴장감을 만들었다. 수첩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거의 보지 않았고 손동작도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깜짝 놀랐다. 발표 내용도 청중들이 빠져들 만한 내용, 특히 러시아와 한국의 다른 점에서 한국은 학교 숙제가 별로 없지만, 러시아는 하루에 서너 과목의 숙제가 있다, 러시아의 여름방학은 세 달이다, 한국 학생들은 학원을 많이 다니지만, 러시아 학생들은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로 질의응답 시간에 불이 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답변도 너무 유창하게 잘해서 나 혼자 안나 발표 영상을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발표를 마친 후 같은 반 아이들의 피드백도 받았는데, 다들 안나가 잘했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발표를 마치고 안나한테서 “선생님 덕분에 잘하게 됐어요. ㅠㅠ 감사합니다” 하고 카톡이 왔다. 안나가 내 덕분에 잘하게 됐을까? 안나는 원래 잘했는데, 그동안 나 때문에 안나가 가진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기쁨과 함께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두 가지 

다문화 학생들과 3년을 수업하면서 교사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한국어를 못 하니까 (이것도) 못 할 거야’ 하는 생각이다. 이건 다문화 학생들이 아니라,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어쨌든 가장 쉽게 하는 생각이자, 경계해야 하는 생각 1호다. 그동안 나도 많은 것들을 ‘못 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시켜 보면 아이들이 못 했던 것은 없었다. 오히려 못 할 거로 생각해서 굳이 시키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못 하게 됐다. 작은 것이라도 성공하는 경험을 계속 쌓아 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필요하다면 학생에게 어떻게 도와주면 네가 이 활동(또는 수행평가)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말도 통하지 않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학업에서 한계를 느끼고, 중학교도 자퇴하고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성공 경험을 쌓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 교과 시간에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다문화 학생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 애들은 이럴 거야’ 하는 생각이다. 한국어 학급이 있는 학교에 있으면서 생기는 현상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떤 국적 또는 어떤 언어를 쓰는 아이들을 몇 명 보다 보니 그 나라 아이들은 이럴 것이라며 일반화를 하고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러시아 출신 학생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식사 중에 상담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 모두 그런 건 아니라며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러시아 여학생이 너무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친구들과 문제가 생겼다고, 그 아이의 국적이나 민족을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아이 개별로 바라봐야 하지,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그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고유한 면을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기.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임을 다시 깨달았다. 덧붙여 하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알면 알수록 그 아이에 대해 더 궁금해지고, 귀찮은 마음도 줄어드니까. 그 아이를 위한 것이 뭔지 고민하게 되니까 말이다. 알려는 마음이 제일이다! 

2018년에 만난 막심은 올해 여름방학에 양산으로 전학을 갔다. 그동안 왕복 세 시간의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로 다니느라 너무 고생했겠구나 싶고, 명배우를 양산으로 보내는 마음이 아쉬웠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잘 있냐고 물어보니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우리 학교에서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으니 수업 시간에 못 알아들어서 너무 심심했다고, 선생님들이 공부하라고 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5개월 후면 나도 막심처럼 우리 학교를 떠난다. 떠나는 날까지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선물하고 싶다. 그게 주례중학교에서 나의 마지막 임무인 것 같다.   



글쓴이 소개

잘하는 건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가진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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