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 인천예일고 kijung00@naver.com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개학을 했다. 블랜디드 수업 준비로 줌, 팀즈, 패들렛을 정신없이 배우고 수업에 적용하며,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실감하는 중이다. 문득, 어릴 때 보았던 애니메이션 《2020 우주의 원더키디》가 떠오른다. 애니메이션에서 2020년은 인구 증가, 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던 시기이다. 주인공 아이캔은 캡슐에 담긴 알약으로 식량을 대체하였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영상으로 공부하며 인공지능 마왕과 대적한다. 1980년대에 그려진 미래 사회 모습이 2020년 지금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정말 지금은 ‘혼돈’의 시대이다.
“인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열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연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우리가 분열을 선택한다면 위기는 장기화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욱 큰 재앙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글로벌 연대를 택한다면, 이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 한 승리가 될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모든 전염병을 상대로 한 승리가 될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즈>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의 기고처럼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따라 내일이 달라질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 그 속에서 국어 수업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방향의 좌표를 찾을 수 있는 국어 수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만난 세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연한 사고를 기르고 틀을 깨도록 돕는 수업
:《국어 시간에 생각 키우기》(전국국어교사모임, 휴머니스트, 2020)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평가받았는데, 지금은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예술 작품도 당시에는 평가 대상이 되지도 않던 작품이 지금은 중요하게 평가받기도 한다. 세상을 바꾼 발명품은 상식이나 ‘네, 맞아요’ 보다는 엉뚱함이나 ‘왜요? 그런데요?’에서 시작된 경우가 있지 않은가?
혼돈의 국면일수록 여러 가지 발상을 편안하게 떠올릴 수 있고, 틀에 박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말랑말랑한 유연함을 기를 수 있게 수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사회적 규범, 문화양식과 정치 경제적 양식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통제되고 관리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차별과 편견이 더욱 고착화되고 재생산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친구 추천이나 유튜브의 추천 영상만 하더라도 자신이 선호하는 것,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을 중심으로 자동화된 추론 시스템으로 접하는 환경이기에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수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전국국어교사모임의 《국어 시간에 생각 키우기》를 추천하고자 한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읽고 토론하기 좋은 글 31편을 중심으로 구성된 학습활동은 편견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이터 사회에서 ‘틀 깨기’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여 학생들이 유연한 사고를 기를 수 있게 도와준다. 한 차시 정도의 수업 시간에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2~3장 분량의 글과 5개 내외 학습활동을 구성한 점은 자료를 가감할 것 없이 수업 시간에 적절히 적용할 수 있으며, 책에 수록된 제재들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우리나라로, 지속 가능한 세계로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사유할 힘을 키울 수 있게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할 만하다.
책의 1부와 2부는 자아 정체성, 사랑과 가족 같은 ‘나’의 문제부터 입양아, 독거노인, 이주 노동자, 다문화가정, 청소년 노동자 같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이웃’의 모습과 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3부의 〈인권,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서는 메리 베스와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 장애인과 외화 번역에 스며든 성차별 언어 관습, 세계화라는 미명과 식량 위기(빈곤) 등을 다루고 있다. 무의식중에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에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하는 경우가 없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부정적인 차별 행동을 보이진 않았는지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토론과 토의 활동을 위한 발문을 제시하고 있다. 4부의 〈우리가 지켜야 할 지구〉에서는 채식주의를 둘러싼 오해, 토종 씨앗과 생명 종의 다양성, 가스냉장고와 전기냉장고, 게임이론, 놀랄 만한 과학의 세계 등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세계시민으로서 생각해야 할 다양한 고민을 묻고 있으며, 5부의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와 문화〉는 우리의 현대사 속의 주체 역할을 맡았던 10대, 수난의 문화재를 지켜 낸 인물, 영어에 관한 열등의식 등 10대로서 어떤 태도를 지니면 좋을지를 묻고 있다.
긴 호흡으로 성찰하는 ‘인간상(人間象) 탐구’ 수업
: 《국어 시간에 자서전 쓰기》(김중수, 휴머니스트, 2020)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수시모집이 코앞으로 다가와 9월에는 한창 자기소개서를 쓰고 피드백이 한창때이다.
“선생님, 학업이나 생활 태도, 교내 활동과 스토리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대학은 어떤 학생을 원할까?
“전공 분야에서 너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무엇이 있을까?”
“너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들을 먼저 떠올려 볼래?”
“진로를 갖게 된 동기는 무엇이니?”
