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누엔티녹헌) 부산광역시청 여성가족과 hanjihye156@gmai
- 신짜오, 신짜오, 베트남의 모국어교육에 인사를 건네다
박항서 매직(magic)이 실현된 나라이자 2019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로 손꼽히는 베트남은 한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베트남 최대 휴양 도시 다낭(Đà Nẵng)을 방문한 외국인의 57%가 한국인이라는 보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2년 12월 정식 수교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양국의 수교 기간이 짧은데도 경제적, 문화적 교류는 점점 더 늘고 있고 통계청 조사 결과 한국, 베트남의 최근 국제결혼 누적 건수는 1위를 달린다.
가을호에서는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엄마 나라 동화책》의 베트남 동화 번역에도 참여하고, 2011년 부산에서 첫 결혼이민자 출신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한지혜 주무관을 통해 베트남의 모국어교육에 대해 알아본다.
새로운 보금자리
저는 현재 부산광역시청에서 베트남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 생활 적응과 통․번역, 결혼이민자대표회의와 다문화 이해 교육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입니다. 2007년 처음 한국에 발을 밟고, 지금까지 쭉 부산서에만 살아왔습니다. 저의 친정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베트남의 이름은 누엔티녹헌(Nguyễn Thị Ngọc Hân)인데 제 이름의 알파벳 ‘Han’자를 한국 성씨로 삼아 ‘부산 한 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과 한국의 좋은 점만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시아버지께서 제 한국 이름을 ‘지혜’로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시청에서도 ‘한지혜’라는 이름으로 저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저는 남편과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옹기종기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종합형 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별한 남편과 이혼한 제가 만나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었는데, 저희 둘 다 서로의 아이들을 입양시킨 다자녀가족이면서 다문화가족인 셈이지요. 처음에는 서로가 적응하느라 정말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만족스럽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 막연히 개인주의적 성향이 무척 강한 나라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 생활하다 보니 오히려 가족 중심의 문화가 생활의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어 속 로마자, 한자어, 6개의 성조
제가 베트남을 떠난 지 벌써 13년이 됐네요. 베트남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있고, 기억에서 멀어진 것들도 있지만, 제가 받았던 언어와 문학 교육에 관해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베트남어 교과서> 쓰기 연습 예시
베트남은 동남아에 위치하지만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와는 문화와 글자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특히 베트남은 만든 이와 시기가 분명한 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17세기 무렵 프랑스 아비뇽 예수회 소속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신부가 프랑스 알파벳을 응용하여 베트남 알파벳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선교를 위한 목적이었고 처음 만든 문자에는 성조의 존재와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가 담기지 않아 불완전했지만 차츰 성조를 반영하여 새로운 문자 체계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어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6개의 성조가 있기 때문인데, 성조가 달라지면 뜻이 달라져, 베트남어를 배우고자 하는 많은 외국인을 머리 아프게 만들지요.
초등학교에서는 국어에 해당하는 ‘tiếng việt(베트남어)’ 과목에서 글씨를 익히고 되고, 이 시간에 읽기 연습과 받아쓰기 수업을 합니다. 그리고 문자를 익힐 때 성조에 따라 달라지는 단어를 여러 번 써가며 익힙니다. 쓰기 연습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틀리면 남아서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중시되는 과정입니다.
베트남어의 문법은 복잡하지 않고 영어나 한국어보다 쉽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장은 주어+서술어+목적어의 어순을 따릅니다. 동사의 변형은 없어서 단어를 그대로 두고 상황을 부연하는 말을 첨가해서 쓰면 됩니다. 그리고 형용사도 마찬가집니다. 띄어쓰기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큰 어려움 없이 모든 단어를 같은 간격으로 띄어 씁니다. 주어를 빼면 반말이 되는 형태라 상대 높임 체계도 단순한 편입니다. 다만 베트남어는 호칭을 사용한 존칭법이 발달했습니다. 베트남어의 호칭은 60여 개나 되는데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 동료, 윗사람과 같이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호칭과 인사도 매우 다양해집니다. ‘우리’를 나타내는 표현도 섬세하게 구분됩니다. 예를 들면 ‘chúng tôi’는 청자를 제외한 ‘우리’이고, ‘chúng ta’는 화자와 청자를 포함한 ‘우리’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문법 자체가 복잡하지 않은 편이라 문법 수업도 많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대신 인도, 중국, 프랑스 등과의 관계는 베트남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배경을 어휘 속에서 학습하게 됩니다.
특히 베트남어는 현대 중국어와 구조적인 공통점이 많습니다. 중국어처럼 미래형과 과거형이 없어서 과거를 표현하려면 ‘어제’나 ‘아까’와 같은 말을 써야 합니다. 또한 베트남어 어휘는 60% 정도가 한자어입니다. 사실 베트남어에는 한자어에서 온 단어들이 많아서 한국어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습니다. 발음상으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만 그 단어를 분석해보면 바로 의미가 짐작되는 단어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대학생, 도서관’이라는 단어는 베트남어로 각각 ‘sinh viên’, ‘thư viện’인데, 한국 한자음으로는 ‘생원, 서원’이 됩니다. 물론 저희는 한자 자체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발음 속에 남아있는 한자어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한자 문화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지요.
베트남 역사의 그릇, 문학 수업
베트남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베트남은 대체로 높은 교육열을 보이는 편입니다.
글씨는 초등학교 때에 배우고, 글쓰기도 같이 하지만 본격적으로는 중학교 때에 글쓰기를 배웁니다. 중학교 교과서를 보면 많은 작품이 실려 있는데 보통 수업 과제를 논술 형태로 냅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작품에서 특정 인물에 대해 서술하라고 하면서 서론, 본론을 갖추어 쓰고 본인의 생각을 담은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형태를 요구합니다.
이런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하며 학생들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도 여러 글쓰기 대회를 엽니다. 문학 장학생들만의 대회가 있고 모든 학생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도 있습니다. 문학 장학생들만의 대회는 각 학교에서 실력자를 뽑은 다음 구 단위로 모아 우수자를 선발하고, 각 시(성)의 대표로 참가할 수 있는 전국 대회 출전 자격을 줍니다. 반면에 모든 학생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는 자유롭게 쓴 편지 형식으로 소속 학교에서 치러지는데 자격 요건을 따로 내걸지 않고 어휘, 문법, 논리, 창의성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참가자를 뽑는 대회입니다. 이 대회에서 일등을 하게 되면 아주 후한 상을 받게 됩니다.
교내에서 자체적으로 열리는 대회는 고등학교의 경우 시 창작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시 쓰기로 그치지 않고 낭독까지 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산문 분야의 경우 자신의 체험을 서술하거나 일기 형식으로 글을 씁니다. 아쉽게도 저는 문학 수업 시간을 좋아했지만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 기억은 없습니다.
중학교부터는 초등학교에서 배우던 ‘tiếng việt(베트남어)’라는 과목이 아니라 조금 더 심화된 ‘văn học(문학)’이라는 과목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표상으로 문학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수업하는데, 영어가 일주일에 세 번인 것과 비교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문학과 수학의 수업 횟수가 비슷합니다. 일반적인 중학생의 시간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업의 형태는 주로 강의식입니다. 대체로 제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한국 수업 방식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 글에서 어떤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나 배경에 대해 교사가 묻는 식인데, 학생들의 질문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제 생각엔 베트남 교육은 유교의 영향이 많은 까닭에 선생님을 존경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일반적이고 아직까지는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문학 선생님이 수업 시작 전에 지난 수업에 대해 복습한 후 학생에게 무작위로 수업할 내용을 읽게 하고 깨달은 의미도 발표하게 합니다. 그다음 본격적으로 문학 수업이 시작되면 수업 중간에도 퀴즈를 통하여 학생들의 이해도를 파악합니다.