끊임없이 교사는 질문하고 학생은 대답한다. 대답 중에 연결할 수 있는 내용, 구체화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생에 관한 다양한 빛깔을 만나는 시간이 자기소개서 쓰기 시간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입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다소 적은 학생들, 성적에 맞추어 학과를 결정한 학생들, 전공 진로가 중간에 바뀐 아이들에게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자소설’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끼워 맞추는 경우가 있어 내용의 진실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1학년 때,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시간으로 ‘자서전 쓰기’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쓰면서 삶을 살아가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이다. 외우기보다는 검색을 하고, 전화 통화보다 에스엔에스가 훨씬 자연스러우며 소소한 일상도 스마트폰으로 공유하고 상담마저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성찰의 호흡이 매우 짧다. 이러한 포노 사피엔스들에게는 삶의 태도 변화나 의식 전환을 일으킬 수 있도록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중수의 《국어 시간에 자서전 쓰기》는 중학생에게 자서전이란 무엇이며, 왜 자서전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안내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서전을 쓰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자신의 인간상을 탐구함으로써 청소년기에 학생들이 가치관과 인생관을 성립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특히, ‘나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 내 주변에는 누가 있고 그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는 무엇을 잘하고 어떠한 일에 관심을 두는가?’ 등 본격적으로 학생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아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150여 개의 다양한 질문이 수록되어 있어 학생의 자서전 내용 생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3부에서는 자서전을 어떤 과정으로 생성하고 조직하는지, 초고와 고쳐쓰기나 출판과 편집 과제를 어떻게 안내하는지까지도 알 수 있어 교사가 수업 활동을 계획하는 데 좋다. 그리고 자서전 쓰기 활동을 긴 호흡으로 진행할 여유가 없을 때를 고려하여 저자가 제안한 친구 인터뷰하기, 인생 곡선 그리기,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느낀 사건 고르기 등 수업 아이디어로 좋은 방법이 있다.
필요에서 시작해 성장으로 나아가는 프로젝트 수업
: 《보니샘과 함께하는 자신만만 프로젝트 수업10》(구본희, 우리학교, 2020)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이나 블랜디드 수업을 구상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어떻게 하면 온라인 상황에서도 프로젝트 수업을 구현할 수 있을까였다. 학생이 무언가를 기획하고, 기획한 것을 수행하여 성공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프로젝트 수업이야말로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업의 중요성은 알지만, 아이들이 목적의식을 갖고 구체적인 활동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는 노하우가 부족하여 교사로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구본희의 《보니샘과 함께하는 자신만만 프로젝트 수업 10》은 그 답답함을 풀어 주고 수업 설계에 대한 의욕을 충만하게 만든 고마운 책이다. 국어 교과 지도뿐만 아니라 진로 활동, 학급 자율 활동, 다른 교과와의 융합 수업까지 10가지의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목표 설정부터 수업 설계와 구조, 상호 평가 방법, 학습지와 학생 활동 예시 등에 대해 세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 저자가 관악중학교에서 자유학년제 국어 수업을 맡아 운영한 수업 사례이기에 현장감 또한 높다.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타 교과와의 융합 수업을 계획하기도 하였으며 10개의 프로젝트를 전-중-후 과정으로 나누어 각 과정에서 할 일을 촘촘히 안내하기에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특히 목표 세우기, 성취기준 확인하기, 모둠으로 협력하여 목표 이루기, 자기 성찰 평가와 모둠 상호 평가하기 같은 활동이 단계별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기에 이 책은 프로젝트 수업을 처음 도전하는 교사에게도 좋은 자료이다.
또한, 3장의 <학교 가는 길 글쓰기〉, 6장의 〈우리 동네 생태지도 만들기〉, 7장의 〈혐오 표현 안 쓰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사회, 과학, 미술, 정보, 음악 같은 여러 교과가 협력하여 아이들의 종합적인 성장을 끌어내고 진로 체험, 수학여행, 축제, 전시 등으로 학생들 스스로 성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리고 학교의 다양한 교과의 학습경험과 교내 활동을 연계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역할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해 준다. 이렇게 프로젝트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수업 활동에서 창의성을 키우고 서로 살아 있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수업 방법임이 분명하다.
글쓴이 소개
‘좋은 습관은 서로를 칭찬하는 것이며, 그것이 서로가 지속하는 이유다’(세네카) 문구를 좋아합니다. 나의 옆에 있는 상대가 나에게 그러하듯이 무조건의 지지와 신뢰, 긍정적인 면 칭찬하기를 실천하고자 오늘도 노력하는 중입니다.