베트남 중등 문학 교육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작품으로는 응우옌 주(Nguyễn Du) 시인의 《쭈엔 끼에우(Truyện Kiều)》가 있습니다. 베트남 문학사에서 이 작품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데, 끼에우라는 여인의 삶 전체를 모두 시로 만든 작품입니다.한국문학의 장르로 보면 서사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낭송하며 듣기 좋은 말놀림과 스토리가 무척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그리고 응원 딩 찌에우(Nguyễn Đình Chiểu)의 《룩 번 띠엔(Lục Vân Tiên)》은 베트남 민족의 충효 사상과 베트남 여성의 절의를 나타낸 운문소설(서사시)입니다. 특히 베트남 남부에서 유명해져서 베트남 전역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으로 베트남 남부 문화에 대한 문화적인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이 작품을 배웠는데, 특히 연인 간의 사랑에 대한 대목이 교과서에 일부분이 실려 있어서 막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던 시절이니만큼 무척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작품은 엄청나게 긴 작품이지만 유독 저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저희 할아버지께서 이 작품을 줄줄 외우셨고 밤마다 오빠에게 이야기해주시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할아버지와 오빠가 이 작품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가 분명히 외우고 있는 시, <남국강산>도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리 트엉 기엣은 천 년 전 중국 송나라에 맞서 베트남이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 독립 국가임을 인정하게 만든 민족적 영웅인데, 뛰어난 외교 정책을 펼쳐 베트남 역사에 길이 남아있습니다.
Sông núi nước Nam vua Nam ở
Vằng vặc sách trời chia xứ sở
Giặc dữ cớ sao phạm đến đây
Chúng mày nhất định phải tan vỡ.
- Lý Thường Kiệt, <Sông núi nước Nam>
남국강산에 남국 왕이 거주하며
하늘 책에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데
포악한 적군은 어찌하여 이곳을 침범하는가
너희는 기필코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 리 트엉 기엣, <남국강산>
베트남 역사에서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호치민(Hồ Chí Minh) 주석이 혁명 운동을 하면서 옥중에서 쓴 작품도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룹니다. 베트남 국민을 사랑했던 혁명가 호치민 주석은 1931년 6월 홍콩에서 영국 경찰에 체포되어 1932년 12월까지 복역했으며, 1942년 8월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1943년 9월까지 복역했는데, 두 번째 감옥 생활 중 한시를 씁니다. 별로 길지 않은 작품이니 이후에 인용하는 작품들은 제가 번역해 보겠습니다.
Trong tù không rượu cũng không hoa
Cảnh đẹp đêm nay khó hững hờ
Người ngắm trăng soi ngoài cửa sổ
Trăng nhòm khe của ngắm nhà thơ
옥중에 술도 꽃도 없으나
이 아름다운 야경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창밖으로 빛나는 달을 바라보니
시인의 시선을 달이 엿보네
- 호치민, <옥중일기 - 완월>
Rằm xuân lồng lộng trăng soi
Sông xuân nước lẫn màu trời thêm xuân;
Giữa dòng bàn bạc việc quân
Khuya về bát ngát trăng ngân đầy thuyền
봄의 보름 달빛이 환하게 비추어
봄 강물색과 하늘색이 섞여 봄이 더 짙어지니
강 한가운데서 나랏일을 논하는데
밤늦도록 배에 달이 가득찬다
- 호치민, <정월 대보름>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작품들인데, 제 기억에 중학교 과정 내내 호치민 주석의 작품을 배웠고, 뛰어난 표현 때문에 감동받은 적이 많습니다. 호치민 주석은 힘든 상황에서도 시를 썼고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존경받는 동시에 친근한 이미지인 존재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대체로 역사 시간에 더 많이 배우고 베트남 역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신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는 현대의 많은 작가에 의해 지어진 호치민 주석을 주인공으로 한 시를 교과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Đêm nay Bác không ngủ
Anh đội viên thức dậy
Thấy trời khuya lắm rồi
Mà sao Bác vẫn ngồi
Đêm nay Bác không ngủ.
Lặng yên bên bếp lửa
Vẻ mặt Bác trầm ngâm
Ngoài trời mưa lâm thâm
Mái lều tranh xơ xác.
Anh đội viên nhìn Bác
Càng nhìn lại càng thương
Người Cha mái tóc bạc
Đốt lửa cho anh nằm.
Rồi bác đi dém chǎn
Từng người từng người một
Sợ cháu mình giật thột
Bác nhón chân nhẹ nhàng.
Anh đội viên mơ màng
Như nằm trong giấc mộng
Bóng Bác cao lồng lộng
Ấm hơn ngọn lửa hồng.
Thổn thức cả nỗi lòng
Thầm thì anh hỏi nhỏ:
– Bác ơi! Bác chưa ngủ?
– Bác có lạnh lắm không?
– Chú cứ việc ngủ ngon
Ngày mai đi đánh giặc
Vâng lời anh nhắm mắt
Nhưng bụng vẫn bồn chồn
Không biết nói gì hơn
Anh nằm lo Bác ốm
Lòng anh cứ bề bộn
Vì Bác vẫn thức hoài.
Chiến dịch hãy còn dài
Rừng lắm dốc, lắm ụ
Đêm nay Bác không ngủ
Lấy sức đâu mà đi.
… Lần thứ ba thức dậy
Anh hốt hoảng giật mình
Bác vẫn ngồi đinh ninh
Chòm râu im phǎng phắc.
Anh vội vàng nằng nặc
– Mời Bác ngủ Bác ơi!
Trời sắp sáng mất rồi
Bác ơi! Mời Bác ngủ!
– Chú cứ việc ngủ ngon
Ngày mai đi đánh giặc
Bác thức thì mặc Bác
Bác ngủ không an lòng
Bác thương đoàn dân công
Đêm nay ngủ ngoài rừng
Rải lá cây làm chiếu
Manh áo phủ làm chǎn
Trời thì mưa lâm thâm
Làm sao cho khỏi ướt!
Càng thương càng nóng ruột
Mong trời sáng mau mau.
Anh đội viên nhìn Bác
Bác nhìn ngọn lửa hồng
Lòng vui sướng mênh mông
Anh thức luôn cùng Bác.
Đêm nay Bác ngồi đó
Đêm nay Bác không ngủ
Vì một lẽ thường tình
Bác là Hồ Chí Minh.
- Minh Huệ, <Đêm nay Bác không ngủ>
오늘 밤 바아크는안 주무신다
병사는 깨어나
밤 깊었는데
바아크는 왜 그대로 앉아
주무시지 않습니까
불 옆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긴 바아크의 표정
밖에는 가랑 비
초가 오두막은 낡았다
병사는 바아크를 쳐다본다
볼수록 안쓰러워
백발 아버지는
병사를 위해 불을 피우신다
바아크는 이불을 덮어주신다
하나하나씩,
병사들 놀랄까
바아크는 살며시 발을 떼신다
병사는 비몽사몽
꿈속에 있는 것처럼
바아크의 높은 그림자가
분홍색 불보다 따뜻하다
마음이 설레
병사는 속삭이며 묻는다
- 바아크! 안 주무세요?
- 많이 춥지 않으세요?
너는 잘 자라
내일 적과의 싸움을 위해
병사는 순종하며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신경 쓰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병사는 누우면서 바아크가 편찮으실까
마음이 복잡해지는데
바아크는 계속 안 주무신다
전쟁은 길고
숲은 매우 가파르고 위험해
바아크가 안 주무시면
움직일 힘이 없어질 텐데
… 세 번째로 깨어나
병사는 깜짝 놀란다
바아크는 그대로 앉아있고
수염도 움직임이 없다
병사는 서둘러 재촉하며
-바아크 주무시지요!
곧 날이 밝습니다
바아크! 주무세요!
- 너는 잘 자라
내일 적과의 싸움을 위해
바아크는 잠을 못 자도 아랑곳 않고
바아크는 불안감에 잘 수 없다
바아크는 공민단을 안쓰러워하며
오늘 밤 숲에서 잠을 잔다
나뭇잎을 깔아 돗자리로
옷 한 조각을 이불로 대신한다
하늘에서 가랑비가 주룩주룩
왜 안 젖겠는가!
생각할수록 속은 타서
날이 빨리 밝기를 바란다
병사는 바아크를 쳐다보고
바아크는 분홍색 불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바아크와 함께 깨어 있는다
오늘 밤 바아크는 거기 앉아 있다
오늘 밤 바아크는 안 주무신다
당연하다
바아크는 호치민이니까
- 밍 후에, <바아크는 오늘 밤 안 주무시네>
이 시는 프랑스와의 전쟁 중 1950년 말에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전장에 직접 나갔던 호치민 주석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시입니다. 자다 깬 병사가 잠을 자지 않고 앉아있는 호치민 주석을 보면서 병사들과 국민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느껴서, 자신도 함께 잠을 자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호치민 주석을 ‘호 아저씨’로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조금 어색한 표현입니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친근한 것은 사실이지만 ‘Bác’는 한국어의 ‘큰(Bác) 아버지’ 정도에 해당되는 단어로 이때 ‘큰(Bác)’은 영어의 ‘Great’의 의미입니다. 한국어로 마땅한 표현이 없어 저는 베트남어 발음 그대로 ‘바아크’로 옮겨두었습니다.
베트남 소설은 침략이나 수탈, 전쟁, 사회적 상황에서 오는 빈곤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인 빈곤, 여성 빈곤, 전쟁 빈곤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남카오(Nam Cao)의 <학 노인(Lão Hạc)>이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학 노인은 가난한 농부였고, 아내를 일찍 잃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장가갈 돈이 없어서 아버지를 두고 고무 농장에 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고독한 학 노인은 금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 한 마리와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 후에 학 노인은 병들어 누웠다 일어난 후에 노동할 힘이 없어 금을 팔았고 그 돈으로 작은 땅을 사서 가난한 지식인에게 맡기고 괴로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작품은 1943년에 발표된 것으로 베트남 8월 혁명 이전의 베트남의 곤궁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학 노인이 가난한 삶에 대해 절망하고 분노에 차서 금이라는 개를 팔 때의 내적 갈등을 아주 치밀하게 묘사하여 독자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응오 덧 도(Ngô Tất Tố)의 <불을 끄다(Tắt đèn)>는 1937년 베트남 여성 신문에 발표된 소설로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 통치하에서 베트남 농민의 비참한 삶을 다룬 현실 비판적인 문학 작품입니다. 대강의 줄거리를 이야기해보자면, 등장인물 저우(Dau)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픈 마음으로 자녀를 팔았는데도 세금을 내지 못합니다. 저우 남편은 몸이 아픈 채 끌려가 죽도록 매를 맞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지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한 이웃 아주머니에게 얻은 쌀 한 그릇으로 죽을 끓여놓자마자 이장과 그 수하들이 쳐들어와 세금을 요구합니다. 저우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수하들이 저우의 남편을 체포하고 모욕을 주며, 심지어 그녀를 희롱하기까지 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진 저우가 일어나 절규하는 내용입니다.
2019년에 베트남에서는 뮤직 비디오 <Hoàng Thuỳ Linh - Để Mị Nói Cho Mà Nghe>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 영상의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할 만큼 <학 노인>, <불을 끄다>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농민들을 비참하게 만든 식민 정책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여주는 이런 소설 작품을 공부하는 만큼 문학 시간은 역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집니다.
삶과 연결되는 수업과 평가를 희망하며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처음으로 글을 배웠는데, 아주 예쁘고 다정하게 대해주신 여자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글씨를 쓸 줄 몰라서 떨고 있는 저의 손을 잡아 글씨를 한 자, 한 자 가르쳐주셨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도 목소리가 부드러웠던 국어 선생님이 생각나고, 고등학교 때 만난 아주 재미있는 문학 선생님도 떠오릅니다. 입시에 시달리느라 자고만 싶었던 고등학생의 수업 시간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졸지도 않고 내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학 수업 시간만을 기다린 시절이었지요.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목소리와 모습이 아주 생생해서 제 학창 시절은 많은 베트남어 선생님과 함께 기억되고 행복한 추억이 가득합니다.
한국에 와서 생활하며 한국에서 입시가 수업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베트남에서도 대입은 아주 중요한 행사로 여겨집니다. 하노이에 있는 ‘문묘(Văn Miếu)’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데 문묘 옆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교인 국자감(Quốc Tử Giám)이 있습니다. 대학 입시 철이 되면 그 앞에서 절을 하며 기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진사들의 이름을 적어둔 거북이상이 있는데, 그 돌을 만지며 합격을 바라죠.
입시는 한국의 수능 시험처럼 일반적인 유형이 있고, 도시 수준의 대회를 치르고 수상하면 입학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갈 때 고등학교 성적은 중요하지 않고 수능 성적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입시는 A1부터 B,C,D,E 유형처럼 카테고리를 정해 응시하게 되며 그 유형이 모두 17개에 달하는데, 시험 보기 전에 지원하고 싶은 대학 유형을 선택합니다. 가령 A는 ‘수학, 물리, 화학’을 치르는 의학 계열이고, D는 ‘영어, 수학, 문학’을 선택하는 유형입니다. 저는 C유형인 ‘문학, 역사, 지리학’을 선택해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참고로 제 경우엔 졸업시험을 4월에 치렀고, 5월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의 수능과 비슷한 국가 시험은 매년 6월에 있습니다. 이전에는 고등학교 졸업시험과 입학시험을 구분해서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국가고등학교 시험으로 치러진다고 합니다. 시험은 총 4일간 치러지는데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본격적인 시험은 2-4일째에 치러집니다. 모든 시험은 서술형이고 유형별로 세 과목을 선택해 하루에 한 과목씩 봅니다.
학기 중에 치러지는 평가는 60분짜리 중간, 기말 시험 두 번이 기본이고, 학기에 한두 번 정도 15분짜리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습 형태의 구술평가도 상시로 진행되었습니다. 구술평가는 주로 문학 작품의 핵심 내용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선생님이 출석 명단을 보고 학생을 지목하면 학생은 줄줄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종합해서 한 학기의 성적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지필 시험은 모두 다 주관식이었고, 보통 공부했던 문학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평가를 준비하며 어휘력이나 문법 지식이 늘고, 논리적 사고도 확장하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논술 능력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점은 10점이었는데 제가 받은 최고점은 9.75점이었습니다. 서술형 평가이니만큼 선생님들은 ‘완벽한’ 논술은 없다고 생각하셔서 10점 만점을 받게 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술을 중시하되 베트남에서는 암기를 수업과 평가에서 매우 중시합니다. 특히 앞에 언급한 《쭈엔 끼에우》나 《룩 번 띠엔》 같은 운문소설이나 자서전은 양이 많기 때문에 외우게 하지 않지만 시는 ‘반드시’ 외우게 합니다. 선생님과 친구 앞에서 낭송하고 암송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저는 호치민 시 몇 편과 <남국강산>이라는 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교육의 열기는 뜨겁지만 한국처럼 학생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만 메여 시험만을 걱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인 딸과 한국에서 받고 있는 문학 수업에 대해서 얘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시험이 여러모로 강조되고 학습량이 많아 허덕이면서도 딸이 현재 시를 한 편도 외우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케이팝 등 한류의 인기가 계속됨에 따라 한국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한국 문화를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 베트남의 한 고등학교 시험 문제에 박항서 감독과 방탄소년단 관련 문제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손라고등학교(Sơn La) 11학년 2학기 문학 시험>
1.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가 전하는 의미에 대해 쓰시오.
2. ‘문화 대사’라는 말의 의미를 써보시오.
3. 다음 단락의 질문에 답하시오. “해외여행을 하는 모든 시민은 조국의 문화 대사이다. 박항서 감독과 방탄소년단은 이러한 역할을 잘해냈는데,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무엇을 했는가?”
4. 본문에서 한국인의 행동을 통해, 문화 대사로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쓰시오.
<호치민의 다오 썬 떠이 고등학교 11학년 논술>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개를 숙이느냐?”라는 박항서 감독의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한국이 베트남에 주는 문화적 자극이 베트남 시험에도 반영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이슈를 바로 학교 현장에서 수용한다는 측면이 무척 고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저의 자녀들도 수업과 평가가 언제나 삶과 연결되어 균형 잡힌 성장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네 자녀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 얘기를 하지 않으면 묻지도 않고요. 그리고 독서를 많이 권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과 경험상 독서를 즐기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이해력 차이는 큽니다. 요즘 아이들이 전자기기에 지나치게 익숙해서 책에 흥미를 잃은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억지로 하는 독서는 역효과가 나기 쉬우니 아이들이 스스로 독서의 재미를 발견하도록 안내하고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재미있는 문학 선생님을 만나서 즐겁게 공부하고 그 수업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처럼 아이들도 그런 수업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노력하시는 과정에 제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고,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시니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래의 훌륭한 인재들을 키워주실 거라 믿고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자 소개
한지혜(누엔티 녹헌)
베트남에서 하지 못한 공부를 한국에 와서 마음껏 하고, 꿈을 펼치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날마다 솟아나는 기대와 설렘이 끊이지 않습니다. 도전했던 과정을 끝낼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맛보고 가족의 사랑과 응원 속에서 오늘보다 좀 더 발전하는 내일을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